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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Nov 03. 2024

안정감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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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먹는 약이다. 아침저녁으로 매일같이 약을 먹으며 마음을 안정시켜 왔다. 이제는 저 밑 깊은 곳도 아닌 하늘 위도 아닌 땅 위에 올바르게 서 있는 듯하다. 우울에서 벗어나서 의사에게 많이 괜찮아졌다고 말한 지도 한 달. 이제는 의사 앞에서 울지 않는다. 괜찮다, 많이 좋아졌다, 기분이 괜찮았다, 슬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막 좋지도 않은 날이었다고 말한다. 더 이상 울지 않으며 슬픈 감정도 없다. 그렇다고 조증도 오지 않은 평온한 상태. 조증이 오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울함이 끝나면 조증이 올까 불안했던 날들도 지나가 버렸다. 평온하고 안정감이 있는 일상. 그런 일상이 내게 다시 왔다. 부작용을 가지고서.


안정감이 있는 일상이 주어진 대신 부작용이 왔다. 양극성장애 약의 부작용은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도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식욕 증가. 첫 번째 부작용이다. 우울의 늪에 빠져 있을 땐 정말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입에 넣는 음식은 무엇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살아야 하니 먹어야 했던 것뿐. 그랬던 내가 지금은 다르다. 치킨, 피자, 떡볶이, 감자탕, 닭갈비, 빵, 과자, 마라탕, 돈가스, 만둣국, 빙수,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 게 자꾸 떠오른다. 분명 방금 밥을 먹었는데 다른 음식이 또 생각이 난다던지 배부른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꼭 야식을 참지 못한다던지 한다. 이렇게까지 식욕이 생긴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 식욕을 참지 못하고 와구와구 먹고 있는 나를 깨닫는 순간엔 스트레스가 확 온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나의 손과 입이라니. 속상하면서도 먹을 땐 행복해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두 번째 부작용은 손떨림이다. 손과 손가락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글씨를 쓸 때도, 아이 무릎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줄 때도,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할 때도 손은 떨린다.

난감할 때도 많다. 아이의 가정통신문에 사인을 해 보내야 할 때 떨리는 손을 붙잡아 겨우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한다. 글씨는 당연히 엉망이다. 담임선생님께서 보실 나의 글씨가 참 부끄럽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아이 무릎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줄 때도 내 손은 갈피를 못 잡고 덜덜거린다. 검지손가락에 묻힌 약을 고루 발라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할 때는 또 얼마나 떨리는지. 젓가락으로 겨우 잡은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일이 두렵다. 음식을 떨어트릴까 봐 입이 먼저 마중 나가 재빠르게 입으로 집어넣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는 숟가락이 참 밉다. 떨리는 손이 괴롭다. 그럼에도 맛있게 먹는 내 입이 싫다.


의사는 나에게 손을 쭉 앞으로 뻗어보라고 했다. 보통 섬세한 작업을 할 때 많이 떨리는데 가만히 있을 때도 미세하게 떠는 손을 보고 약을 줄여주겠다고 했다. 이제는 마음이 괜찮아진 것 같으니 약을 줄여보고 조금이라도 기분이 붕붕 뜨는 느낌이 나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어렵게 얻은 안정감은 부작용을 데리고 와 나를 괴롭힌다. 약은 먹을수록 마음을 잡아주어 단단하게 해 주고는 슬쩍 부작용을 안겨주었다.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언제까지 겪어야 할지 모르는 부작용까지. 나아지는 기분과 안정감에 한 고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커다란 절벽과 마주 서 버렸다.


약과 안정감과 부작용. 세 가지를 안고 지낸다. 다시 우울에 빠지거나 조증이 오는 건 더 힘든 일이다. 열심히 약을 먹고 증상이 좋아지면 서서히 약의 용량을 줄이고 부작용도 줄일 수 있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괜찮아질 수 있겠지. 마음도 몸도 생각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약이니 계속 열심히 먹어야 한다. 부작용이 고달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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