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색이었다. 새롭게 디자인됐다면서 받았던 칙칙한 회색빛에 파란 줄무늬 포인트가 들어간 조선소 근무복이 그랬다. 그걸 입으면 자부심이 별로 들지 않았다. 사실 근무복을 입고 출퇴근하면 상당히 편하다. 현장에 나갔다가 더러운 게 묻어도 되고, 회식에서 음식이나 술이 튀어도 상관없었다. 어처피 근무복이니까.
그 쥐색 덕분에 옷값도 많이 아꼈다. 그렇지만 그걸 다시 마주한다는 것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하늘 마자 쥐색으로 흐리던 월요일 날 아침, 나는 그 옷을 입은 이들과 다시 만났다. 그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휴게소에 내려서 간식을 사 먹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핸드 카를 끌고 회사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살짝 피해서 쓰레기 통을 비우러 갔다.
과연, 저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퇴사한 지 6개월, 나는 워킹 홀리데이 대신에 한국에서 다른 일을 했다. 기자단 활동이나 에디터 활동, 독서모임과 카페 알바. 내 목표가 북카페였으니까 말이다. 취미로 글을 쓰기 위해서 다양한 일도 해보고 있지만, 아무래도 쪽팔렸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퇴사하고 보란 듯이 잘살고 싶었으니까.
나는 햇빛이 없었지만 모자를 푹 눌러썼다. 약간은 덥지만, 누군가 알아볼까 무서웠다. 나는 그들에게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봉투를 분리수거장으로 옮기면서 생각했다. 이 시기에 왜 온 걸까. 아무래도 서울지사에 임원들을 부른 걸까. 아니면, 워크숍일까. 머리가 복잡했다. 요즘 때에 워크숍을 갈 일이 없으니 아무래도 임원을 소환해서 중요한 회의를 하려는 듯싶었다. 회사가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임원 회의라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확실히 적었다. 기껏해야 4명 정도. 나를 알아볼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이 들자, 나는 그들을 슬쩍슬쩍 훔쳐봤다. 쥐색 근무복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꽤나 더운데도 긴팔에 긴 바지였다. 옷에서부터 숨이 턱 막힌다. 생각보다 얼굴은 젊어 보였다. 임원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단순 파트장급인가, 헷갈렸다. 파트장급이면 날 알아볼 사람이 꽤 많았다.
쓰레기봉투를 분리수거장에 던져놓고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생각을 했다. 내가 회사를 때려치운 게 무모한 짓이었을까. 그냥 회사가 힘들다는 핑계로 도망친 걸까. 퇴사하기 전 정말 많이 고민하며 생각했기 때문에 더 불안했다. 지금 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싶었다.
벤치에서 쉬는데 묵직한 발소리와 핸드 카의 바퀴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모자를 다시 뒤집어썼다. 분리수거장에서 나가자, 버스가 하나도 안보였다. 휴게소는 텅 비어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약간의 쓰레기와 복잡해진 내 머릿속만 남아있었다. 나는 다시 천천히 핸드 카를 밀었다. 조금 더 열심히, 그리고 조금 더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고 되뇌었다. 지금은 그게 안되지만, 차츰 나아지리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