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기분을 기록해 봤어요. 막상 기록해 보니 생각보다 기분이 안 좋았던 날은 적었고 기분이 좋았던 날이 꽤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기분이 괜찮은 날들이었구나 했어요."
의사는 아주 기쁜 표정으로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우울에 빠져있다 보면 기분이 좋은 날보다 안 좋은 날이 상대적으로 더 많게 느껴지기도 하고,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것을 크게 느끼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루하루 기록하다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분명 좋은 날도 많은 거라고. 아주 잘하고 계신 거라며 나를 독려했다.
정말 신기하기도 하지. 분명 기분이 안 좋은 날만 기억이 나는데 하루의 끝 밤 10시가 되면 기록했던 내 기분엔 기분 좋은 날과 안 좋은 날이 거의 반반씩이라니. 기분이 그저 그런 날과 아주 안 좋았던 날들이 반복되던 한 주도 있었지만 일주일 거의 대부분이 기분 좋았던 주도 있었다. 나에게도 생각보다는 기분 좋은 날이 분명히 있었다.
사람들 다 이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기분이 좋았던 날들과 좋지 않은 날을 번갈아가며 살아가는 거겠지. 나도 이제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해지기도 하는 건가 보다 하기엔 아직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무겁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깊이를 들여다보자면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무서워진다.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의 깊이는 끝없이 어둡다.
나 좀 안아줘.
내 한마디 말에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곧장 안아준다. 따뜻한 사람. 따뜻한 품. 공허함은 따뜻함으로 감싸진다. 어두운 공허함은 언제나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말 한마디만 하면 따뜻할 수 있으니 괜찮다. 안아줘라는 말은 날 좀 잡아줘, 불안하지 않게 해 줘, 안정되게 해줘 라는 말. 나는 이 좋은 사람의 품에서 좋지 않은 날을 좋은 날로 바꾸기도 한다.
좋은 날들, 그리고 좋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날들의 반은 좋은 날이다. 좋은 날만 생각하고 좋은 것만 보면 괜찮아질 것이다. 슬픔도 공허함도 없는 그런 좋은 날이 분명히 있다. 그런 좋은 날이 있기 때문에 나는 오늘을 또 잘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