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꽤 공평한 편이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어야 해하는 귀찮은 점이 있는 대신, 손님을 줄여준다. 생각해보니 군 시절부터 비가 좋았다. 비가 오면 쉴 수 있어서 그랬다. 조선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에 나갈 일도 비를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비가 오면 카페에서 책을 읽기도 좋았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누워있는 것도 좋았다. 반가운 비가 휴게소에 내리면 괜히 기분이 좋다. 왠지 일이 적을 것 같아서.
날씨가 더운 데다,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탓일까. 모두가 비를 반기는 눈치였다. 비 덕분에 사람들이 휴게소에 쓰레기를 많이 안 버리고 간다. 알록달록 등산객들도 비가 와서 그런지 별로 안 보인다. 형광색 우비를 걸치고 회색으로 물들어가는 목장갑을 손에 낀다.
비가 와서 안 좋은 점이 있다면 냄새였다. 흡연실에 있는 재떨이와 쓰레기 통에서 니코틴을 머금은 구정 내가 올라온다. 휴게소에는 양쪽 끝에 흡연실이 있었는데, 왼쪽은 야외였고 오른쪽은 실내였다. 나는 쓰레기 통을 주기적으로 비우는 것보다 흡연실을 청소하는 게 싫었다. 내 폐가 썩어가는 느낌 때문이다.
쓰레기봉투를 타고 빗물이 주르륵 흐른다. 이게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가면 냄새를 한번 맡아봐야 했다. 빗물인지, 아니면 쓰레기에서 나온 구정물인지 구별이 안 간다. 때때로 쓰레기 통을 비우는 중에 손님이 던진 커피를 내 팔로로 받아낸 적도 있다. 아주 가끔은 어묵 국물도 튀었다. 비가 오면 신발과 바지가 많이 젖었다. 땀과 빗물이 섞여서 이마를 훔치고 훔쳐도 또르륵 흘러내렸다.
그래도 비가 오면 마음이 편했다. 비가 오면, 사람도 줄고 일도 줄었다. 비가 오면, 차분해지고 고요해져서 좋았다. 비가 오면 군대가, 조선소가, 카페가 떠오른다. 그래서 비가 싫지는 않다. 물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집에서 쉬었다면 싫지 않는 게 아니라 좋아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