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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눈치는 빨라가지고

프러포즈. 이젠 다시 받을 수도 없는데, 쳇.

생각이 많은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 이런저런 공상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다. 다들 이렇게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지, 내가 유독 좋아하는 건지는 몰랐다. 그냥 나름의 바쁜 스케줄이 있는 초등 시절, 나의 작은 소망 중 하나가 '생각하는 시간도 시간표에 넣었으면'하는 것이었던 건 기억이 난다.

하지만 생각하는 시간을 초등 딸 시간표에 넣어줄 깨어있는 부모가 그 시절 있기나 했을까, 난 틈틈이 침대에 멍하니 걸터앉아 공상에 빠지는 바람에 다음 이동 장소로 가는 시간을 늦추는 엉덩이 무거운 딸내미일 뿐이었다. 결국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나는 아쉬운 대로 공부시간에 자꾸 문제집에 낙서를 하며 생각을 이어갔고, 공부도 공상도 이도 저도 아닌 그저 그런 애로 성장했다. 


이렇게 내가 나를 분석해 보니 참 별 거 없는 인생이었지만. 생각의 바닷속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이었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알았던 그 시절이 갑자기 그리워져 온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피곤해지기도 하고, 없는 걱정도 만들어하게 되는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오늘도 피곤한 몸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타자를 치는데 불현듯 10년 전쯤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픽사베이



꽃 피는 4월, 그와 나는 행복에 취한, 시작하는 연인이었다. 10대보다는 빨리, 30대보다는 느리게 흘렀던 그저 그랬던 나의 20대가 저물어갈 무렵, 이런저런 연애도 일도 다 귀찮고 지쳐갈 때 즈음 그를 만났다. 

내 인생 세 번째 회사. 겉보기에 참 번지르르했던,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회사 소개를 보고 입사했지만 너무나 별로였던 그곳을 다니는 도중이었다. 직원을 일하는 기계쯤으로 아는 오만한 대표가 있는 곳. 대표는 정말 단 5분, 10분도 직원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오후 커피타임조차 시간을 칼같이 정해두는 사람이었다. 이전의 큰 회사들에서 전체적인 굵직한 흐름을 타며 자유롭게 근무했던 나는, 그 사무실에서의 숨 막히는 하루 8시간을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곳일수록 월급도 적게 준다.)

어쨌든, 괜히 겉모습에 속아 멍청이 같은 회사에 들어간 나를 탓하던 그 시절 어느 주말,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남자랑 청담동 CGV에서 영화를 보고 그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애인이 없던  그 시기엔 가끔 소개팅으로 알게 된 사람과 한 두 번 만나보고 말기도 했는데, 그때가 딱 그랬던 것 같다. 재미없는 주말 오후의 카페, 저 쪽에서 누가 걸어왔다. 엇. 고등학교 친구다. 그때가 29살 때니까, 졸업하고 10년쯤 되었을 때였다. 거의 스무 살 재수생 시절에 만난 게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이 친구는 그때 그대로 예뻤고, 우리는 너무 반가워 며칠 뒤 따로 동네 카페에서 만남을 가졌다.

서로 이런저런 살아온 얘기를 하며, 요즘 만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마침 자기에게 들어온 소개팅 자리가 있는데, 자기는 지금 썸 타는 사람이 있고, 좀 잘 되어가고 있으니 이 소개팅을 나에게 넘기겠다고 했다. 오- 마침 지루했던 일상에 단비 같은 기회였다. 여자친구한테서 소개팅 넘겨받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들어보니 썸 타는 사람이 있어서 거절하는 이유도 있지만, 나이가 좀 많은 것도 별로여서 넘긴다고도 했다. 나이 차이쯤이야 나는 괜찮았고, 다른 이유는 없다 하니 믿음을 갖고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번호를 넘겨받고 있던 중, 그와의 첫 통화가 기억난다. 

결혼 후 외국에서 살고 있는 언니를 제외한 우리 세 가족(엄마, 아빠, 나)은 여느 때처럼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수저 세팅 정도를 도우면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방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7시쯤 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전화기 너머에선 굵직한 상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주변엔 이런 목소리는 없는데, 뭔가 신선했다. 그리고 젠틀했다. 굵은 목소리와 나는 한껏 내숭을 떨며 약속장소와 날짜, 시간을 정했다. 그때가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얼마나 예쁠 때였는지. 설렘 가득 안고 저녁을 먹은 후, 자유로운 저녁 시간을 방에서 홀로 보내며 얼마나 자유를 만끽하던 때였는가. 불과 10년 전이지만 내가 '가족'이라 부르는 단위가 지금과 다르던 때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엄마 아빠는 사랑하는 내 가족이지만 그때는 지금의 이 가족이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때라는 생각을 하니 새삼 소름이 돋는다. 후, 할머니 같은 소리는 그만하고.


