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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헤어지자, 우리.

그래 너. 지긋지긋한 편두통.

뒷목이 뻐근하다. 정확히 뒷목 왼쪽 부분. 목에서 머리로 이어지는 지점 움푹 파인 부위.

의학적 지식은 없으니 정확한 명칭들은 모르지만, 그냥 늘 그 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다. 쫙-땡기는 듯한 뻐근함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통증은 이제 관자놀이를 향한다. 콕콕, 콕.

그러다 머리 위로 올라가 정수리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지끈, 욱씬.

몸 전체적으로 보면 온몸이 살짝 굳어있다. 경직 되는 느낌. 양쪽 어깨 모두 쑤시고 결리고. 두 다리 역시 저려온다.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거다. 이런 신호가 오기 시작하면 아차 싶다. 이제서야 어깨를 쫙 펴고 허리를 곧추세운다. 괜히 팔도 휘둘러 보고 다리도 쭉쭉 스트레칭을 해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굳은 몸은 쉽게 풀리지 않고, 유독 왼쪽 머리로만 찾아오는 지독한 편두통은 점점 강도가 세질 뿐. 한 번 발동이 걸렸다가 후퇴하는 법은 없다. 꼭 끝을 보고서야, 약이 들어가고 나서야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것도 아주 서서히.



일 하다가 너무 아파 약국에 뛰어가 약을 사왔다


나는 자세가 안 좋다. 그렇다고 누가 볼 때 심하게 이상하게 앉아 있거나 삐딱한 사람은 아닌데, 미세하게 삐뚤어져 있다. 거울을 보면 오른쪽 어깨가 살짝 올라가 있고, 가방도 늘 오른쪽 어깨에 맨다. 무거운 물건도 마찬가지. 왼쪽으로 들면 팔이 더 아파서, 튼튼한 오른팔과 어깨를 주로 쓴다. 그렇게 치우치다 보니 점점 오른쪽이 솟아오르고, 오른 어깨만 뭉치고, 골반도 비뚤어지고, 시력도 짝이 안 맞는다. 얼굴도 비대칭 같다. (세상에 완벽한 대칭 얼굴은 없다지만) 그런데도 자꾸 편한 자세(=잘못된 자세)를 취하려는 본능이 있다보니, 이런 자세와 아픔의 패턴은 끝 없이 이어진다.




지긋지긋한 편두통. 

대략 고등학교 3학년쯤부터 시작된 것 같다. 사실 잘은 모르겠는데, 공부 스트레스 라는 납득하기 힘든 의사선생님의 첫 소견을 들은 기억이 있어서 왠지 그 때 쯤인 것 같다. 그 후 대학생 시절과 2-30대에도 꾸준히 아팠던 기억은 확실하다. 

아프면 일단 뭘 하기 힘드니, 친구들하고 놀다가도 울면서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난다. 머리 아픈 것도 한 두번이지, 이게 괜찮을 때는 1~2년씩 잠잠하다가도 한 번 아픈 기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통증이 오니. 몇 번 지속이 되자 친구들도 내가 좀 아파 보이면 얼른 집에 가보라고 했고, 나는 그게 또 왜 그렇게 서운했는지. 참 어렸다 그 땐.


심지어 결혼 전 영국에 사는 언니네 집에 놀러가는 날도 아팠다. 딱 그 날 아프기 시작했다. 비행기 타야 하는데, 14시간을 어떻게 가지? 난 소박한 이코노미인데.. 아침부터 놀란 부모님이 수소문 해 신경과를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그 후 10년이 넘도록 들락날락 했다)너무 아파서 병원에 거의 기어 들어가, 누운 채로 머리맡의 선생님이 목 뒤에 놔주시는 정체모를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서 링거 한 통. 진통제가 빨리 듣지 않으니 주사로 맞은 거다. 훨씬 효과가 빨랐다. 

