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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왜 새벽에 글을 쓸까

그냥 작가 말고 엄마 작가

어지러웠다.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 

모니터를 바라보고 앉아 있지만, 키보드에 올린 내 손은 갈 곳을 잃고 헛손질만 해댔다.

써야 하는데, 쓰고 싶은데. 카페나 도서관의 두런두런한 생활소음과는 달리 아들 둘 있는 집의 저녁 9시 소음은 쨍하고 아찔했다.

애들하고 함께 놀 땐 몰랐는데. 와, 내 일 좀 하겠다고 맘먹으니 이게 이렇게도 들리는구나.

짜증이 밀려왔다. 

두 형제는 지들 나름대로 숙제를 다 마치고 자유시간을 갖는 중이었고, 마땅히 시끌벅적해야만 했다. 아주 당당히. 동시에 엄마라는 자도 아이들 단도리를 마쳐놨으니 이제 자유 시간을 갖고자 했고, 마땅히 조용해야만 했던 것이다. 후, 이게 무슨 불친절한 현실이냐는 말이다. 너무나 대조적인 수미쌍관.

내가 이기적인 건가. 


© 픽사베이


평범한 아파트의 아늑한 집, 사춘기 전의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니 우리 집은 항상 모든 방문이 열려있다. 사실 난 이게 너무 좋다. 사춘기 이후 늘 방문을 닫고 들어갔던 기억이, 그때의 나는 그게 좋았지만 지금 나의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역시 이기적인 생각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거늘. 

무슨 걱정이 이리도 많은지. 아이들과 부대끼고 뒹굴며 깔깔대는 지금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하지만, 사실은 그럴 수 없다는 게 벌써부터 날 슬프게 한다. 

그러면서도 참 이상한 인간이란 존재는, 종종 이런 본마음을 잊고 순간의 짜증에 굴복하고야 만다.


"조용히 좀 해라, 너희들 이 시간에 너무 신나게 노는 거 아니야?"

"엄마 방 문 열지 마, 알겠지!"


아이들이랑 친구처럼 지내는 게 좋다면서, 내가 먼저 방문을 닫고 있다. 우습다.




어떤 글쓰기 수업이 있었다. 한 번은 보았고, 한 번은 들었다. 두 수업의 공통점은, 새벽 글쓰기를 권한다는 거였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있었다. 그냥 내 생각을 담담히 글로 쓰면 되는, 별 거 아닌 일이라 생각했다. 문체나 필력은 알아서 좋아지겠지, 일단 그저 쓰다 보면 해결될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만만히 쭉쭉 써나갔다. 하지만 글이란 내가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글답게 써지는 놈이었고, 생각처럼 만만하게 볼 녀석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돌이켜보니 내가 글을 쓴 시간은 모두 늦은 밤, 또는 새벽 즈음이었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 왜 엄마 작가들에게 새벽 글쓰기를 권하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글의 재미를 느껴 마구 달리던 초반의 열기가 조금은 진정이 되기 시작하자, 그간 쌓인 피로가 몰려왔다. 

마치 술기운에 피곤한 줄 모르고 밤샘파티를 하다가 아침이 되자 비로소 아 힘들구나 알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재미없게 살았기에 그런 적은 없지만, 비슷할 것 같다.


무식하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계획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퇴근시간도 들쭉날쭉하고, 퇴근 후엔 아이들 케어를 해야 했기에 나에게 최적의 시간은 아이들이 없는 시간이었다. 녀석이 같이 학원에 일주일에 있는 꿀 같은 저녁 시간과 아이들이 일찍 잠든 시간, 그리고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 시간.

보통 밤에 글을 쓰면 새벽엔 불가능하고, 새벽에 글을 쓰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불규칙하던 내 생활에 어느 정도의 규칙이 생겨난다.


아이들과 어울리고, 즐겁고, 행복하려 글을 쓰려한다. 

괜히 애들 잡지 말고, 이미 충분한 시간을 잘 꺼내어 활용해야지, 다짐해 보는 밤이다.

자연스레 늘 쓰는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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