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회적으로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생겨났을 만큼, 주인공 베르테르는 로테를 향한 자신의 감정에 전부를 건다. 동경과 사랑이라는 순수한 열망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토록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은 읽을 때마다 놀랍다. 비록 현실적인 시각으로는 비극으로 끝난 '집착의 최후'라 할지언정, 무언가를 치열하게 동경해본 사람만이 타자의 세계에 깊이 동화될 수 있고 가치를 온전히 인정해주는 것이라 믿고 있다.
나의 인생에도 그런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교 1학년이 지나고 맞이한 2학년. 영어교육과에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포의 교수님'이 계셨다. 순수하게 영어 교육보다는 영미문학 전공을 사랑했던 나에게는 두려움과 공포를 안고서라도 그분의 ’영문학사‘ 수강 신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교수님은 예상과 달리 수수한 버버리 코트를 입은, 호리호리하고 지적인 모습이었다. 그분은 첫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영문학의 거대한 흐름을 쉬지않고 한 번에 읊조리기 시작하셨다. 그것이 교수님의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었다. 그 열정적인 모습에 나는 소위 말하듯 눈에 콩깍지가 씌인 듯 첫눈에 반해버렸다.
휴강은 커녕 평일 수업 중 공휴일이라도 끼면 어김없이 토요일 주말 보강을 잡으셨다. 다른 학생들이 극도로 괴로워할 때 나는 오히려 주말에도 그분을 뵐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영미시들의 배경과 역사, 함축적인 시어, 작가 소개, 그리고 그분의 전공이자 내가 처음 접했던 ’영미 희곡‘ 전반을 설명하실 때면, 나는 새로운 배움을 향한 갈증을 모두 채우려는 듯이 모든 수업을 흡수했다. 교수님이 한마디라도 꺼낸 영문학 서적들은 모두 도서관에서 찾아 탐독했다. 그 때 유명한 제프리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게 시작이었다. 임용고시를 슬슬 준비할 3학년에도 나는 여지없이 교수님의 수업은 모두 수강 신청하며 대학 동기도 혀를 내두를 만큼 악착같이 지독했던 것 같다.
순수한 학문의 열정이 다소 사그라든 요즘, 항상 배워야 할 교사로서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바로 그 시절의 내가 가졌던 '베르테르적 광기'였다.
무언가에 온전히 몰입하여 내 모든 시간을 다 바치고 싶었던 순수한 열망이 참으로 소중하고 간절하다. 돌이켜보면 내가 동경했던 것은 교수님 개인이라기보다, 그분이 가진 해박한 지식과 학문을 대하는 태도였을 것이다. 나 또한 그분처럼 되고 싶다는 간절한 '동일시'의 열망 또한 있었을 수도.
베르테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로테를 향해 달려갔지만, 끝내 그녀를 얻지 못한 슬픔 끝에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만다. 그 지독하고 처절했던 진심을 이른바 ’소심한 집착남‘이 아닌 그의 순수한 마음으로 헤아려본다.
나는 과연 무엇에 몰두하며 인생을 채워가고 있는가. 물질적 성공을 위해 미치도록 몰입하는 것이 아닌, 내일을 기다리고 매일 아침 눈뜨는 것조차 행복한 인생을 가져보고 싶다. 교수님의 수업이 있는 어느 아침 등교의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왔으리라!
강의실 창가에 앉아 교수님의 모든 것에 나의 영혼을 빼앗겼던 그 순수했던 시절.
내 안의 베르테르를 깨우며, 식어버린 열정의 온도를 다시 높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