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약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꾸준히 빼먹지 않고 먹는 똑같은 약. 다른 점이 있다면 하루종일 육아를 해야 하는 휴일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나 되었는데도 아직 육아가 힘들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일까. 나는 아직 육아가 힘들다. 버겁다.
게임에 눈을 뜬 초등학교 3학년 첫째는 휴일 1시간 정도 게임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심심하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라 많은 책을 읽지만 그마저도 지겨워지면 그때부턴 나를 잡고 늘어진다. 1학년인 둘째도 마찬가지다. 이젠 놀아주지 않는 오빠를 체념하고 나를 붙잡는다. 엄마 놀아줘.
남편이 있는 휴일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어딜 놀러 가기도 하고 집에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하지만 남편이 일을 하러 가거나 약속이 있어 나가는 날엔 나 혼자 육아에 시달린다. 홀로 육아하는 날은 언제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 버거움이 있다.
버거움은 곧 짜증으로 바뀐다. 나는 쉬고 싶고, 누워있고 싶고, 체력도 없고, 아무런 기운이 없는데. 우울한 나를 이해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아이들은 나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의사는 아이들에게 짜증 내지 말라고 했었다. 아이에게 내는 짜증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돼있다고. 그 언젠가가 정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일단 나는 어지럽다. 나에게 매달리는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일이 참 벅차다.
체력이 부족한 우울한 나는 언제나 방 안에만 있고 싶다. 아이들은 이런 나를 모른다.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눈빛 초롱초롱한 아이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들의 엄마다.
어쩌면 이렇게 우울한 나를 살리는 건 아이들 인지도. 한없이 우울에 빠져 있지 말라는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있을 때의 나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나의 모습이 더 생기있어 보이기도 한다. 벅찬 육아지만 엄마인 나는 해야만 하니까. 우울해도 아이들 덕에 몸을 좀 더 움직인다.
우울한 엄마로 사는 나는 언제나 미안함 가득으로 육아를 한다. 아이들은 나를 살리고 함께하자고 일으켜 세우지만 주저앉는 건 항상 내쪽이다. 일어나야 한다. 버거워도 우울해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내게 언제나 사랑을 보내주는 아이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