어쨌든 그 때 난 그 난리를 치고서, 처방받은 나름 쎈 두통약을 손에 꼭 쥐고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었다. 가서도 간간히 통증은 발현됐고, 한 밤 중에도 머리맡에 물을 떠 놓고 약을 상시 대기해 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몇 년 간은 잠잠했던 것 같다.

가장 심했던 건 큰 아이 출산 후, 아이가 6개월 쯤 되었을 때였다. 한창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고, 먹이면서 재우면 버릇 들까봐 매번 나도 꼿꼿이 앉아서 수유를 하고 안아서 트림을 시키고 다시 재우곤 했다. 그러다 비슷한 시기 친한 언니와 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데 놀라운 이야기를 접했다. 아니 언니는 누워서 수유를 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너무 편하다고 하며, 나에게도 강하게 추천을 했다. 나는 그간 누워서 아이를 먹이면 같이 잠들 것 같고, 그게 습관이 되면 아이는 계속 잠들기 전 쭈쭈를 찾을 것이고 그럼 난 힘들 것이고 등등 걱정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도 늘 앉아서 수유쿠션을 이용했었는데. 언니는 그냥 편하게 자연스럽게 되는대로 한다는 거였다. 고지식했던 나에겐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별 것도 아닌데 그 땐 왜 그랬는지. 뭐가 그렇게 바꾸는 게 어려운지 같은 방식만 고집하던 난, 큰 맘 먹고 따라해 보기로 결심을 했다. 



© 픽사베이



그게 화근이었을까. 

안 하던 자세로 누워서 수유를 해보니 나에겐 이게 편한 자세는 커녕 너무나 곤욕이었다. 내가 편한 자세를 못 찾아서 그런가, 이런 저런 자세로 아이 옆에 누워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급기야 한 쪽 어깨가 눌리면서 편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와-우.


수유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약도 못 먹을텐데. 어, 어떡하지 오빠. 오랜만에 이거 왜 이러지 이러면 안 되는데.


속으로 아무리 외치고 기도해도 소용 없었다. 찌릿찌릿 욱신욱신, 몇 년이 지났어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전조증상에 이어 편두통은 시작 되었고, 안 그래도 늘 피곤하고 지쳐있던 불쌍한 수유부는 결국 바닥을 뒹굴뒹굴 구를 정도로 통증을 호소했다. 

결국 난 아이를 안은 채 뒷자리에 앉아 병원으로 거의 실려가다시피 했고, MRI와 CT 촬영까지 신속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뭐 나왔겠는가. 대답은 '아니오'다. 머릿 속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아무 이상이 없었고, 역시나 자세로 인해 눌린 신경 탓일 거라는 애매한 답이 돌아왔다. 

그 때 가져온 스트레칭 안내 전단 책자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 후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쨌든 무사히 넘어갔으니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싶다.


그 후에도 거의 일 년에 한 번 꼴로 편두통은 날 괴롭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였다.

작년에는 도수치료와 물리치료를 병행도 해 보고 별 방법을 다 써봤는데. 그 때 잠깐 자세도 바르게 하고 다니는 등 건강에 신경을 좀 쓰다가 최근 다시 방심의 아이콘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더니 바로 찾아 온 그 분. 휴-






사람은 참 간사해서, 내가 아파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어 하고, 아무리 아프다가도 치료를 잘 받아 싹 낫고 나면 또 아프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도 그런 그저 흔한 사람일 뿐이었고, 그래서 또 이렇게 아파하고 있다. 무한한 반복.

이런 만성 두통, 편두통을 계속 가져가는 나 외에 또 많은 분들께 고하며 이 글을 마친다.


아픔을 기억하길.
늘 바른 자세와 스트레칭만이 살 길.
조금이라도 아프려 할 땐 최대한 빨리 약을 먹기를.
약은 빈 속엔 안되네, 꼭 뭐라도 먹고 드시길.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아픔을 기억하는 것.



어쩌면 운이 좋아, 두 번 다시 아프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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