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여서 seb
커피 향기가 보라빛처럼 살며시 다가온다. 입구는 평범한 에스프레소 바처럼 보이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보라색 빛이 짙어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떤 사진을 찍더라도 괴상한 보라색이 되어버린다.
처음 주문은 팬 케이크와 스트러스, 찍찍 크림라떼. 팬 케이크는 주문이 들어와야지 계량해서 반죽하고 만든다고. 그래서 메뉴가 나오기까지 한 20분 정도 걸린 듯 싶다. 그 동안 테이블에 앉아서 인테리어를 둘러봤다. 검은 바 테이블과 한쪽 벽면에 가득한 보라색 전등, 그리고 벽쪽으로 붙어있는 작은 의자와 테이블. 많은 사람이 앉지 못하는 공간이다. 바 테이블의 맞은편 또한 직원이 이용하는 공간이라서 테이블은 더 적었다. 꽉 차면 한 10명정도 들어가려나.
갓 구운 팬 케이크는 크림 치즈와 시나몬 파우더가 들어가서 달달하면서 짭조름했다. 생각보다 팬 케이크가 크림 치즈와 잘 어울려서 놀랐다. 스트러스는 자몽 그라나따, 즉 자몽 샤베트에 에스프레소를 끼얹은 메뉴다. 새콤 달콤하면서 커피의 쌉사름한 맛이 섞여있다. 어떻게 보면 애매한 조합이다. 호불호가 갈릴지도. 자몽 그라나따는 상당히 맛있었다. 에스프레소와 섞이면서 애매해졌지만.
반면 찍찍 크림 라떼는 달달하고 맛있었다. 문제는 크림이 잔뜩 흘러서 마시기 힘들었다는 점. 라떼 위에 크림과 브라운 치즈가 올라가서 단짠으로 만든 메뉴다. 커피와 위의 크림을 같이 마시려면 잔을 잡고 마셔야하는데 너무 크림이 이곳 저곳에 흘러서 결국 휴지로 닦아내고 마셨다. 위에 크림과 치즈를 같이 먹으면 맛있지만 라떼와 함께 마시면 역시 살짝 애매한 맛이다. 치즈와 우유를 같이 먹으니 좀 느끼해진다.
그리고 에스프레소도 한잔 시켜마셨다. 나름 ‘에스프레소 바’니까 한잔 마셔야하지 않을까 해서. 에스프레소는 얼음 물, 그리고 지거에 담긴 비정제 설탕과 같이 나왔다. 그러고보니 바 테이블 옆에는 지거가 진열되어있는데 이건 왜 있는지 궁금하다. 뭐 찍어먹는 용도라고 하기엔 깨끗하지 않았다. 에스프레소를 먼저 마셨다. 고소하면서 씁쓸한 진한 커피 맛. 역시 내 취향은 설탕을 넣어서 먹는 쪽이다. 설탕을 조금 넣고 열심히 저어서 마시니 달달하면서 씁슬하니 맛있었다.
이곳의 커피 쿠폰은 참 재밌다. 커피 잔모양 도장을 쌓아주는 방식으로 찍어준다. 에스프레소 바에서 커피 잔을 쌓아놓고 사진 찍는게 유행이였는데 거기서 따온 모양이다. 재밌고 귀엽다. 나는 카페를 차리면 쿠폰을 어떻게 만들까. 유명한 소설 문장을 나눠서 찍어줄까. 그럴려면 도장이 한 10개 정도 필요한데. 심지어 순서대로 맞춰서 조심 조심 찍어야하니 더 귀찮을지도. 바에 앉아서 창업에 대한 생각이나 실컷 하다가 나왔다. ‘스몰 에스프레소 바’, 줄여서 seb. 보라색으로 가득 채워서 흥미로운 공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