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에서 내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원래라면 이번에 진행되는 학술회를 대비하기 위해서 나를 고용했지만, 참가자의 개인정보, 그리고 심사위원의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그 일이 나에게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파일 정리'밖에 없었다. 투고 논문이 오면 엑셀로 파일 내용을 정리하고 해당 파일을 양식에 맞춰서 폴더에 담아놓기만 하면 됐다.
모두가 그렇듯, 논문을 쓰는 사람들도 벼락치기가 많았다. 끝나기 하루, 이틀 전에 투고 메일이 많이 오면서 일을 거의 몰아서 했다. 실상, 그 일조차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 시간, 두 시간이면 정리가 끝나는 일이었다. 그 외 심사위원 명단에 올라있는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파악한다거나, 공문 메일을 보내는 잡무를 했다. 한마디로 더럽게 한가했다.
업무량이 많지도 않고, 일이 힘들지도 않았다. 다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고, 집중해서 끝내면 2시간 만에 오늘 일을 다 끝낼 수 있었다. 나는 일을 일찍 끝내고 퇴근시간까지 멍하니 컴퓨터만 바라봤다.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듯싶었다. 밥을 먹고 나면 식곤증이 몰려와서 졸렸고, 퇴근 시간이 돼서야 정신을 차리곤 했다.
이런 나날이 이어지면서 나는 내가 왜 고용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계획상에서는 꽤나 많은 업무가 생길 것으로 예상이 됐나 보다. 그러나 외부인에게 쉽게 맡길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나는 쉬엄쉬엄 놀면서 일했다.
나는 쉬는 게 눈치가 보였다. 돈 주고 일 시키는 알바가 일자리에서 놀면 당연히 눈총을 받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만 일이 별로 없는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러 갈 때, 다른 연구원들의 자리를 보면 열심히 일한다기보다 느긋하게 일하는 모습들이 자주 보였다. 한쪽에 폰 게임을 켜 놓는다거나, 이어폰을 꽂고 자기 계발을 하고 있다던가.
연구원의 특성상, 업무가 특성 시기에 쏠리는 듯싶었다. 일 년 내내 일하는 것도 아니고 몇 주만 일하는 나를 위해서 다른 분들은 친절하게 말씀해주셨다. 일이 없으면 자기 할 일 하셔도 된다고, 책을 읽어도 좋고, 컴퓨터로 웹서핑해도 좋다고 말이다. 덕분에 나는 책을 들고 와서 읽기 시작했다.
오죽할 게 없었으면 논문을 읽고 있었겠는가. 대중교통의 접근성에 따른 행복도 조사는 내 관심사도 아니며 쓸 데도 없다. 다만, 눈치가 보여서 노트북 화면에 뭔가라도 켜 놨어야 했을 뿐이었다. 이 한가함이 내게는 살짝 불안했다. 일이 없다는 것은 연구원이 나를 고용해서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원래 생각했던 기간보다 더 일찍 계약이 끝날 가능성이 보였다.
그래서 이 편한 일자리를 충분히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