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랩 없던 시절, 베트남에서 살아남는 방법
베트남에 우버와 그랩이 들어오기 전의 이야기다.
오토바이를 탈 수 없는 나는 선택권이 택시 혹은 쎄옴뿐이었다.
Xe(쎄)는 '탈것'을 의미하고, 재밌는 건 Ôm(옴) 이라는 단어가 '안다' '포옹하다'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즉, 뒤에 앉은 사람이 운전자 뒤에 바짝 붙어 가는 모습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그랩으로 잡아 탈 수 있는 오토바이 택시의 오리지널 모습이 쎄옴이다.
학생시절에는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것이 부담스럽고 비싼 편이라서, 쎄옴을 주로 타야 했는데, 나는 쎄옴을 타는 게 너무 싫었다. 주로 길 위에서 오토바이 위에 올라가 누워있는 사람들이 쎄옴인데, 검지손가락 하나를 펴 치켜세워 '쎄옴이 필요하다, 갈 수 있느냐'라는 서로 간의 수신호를 주고받은 후 탔다.
대부분의 쎄옴은 다 아저씨, 할아버지였으며, 오토바이는 엉덩이가 매우 아픈 '혼다 드림'이거나, 뜯어진 부분을 박스 테이프로 대충 감아놓은 상태가 안 좋은 오토바이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헬멧도 매우 지저분하고 오래되었기에 쎄옴을 탈려거든 헬멧을 꼭 들고 다녀야 했다.
길에 서 있는 쎄옴아저씨들을 콜 하는 것도, 그 뒤에 타고 약속장소에서 내리는 것도 어린 나에게는 뭔가 모양새가 빠지는 것 같아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오빠와 아빠에게 어딜 갈 때마다 자존심을 굽히며 태워달라고 부탁하거나, 베트남 친구들 뒤에 타고 다니는 신세를 지다가 나도 나 스스로의 기동력을 갖고 싶었다.
보통은 한국 운전면허증을 국제면허로 바꿔서 베트남에서도 쓰지만, 그건 유효기간이 있어 계속해서 갱신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그래서 나는 베트남에서 베트남 운전면허 시험을 봐서 운전면허증을 땄다. 베트남 오토바이 운전면허증은 한번 따면 유효기간이 따로 없다. 계속 쓸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인도 베트남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지만, 베트남어로 필기시험을 봐야 하고 실기시험도 봐야 했다. 베트남에서 운전면허 시험을 본다는 건 난이도가 정말 높다.
베트남에는 관공서나 공무원드에게 '뒷돈 (언더 테이블 머니)'을 주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고 많았다. 지금은 덜하지만 여전히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베트남의 오토바이 필기 운전면허 시험은 컴퓨터로 보는데, 기출문제 몇백 개 정도가 미리 공부해 갈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그 기출문제의 질문과 보기번호까지 그대로 나와서 사실상 언어를 몰라도 몇 백개 질문과 답을 외워가면 볼 수 있긴 하다. 그렇기에 중요도가 떨어져서인지 외국인이던 현지인이던 모두 뒷돈으로 필기시험을 패스하는 일이 과거에는 많이 일어났던 것 같다. 현재는 외국인이 운전면허시험을 보려면 거주증이 필수이고 절차도 훨씬 까다로워져, 예전처럼 뒷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토바이 운전면허 시험장에 모인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자신이 스스로 운전해서. 당당하게 운전면허시험장에 무면허로 운전해서 오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여차저차 힘겹게 필기시험을 먼저 치르고, 실기시험을 봐야 하는데, 이때 긴장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연습을 하고 갔지만, 시험 코스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당시 기어를 넣는 수동 오토바이만 준비되어 있었기에 익숙하지 않은 오토바이로 주행을 해야 한다는 악조건도 겹쳤다. 8자 코스를 마치고, 좁은 일자 라인이 그려져 있는 코스를 직진으로 통과하고, 요리조리 지그재그로 장애물을 피하는 코스를 지나 울퉁불퉁하게 방지턱을 좁은 간격으로 설치해 둔 길을 지나면 됐다.
다른 건 쉬웠지만 8자 코스에서는 이미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베트남 사람들도 많이 떨어졌다.
내리쬐는 땡볕 아래서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이를 악물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오토바이 핸들을 잡았다. 외국인을 바라보는 베트남사람들의 시선까지 신경 써주면서 8자 코스를 멋지게 통과하고 다음 2가지 코스도 지나니 다 끝났다는 생각에 정신이 희미해졌다.
가장 쉬울 줄 알았던 마지막 울퉁불퉁한 코스에서 나는 속력을 줄이지 않고 달렸고, 한 개 한 개 방지턱을 지나칠 때마다 튀어나갈 듯 통통 튀어 올랐다. 다행히 오토바이에서 넘어지거나 하지 않았지만,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한 번에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따낸 150cc 오토바이 운전면허증은 든든한 존재가 되었다. 혹시라도 베트남 교통경찰 공안에게 잡혔을 때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상황이 많이 곤란해지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군대 간 오빠가 타던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를 누볐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집 앞을 나가는 것도 무서웠지만, 점점 익숙해지며 까불다가 차도에 나와있는 쓰레기 철제 수래를 혼자 들이받고 크게 넘어져 발목을 다쳐 한 달 넘게 못 걸어 다녔었다.
그 이후로, 오빠가 타던 오토바이가 잔고장이 많기도 했고, 초보인 내가 타고 다니기엔 무겁고 위험한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아빠의 도움을 받아서 나의 첫 오토바이를 샀다.
그 당시 신제품으로 나왔던 야마하의 'Grande' 그란데 였다. 왜인지 아직도 모르지만, 이름을 '파푸아 뉴기니'로 지어주었다. 아마 해가 쨍쨍한 바다가 생각나는 여름날 샀기 때문인가 보다.
나는 내가 큰돈을 투자해 산 물건을 아주 아끼는 편인데, 내 첫 오토바이 또한 소중했다. 심지어 세차도 맡기지 않았고, 직접 손세차를 해야 직성이 풀렸고, 친오빠에게도 빌려주길 꺼려했다.
그렇게 기동력이 생긴 나의 삶은 좀 더 달라졌고, 대학 내내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하고, 왕복 2시간 거리의 첫 직장도 오토바이로 출퇴근했다. 엄마의 쎄옴기사 역할을 수행해 냈으며, 친구들을 태우고 카페를 다녔다.
뒤에 누군가를 태우는 건 아직도 조금 불안하지만,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타지 못한다는 건 정말 생각보다 많은 제약이 생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숙련된 운전자가 아니라면 베트남에서 운전은 위험하다. 첫 직장의 먼 거리를 매일 오가던 나는 매일 출퇴근 길 위에서 심장을 졸이며 운전했다.
하루는 회사의 경비아저씨랑 떠들다 내가 운전이 무섭다고 하자 아저씨는 아빠 같은 말투로 "40km로만 달리면 괜찮아!"라고 해주셨다. 그래서 간혹 무서워질 때면 그 말을 떠올리며 40km로 속도를 줄인다.
그랬던 내가 공안에서 속도위반으로 걸리는데, 공안에 잡혔던 썰들은 다음 글에서 풀어보겠다.
https://brunch.co.kr/@halfsaigonese/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