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령, 낯선 곳으로의 망명

<국화와 칼>

by 박한희
KakaoTalk_20260218_151921133_07.jpg 일본의 아기자기한 주택 풍경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으며 일본 특유의 체면과 의리에 대해 많이 놀란 적이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지만, 우리와 이토록 다른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다. 내가 매일 출근하는 이 ‘학교’라는 조직 역시,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을 지닌 채 나름의 정교한 이중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교사는 정해진 때가 되면 발령 통지서 한 장에 몸을 싣고 낯선 학교로 떠나야 한다. 새로운 학교는 어떤 분위기일지, 동료들과 관리자는 어떤 성향일지, 그리고 그곳만의 보이지 않는 ‘불문율’은 무엇일지. 설렘보다는 긴장감을 더 많이 품은 채 첫 출근의 문을 연다.


학교마다 흐르는 메커니즘은 비슷해보이지만 오묘하게 다르다. 메신저 발송, 공문을 처리하고 관리자에게 보고하는 방식, 혹은 "자유롭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왜 술을 안먹냐는 아직도 강압적인 회식 분위기까지.

한편 일본 문화의 이중성은 때로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겉으로는 한없이 유순하고 예의 바른 ‘국화’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서슬 퍼런 규율의 ‘칼’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학교에서 마주하는 온화한 미소들 역시 가끔은 서늘하게 느껴진다. 그 웃음 뒤에는 *우리 학교는 원래 이래”라는 동질화에 대한 압박과, “당신이 올 때를 기다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기피 업무를 남겨두었단다”라는 차가운 현실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아서이다.


“나이와 경력이 이 정도니, 당연히 이 정도 짐은 져야지.”

조직이 부여한 역할이라는 명목 아래 가해지는 강요 속에서,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불공평한 경기를 시작한다. 100미터 달리기 선상에서 이미 한참 뒤쳐진 채로 말이다.


조직의 문화는 어디를 가나 견고한 성벽처럼 버티고 서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성벽을 쌓는 벽돌 하나하나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언젠가 다시 마주할 낯선 학교에서도 나는 ‘국화’의 우아한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조직이 휘두르는 날카로운 ‘칼’에 쉽게 베이지 않는 단단한 나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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