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간이 우울했던 것은 아니다. 우울한 시간들이 나를 괴롭히고 또 지나가고, 그러다 다시 우울이 찾아오기도 했던 시간들. 생각해 보면 내 인생 전체가 우울했다고는 할 수 없다. 분명 행복했던 순간들, 즐거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 시간들 전체를 생각해 보면 우울은 정말 지나가는 한 순간에 불과하다. 물론 우울이라는 시간 속에 들어가 있다 보면 우울의 끝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리지만 말이다.
아이가 울었다. 갑자기 모든 게 다 짜증이 난다면서 울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한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가만히 아이를 안고 누워 토닥였다. 아이는 하루의 사소하지만 속상했던 일들을 쏟아냈다. 사소함이 모여 큰 감정이 될 수 있는데 아이는 하루종일 참다 참다 그날 밤에 터져버린 것이었다. 한참을 쏟아낸 아이는 울면서 우울하다고 했다. 고작 8살짜리가 우울이라니.
아이를 토닥여주며 울어도 된다고 했다. 우울할 땐 맘껏 우는 거라고. 그럼 마음이 다 풀린다고. 스스로에게 못했던 위로를 딸에게 한다. 같이 울고 싶은 것을 꾹 참아냈다. 한참 울던 아이는 엄마가 위로해 줘서 괜찮아졌다고 했다. 역시 엄마라며.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건 역시 엄마밖에 없다며 금세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우울은 또 지나간다. 아이의 한 순간의 우울도. 나의 기나긴 우울도.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다. 버티고 버틴다면 말이다.
우울이 나를 떠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물론 병원과 약의 도움을 받았지만 꼬박꼬박 약을 먹은 것도, 힘을 내서 생활하려고 노력한 것도 나니까 내가 스스로 해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울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우울인지 우울이 나 자체인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누구나 정신적인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쉬지 못한 정신은 어느샌가 방전되어 버린다. 그럼 그때 우울이 찾아온다. 우울은 내가 가장 취약한 순간을 찾아와 나를 놔주지 않는다. 끈질기게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우울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지금 나에게서 떠나가버린 우울처럼 말이다.
언젠가 분명 나에겐 우울이 또 올 것이다. 아마 괜찮을 거다. 이젠 괜찮을 거다. 나에게 면역이 생겼는지. 우울은 언젠가 반드시 가버릴 것을 이젠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