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다. 이제 울기만 하면 되지만, 울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울기 시작하면 우울의 골은 더 깊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의사 앞에 앉은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우울했던 그동안의 기분을 털어놓을 땐 더더욱. 의사는 그동안의 증상을 물어본다. 의사는 심리상담가가 아니기에 나의 깊은 이야기까지는 물어보지 않는다. 그저 증상을 묻고 약을 처방할 뿐. 정 없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게 의사의 역할이다. 나도 약을 처방받고 먹으며 나으려고 가는 거니까.
그런데도, 속 깊은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눈물을 참는다. 속에 꾹꾹 눌러놓은 슬픔이 꺼내지지 않게 짓누른다. 흔들리는 눈동자. 떨리는 목소리. 의사는 알까. 내가 눈물을 참고 있다는 것을.
사실 그동안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다. 우울해서 또 슬퍼서 그리고 살고 싶어서. 톡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수도꼭지를 튼 마냥 콸콸 나왔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우울에 젖어 잘 걷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던 때를 지나왔다. 지나고 지나 지금. 그래도 지금은 다르다. 눈물이 참아지고, 울지 않는, 가끔은 웃는 괜찮은 내 모습을 발견했으니.
지금의 내가 좋다. 울지 않고 스스로 우울의 터널로 걸어 들어가지 않는 내가. 약의 도움이 반은 넘는 것 같지만 힘을 내서 걷는 내가, 미소 짓는 내가, 잘 먹는 내가 좋다. 그리고 내가 좋다고 하는 자신이 기특하다.
엄마는 결혼 전에 가끔 나에게 "네 덕분에 웃는다"라고 했다. 하루종일 일하고 들어오면 웃을 일이 없던 하루 중 내가 기쁨이 되어 웃을 수 있었다는 것. 엄마가 된 나도 그렇다. 딱 엄마처럼 아이들 덕분에 웃는다. 춤을 추는 아이들,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며 엄지 척해주는 아이들, 뽀뽀해 달라며 입술을 쭉 내미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있기에 남아있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조금은 웃을 수 있다.
눈물이 다 마르고 웃음만 남는 미래가 올까. 어디서든 자신 있게 말하고 잘 웃는, 눈물을 참지 않아도 울지 않는 나를 볼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 나에서 방긋방긋 웃는 나를 향해 갈 것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나를 보고 웃는다. 나는 아이들 덕분에 눈물은 잊고 웃을 수 있다.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이제 조금씩 웃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