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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반 Aug 14. 2020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떠오르는 영화다. 단 며칠의 시간 동안 타오르게 사랑하고 헤어져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는 불륜이라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는 성별과 계급때문에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들의 사랑은 왜 그토록 애틋했을까?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어서 더 애틋한 건 아니었을까?




차별을 말하다.
영화에는 다양한 사회적 차별이 등장한다. 동성애, 계급 그리고 남녀차별까지. 이러한 차별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헤어짐이 그 차별을 오롯이 느끼게 해준다.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백작 부인은 자신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이지만, 엘로이즈에게 결혼을 강요하며 가부장제를 재생산한다. 물론 그를 욕할 수는 없다. 백작 부인은 무엇이 잘못된지 조차 모르는 기성 세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 그리고 소피는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당시 사회의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물들이다. 백작 부인이 떠나고 저택에 세 사람만 남게 되자 그곳은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은 평등한 공간이 된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서로를 마음껏 껴안고 사랑한다. 소피와 엘로이즈 사이의 신분은 사라지고, 마리안느는 '여류화가'가 아닌 화가로서 그림을 그린다.




마지막을 말하다.

어느 밤, 오르페우스 신화를 읽던 두 사람은 그가 마지막 순간 왜 뒤를 돌아봤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엘로이즈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에우리디케가 먼저 돌아보라고 말했다면?' 그 말을 들은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백작 부인이 돌아오고 마리안느가 떠나는 순간,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돌아보라고 소리친다.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가 그랬듯, 불가항력적으로 뒤를 돌아 엘로이즈를 바라본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이다.   


엘로이즈는 그 순간이 마지막임을 알았기에 마리안느를 불러세웠다. 어쩌면 에우리디케도 그랬을지 모른다. 지하의 문을 나선 후에도 자신은 다시 살아날 수 없고, 오르페우스가 지상의 문턱에 발을 내딛은 그 순간이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제발 돌아봐 달라고 외친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간극처럼 엘로이즈와 마리안느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성별과 계급이라는 장벽은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을 붙잡기 위해 엘로이즈는 외쳤을 것이다. 사랑하는 마리안느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서.




사랑을 말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활활 타오르던 엘로이즈의 불붙은 치마처럼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사랑도 어느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일수도 있고, 시나브로 타올랐을 수도 있다. 그 시작은 알 수 없어도 그 끝은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 한 두 사람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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