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할 일을 빠르게 끝내고 굴러다니는 논문을 대충 읽고 있을 때였다. 나를 담당해서 일을 주던 연구원이 나를 슬쩍 불렀다. 비어있는 회의실에 들어가자 말자 그가 말했다.
"음, 뭐 그리 심각한 내용은 아니고요, 아, 어쩌면 심각한 편일 수도 있겠는데, 사실 우리가 예상했던 업무량에 상당히 못 미쳐서요. 원래는 이번 논문 공모전을 진행하는 일을 같이 하려고 했는데, 개인정보 같은 것 때문에 맡기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이번 달 말, 다음 주 월요일까지만 근무하게 됐어요."
원래는 2주 정도 더 근무하기로 했는데 약간 아쉬웠다. 사실 나도 이렇게 놀면서 돈 받아먹기가 눈치 보이기도 했고, 상당히 지루했던 참이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알겠다고 대답한 이후,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웹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며칠이면 끝나고, 일은 지금처럼 쭉 없을 예정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지갑에 4장이나 있는 식권이 눈에 들어왔다. 한 장에 4천 원이나 하는 식권인데 한 번에 너무 많이 뽑아놨다.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됐다. 다른 사람들에게 드릴까, 아니면 그냥 환불받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지루한 근무 시간이지만 시간은 꽤나 빠르게 흘렀다. 마지막 날, 출근길은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그때까지 식권을 어떻게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작은 돈이지만 그래도 4장이면 치킨 한 마리 값은 나오는데, 참 애매했다. 평소처럼 멍하니 메일을 확인하고 점심이 되자, 밖에 나가서 식사를 했다. 식권은 줄어들지 않았다.
계약서를 마저 쓰고 제출한 뒤, 노트북에 식권을 한 장 꽂아 넣었다. 노트북을 열면 누군가 볼 수 있게. 왠지 그러고 싶었다. 나처럼 아르바이트생이 와서 쓸지도 모르는 노트북이니까. 다른 연구원분들에게 식권을 드리려고 했다. 그게 역시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다들 내가 마지막 날이라는 것에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동안 회식도 하고 이야기도 하긴 했지만, 내가 적극적이게 대화에 참여한 편이 아니라서 그럴까. 아니면 그들에게는 늘 있는 일이라서 그럴까. 언제나 그렇듯 떠나는 순간은 아쉽기만 하다.
나는 식권을 쥐고 갈팡질팡하던 손을 그냥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머뭇거리다 연구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나마 친하게 이야기하던 연구원 한 명이 나중에 밥 한 끼 하자며 연락처를 가져갔다. 나중에 그를 밖에서 만나게 된다면 깜빡했는데 식권이 남았다고 말하며 주리라 마음먹었다.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을 연구원에서 지냈다. 내가 다녔던 회사와는 분위기부터 하는 업무까지 달랐고 여태껏 했던 알바보다 가장 지루하고 쉬웠으며 잉여스러웠다. 회사 다니면서 냈던 세금을 이렇게 돌려받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