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손이 심하게 떨렸다. 심장도 평소보다 더 빠르게 뛰었고 무엇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고픈 배만 겨우 채웠다. 책상에 엎드려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눈물로 세상을 메울까 말까 하는 그런 날.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한 날. 창밖으로 겨우 보이는 작은 하늘과 푸르름을 보며 무기력한 슬픔에 다시 빠졌다.
소위 T라고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판단하는 그런 성격. 마치 나의 엄마 같은. 엄마는 그런 자신의 성격을 좋아했다. 힘들었던 자신의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현실을 헤쳐 나갔던 엄마. 냉정하게 어려운 현실을 판단해 살아갈 길을 개척하고 용감하게 살아온 엄마. 엄마는 그런 자신을 좋아했다. 가끔 지나친 냉정함에 서운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가 부럽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엄마의 마음이 부럽다.
나는 명백한 F. 감정적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기쁨이 갑작스럽게 오고 슬픔은 밀물 밀려들어오듯 재빠르게 덮쳐온다. 한번 들어온 감정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슬픔은 그렇게 오래오래 머무른다. 아무 이유도 없이. 생각보다 더 오래오래. 슬픔은 나를 갉아먹는다. 이유 없이 나를 절벽으로, 나락으로, 짙은 어둠으로 데리고 간다.
약의 도움으로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타던 나아짐은 어느새 더뎌져버렸다. 괜찮아졌다가도 이렇게 하루씩 우울한 날이 찾아온다. 그래 이런 날도 있는 거지 하고 혼자 달래 보지만 우울 속에 있노라면 아무런 위로가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슬픔은 딱 거기까지. 더 이상의 안 좋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절망, 고통, 분노, 낙담, 비관, 좌절. 모두 빼고 슬픔만. 슬픔이 나를 가둘지라도 어둠 속에서 나오지 못할지라도 슬픔 이상의 감정은 절대 가져선 안된다. 그럼 너무 괴로우니까. 스스로를 아프게 하니까. 최대 슬픔까지만 하는 걸로.
늦은 오후, 곧 아이들이 집으로 온다. 저녁이 되면 남편이 온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슬픔이더라도, 그 슬픔을 가지고서라도 내 자리에 서 있겠다.
꿋꿋하게 살아낼 것이다. 슬픔이 와도. 무기력이 와도. 다시 조증이 오더라도. 이 세상을 강직하게 살아내 볼 것이다. 엄마가 살아가는 것처럼. 남편이 살아가는 것처럼. 아이들이 해맑게 살아가는 것처럼. 나도 함께 살아갈 것이다. 다시 깊은 우울이 찾아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