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는 날.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가는 길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간다. 남자, 여자, 아이, 어른,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그들 모두 각기 나름의 생각과 고민들을 가지고 살아가겠지. 나만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지고 사는 게 아닌데 그동안 왜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선생님, 사람들은 다 똑같이 살아가고 나름의 힘듦이 있을 텐데 왜 저만 이렇게 힘든 것처럼 느껴질까요."
"맞아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힘듦이 있죠. 문선님도 약 열심히 먹고 치료받으시면 금세 좋아지실 거예요."
그 당시엔 절망적이었다. 나만 힘든 것 같고 나만 괴로운 것 같아서. 나만 깊은 우울의 골짜기에서 허우적대는 것만 같아서. 그렇지만 의사가 처방해준대로 열심히 약을 먹고 글을 쓰며 괴로움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삶의 이유를 찾지 않으며 물에 젖은 솜처럼 지쳐 쓰러져 있지도 않는다. 눈물 흘리지 않는 일상이 왔다. 이젠 정말 괜찮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낮엔 아이들과 웃고, 아이들이 잠든 밤엔 남편과 몰래 부엌에 나와 도란도란 대화한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웃기도 하고, 여행계획을 세우면서 설레기도 하며 소박한 행복을 느낀다. 그동안 여기저기 부서져 흩어졌던 행복조각들을 모으는 중이다. 우울 속에서 내가 놓쳤던 행복, 웃음, 기쁨과 따뜻함. 내가 잃어버린 사랑해야 할 것들을 모은다. 여태 내가 놓친 행복이 너무나 많다.
최근 읽은 책에서 행복하다고 인정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글을 봤다. 이젠 인정해야겠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으니. 그래야만 하니.
물론 행복해하는 나를 밀어내고 다시 우울이 찾아올 수도 있다. 스산한 바람에 떠밀려 함께 날아가버리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처럼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 조금씩 주변의 따뜻함을 모아 사랑을 찾고 또 웃으면서. 병원의 도움을 받고 약을 먹더라도 나는 이제 행복해야겠다.
더 이상 조울증이 무섭지 않다. 아직은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우울증과 조증이 다시 찾아와도 빛나는 행복의 시간을 꺼내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행복이 바로 눈앞에 있다. 이젠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이런 나를 다시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