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글을 써요. 글을 쓰면서 기분이 나아졌어요."
양극성장애에 관해. 양극성장애인 나에 대해 글을 쓴 후로 우울에 잠식되었던 내 상태는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글을 써서 인지 약을 매일 꾸준히 먹어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기분이 나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래도 좋은 날보다는 보통인 날이 많긴 하지만 말이다.
보통. 흔하다는 단어와 비슷한 말이다. 하지만 나에겐 보통인 날은 특별한 날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날. 마음의 동요도 없이 잔잔한 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날. 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은 날. 어둠 속에 갇히지 않은 날. 그런 보통의 특별한 날. 그런 보통의 날이 좋다. 보통의 날이 많아졌다는 건 좋은 의미다. 우울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아무도 없는 집에서 글을 쓰고 있자면 잔잔한 호수 한가운데 책상과 의자와 노트북을 두고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조용한 피아노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으면 마음 가득 평화롭다. 분명 연달아 있던 연휴 때문에 겪은 육아로 머리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안온해진다.
우울 속에서도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구나 싶다. 조증이 오지 않았고, 치료는 잘 되어가고, 나는 이렇게 좋아하는 글을 쓰고.
분명 나는 좋아지고 있다. 우울한 날엔 이 우울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터널에 갇힌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다음날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은 날도 있다.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이렇게 보통인 날들이 늘어나 정말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
의사에게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의사는 머뭇거리더니 아마 평생 먹어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몇 년 지켜보다 그만 먹어도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 증상이 나타나면 다시 약을 먹어야 한다고. 나는 이 우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며칠 뒤면 병원에 간다. 그럼에도 힘들었다고 하겠다. 우울했다고 하겠다. 보통인 날이 있던 만큼 우울한 날도 있었으니. 우울한 날에는 마음속 비바람이 몰아치고 소리 없는 번개가 내려쳤으니. 그러므로 나는 써야만 한다. 우울 속에서. 보통인 날 속에서. 절벽 아래에서도. 나의 지나간 보통의 날들이 아까워 써야 한다.
의사는 누군가 보지 않아도, 출간을 하지 않아도 쓰는 건 좋은 것이라고 했다. 나만의 글을 쓰면 기분이 나아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정말 그렇다. 브런치에 글을 써 올리고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쓰고 있다. 우울하고 특별하고 보통인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