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팠다. 아침부터 입맛이 없다고 하더니 배가 아프다고 드러누웠다. 머리도 어지럽고 아프다고 했다. 병원문도 열지 않은 시간. 학교에는 아이가 아파서 하루 못 간다고 전화를 해놓고 병원 문 여는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그 사이 아픔에 낑낑거리다 잠든 아이. 고요한 아침시간. 조용한 집. 아이는 왜 아픈 걸까.
병원에 가보니 의사는 잘못 먹은 음식은 없는지 물어봤다. 아이가 먹은 거라곤 학교 급식과 내가 만든 음식이 전부인데. 급식을 함께 먹은 친구들도,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은 가족들 모두 괜찮은데 아이는 왜 아플까. 내가 뭘 잘 못줬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이의 작은 아픔도 그새 내 탓을 하고 있다. 언제나처럼.
나는 왜 아픈 걸까. 양극성장애라는 병이 뇌구조 문제에 의한 질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나는 질문한다.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 울증과 조증이 번갈아 나를 괴롭히는 고약한 병에 걸려 이토록 괴로워해야 하는 까닭은 뭘까.
또 내 탓을 한다. 성격이 문제일까, 환경이 문제일까, 활발하지 않은 탓일까, 운동을 하지 않은 탓일까, 혼자 있는 시간이 긴 게 문제였을까. 내 탓을 하는 이상한 성격 탓에 이런 병에 걸려버린 것일까. 답도 없는 병을 가지고 이리저리 내 탓만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
양극성장애는 어쩌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완치라는 개념이 없어 약을 먹다 중단하면 바로 조증이 나타날 수 있어 위험하다. 그리고 조증이 아닐 땐 한없이 어두운 우울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 약을 먹을 각오를 하고 있다. 이 병이 나를 괴롭힐지라도, 그래서 그 까닭을 나에게 물으며 내 탓을 하며 살아갈지라도. 평생 약을 먹으며 이 병과 싸워야 할 각오가 되어 있다.
아이는 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그새 괜찮아졌다. 병원에 다녀와서 약을 한 두 번 먹으니 금방 좋아져서는 팔팔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아이처럼 나도 그럴 것이다. 약을 먹으면서도 내 탓을 하겠지만, 좋아졌다가 나빠질 때도 있겠지만, 앞으로 괜찮은 날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괜찮은 날들이 쌓여가면 힘든 날도 아무렇지 않게 넘아갈 수 있겠지.
모든 게 내 탓일지라도, 그런 생각이 들지라도,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언젠가 괜찮아질 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