홍콩 카페투어 일지
스타의 거리에서 성룡의 손바닥과 이소룡의 흔적을 지나치면 백화점이 하나 있다. 그 백화점 푸트코트에서 시원한 커피나 한잔 하려고 들어갔다. 지나면서 달달한 빵 냄새가 났다. 주변을 둘러보던 중, 유튜브에서 본 것 같은 카페를 발견했다. 커피 마메야, 약방 같은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심지어 직원분들이 하얀색 가운을 입고 있어서 더 그렇다.
메뉴판은 정말 독특하다. 하얀색에서 갈색으로 점점 짙어지는 메뉴판은 로스팅정도를 나타낸다. 비싼 메뉴는 220$짜리도 있다. 커피 한잔에 37,400원.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아무리 게이샤 커피라도 그렇지 그 돈을 주고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메뉴판을 열심히 읽어보니 가장 저렴한 가격대는 80$, 즉 13,600원정도. 한잔은 아이스, 한잔은 따뜻한 걸로 주문했다. 메뉴판에 적혀있는 가격은 어떻게 주문하던 동일한 80$짜리 가격이다. 드립이던, 에스프레소던, 아이스던, 핫이던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비스료가 10%부과되니 참고하시길.
홍콩 여행에서 물잔이 비워지면 먼저 와서 채워주고, 다 먹은 그릇이 생기자마자 빠르게 치운다면 서비스료 10%가 부과되는 매장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편이 좋다. 보통 가격대도 높은 편이니까 10%가 엄청 크게 다가온다.
드립 커피를 두 잔 동시에 내린다. 아이스는 조금 더 작은 드리퍼를 쓰는 듯 싶다. 어쩌면 원두의 차이일지도. 우리는 에티오피아 아리차, 코스타리카 돈 조엘을 주문했다. 원두를 말코닉으로 분쇄하고서 시향을 시켜준다. 이후 드립을 내리고 뜨거운 음료 먼저 제공한다. 아이스 음료는 작은 잔에 조금 따라서 시음을 권하고 바 안쪽으로 들어갔다. 뇟쇠 같은 그릇에 얼음을 가득 담고서 스테인리스 통을 담근다. 그리고 그 안에 드립 커피를 붓는다. 한참을 얼음으로 칠링하더니 손등에 커피를 한방울 흘려서 온도를 체크한다. 그리고 검은색 잔에 정사각형의 투명한 얼음을 넣고 커피를 담는다. 마치 바에서 비싼 위스키를 한잔 시킨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커피 한잔에 만원이 넘어가는 커피를 마시면서도 기분이 유쾌할수있다니. 신기했다. 내 음료 한잔이 저렇게 정성스럽게 나온다면 커피가 참 맛있게 느껴질 확률이 높지않을까. 커피를 비싸게 팔려면 이정도의 퍼포먼스는 보여줘야하나보다. 나름 카페를 많이 갔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칠링해서 주는 아이스 커피는 처음이다.
커피는 맛있었다. 아리차는 상큼하면서 티처럼 깔끔했고 코스타리카 돈 조엘은 벨런스가 잡힌 단 맛이 좋았다. 묵직한 컵의 감촉과 조명을 받아서 투명하게 빛나는 얼음이 기분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잔이 투명하지 않아서 커피의 색을 보지못하는 점 정도. 커피를 마시면서 중간 중간 바리스타가 콜드브루를 작은 잔에 따라서 시음을 시켜줬다. 같은 원두를 다르게 추출한 커피가 어떤 느낌인지 알려주고 싶으셨는 듯 하다.
커피 두잔에 3만원에 가까운 돈을 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충분히 대접받는 느낌이랄까. 독특한 커피 경험이다. 한국에 있는 커피 오마카세점을 가보면 비슷한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내가 카페를 차린다면 이런 느낌을 고객들에게 줄수있을까. 설령 줄수있다고 하더라도 이게 과연 이익이 남을까. 한 손님을, 한 테이블의 음료를 준비하는데 10분 가까이 걸릴텐데. 가격대를 보고 손님이 돌아가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가 커피를 마시면서 슬쩍 구경만 하는 손님도 종종 있었다. 나의 카페는 어떤 컨셉으로 해야하는가.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