그다음 날부터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소개팅이 처음도 아닌데 새삼 설레었고, 지옥 같은 회사를 탈출해 약속 장소인 역삼역 8번 출구로 향할 때의 기분도 생생하다. 3월, 막 봄이 시작되는 그때.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음원이 2012년 3월 29일 나온 거 보니 우리가 만난 지 며칠 후였네. 맞다. 우리의 연애시절 이 노래는 마치 냄새처럼 내 기억에 각인돼 있다.

어쩌면 날씨와 계절까지도 상남자와 나의 만남을 이렇게도 도와주는지. 

첫 만남. 굵은 목소리와 어울리는 생김새의 그는, 키도 무척 커서 내가 올려다봐야 했고, 몸도 좋고 얼굴도 까무잡잡해 첫인상은 그냥 말 그대로 상남자였다. 나이차이도 좀 나는 데다가 사회생활을 오래 한 그는 아주 젠틀했고, 무척 편안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어색하지 않았고, 첫 만남부터 아주 많은 대화를 했다. 

그땐 첫 만남 소개팅 자리에서 담배 피우러 나갔다 오는 것도, 숨기지 않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솔직해서 좋다 느꼈으니. 지금 보면 콩깍지가 제대로 씌긴 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상남자는 아직도 매우 솔직하고 당당하다)


내가 왜 이렇게 그와의 만남을 시작부터 회상하는 걸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에선 벚꽃엔딩 노래가 흐르고 있고, 그래서 분위기에 취했는 지도 모른다. 아니면, 제목부터 쓰고 글을 써 내려가는 내 성격으로 보아 불현듯 그의 프러포즈가 떠올랐지만 글을 쓰다 보니 또 상세한 배경 설명부터 하는 내 버릇이 나온 건지도.

여하튼 우리는 불타는 연애를 했고, 당시만 해도 신랑의 나이가(불과 서른여섯) 결혼하기에 늦었다 생각해 많이 서둘러 여름, 결혼에 골인했다. 아- 식상한 표현이란.


결혼식 전, 우리나라의 희한한 전통이 되어버린 프러포즈에 대해 이제 좀 얘기해 보겠다. 

외국 영화에서 처럼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순간에, 둘이 결혼에 대한 약속도 있기 전, 아주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 정말 서프라이즈 하게 하는 것이 진짜 프러포즈라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만약 분위기는 좋았는데 결혼 생각이 없다면? 그건 또 얼마나 민망한 상황일까. 생각해 보면 그냥 우리나라 스타일의 이런 형식적인 프러포즈가 나은 것도 싶고 그렇다. 당사자들 입장을 생각해 주자면 말이다.

나는 감동적이고 슬픈 영화를 보면서도 남들 앞에서 우는 걸 잘 못 하는 성격이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좀 부끄럽고 오글거리는 기분 때문에 눈물이 나도 최대한 참고, 괜찮은 척하는 성격. 그래서 내 결혼식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프러포즈에 대해 기대하지도, 상상해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주말 우리는 여느 때처럼 데이트 약속을 했고, 이번엔 좀 멀리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기로 했다. 연애 시작부터 결혼 당일까지 우린 그의 회사 해외 워크숍 2박 3일 동안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고, 그게 우리의 자랑거리였으니. 안 해본 데이트가 없을 정도였고, 이제 연극 보러 대학로에 가는 코스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을 했다. 

연극 시간을 확인하고 점심, 하코야라는 식당에서 돈가스를 먹었던 것 같다. 토핑으로 나오는 마늘과 파가 신선했던 자잘한 기억!

그리고 그를 따라 공연장으로 갔고, 연극은 시작되었다. 어두운 객석에서 한참 웃으며 즐겁게 보던 중 이제 연극은 막바지가 되어 갔고, 어둠 속에서 고개를 돌리자 방금 전까지 있던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 하아, 정말 난, 왜 이리도 눈치가 빠른 걸까. 너무도 느낌이 강하게 왔다. 보통은 남친이 사라지면 화장실에 갔겠거니 텐데, 오히려 아무 없이 사라진 게 추리에 단서를 것도 같았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왔다 갔다 했다. 



©픽사베이



아, 드라마 속에선 아무것도 모르다가 여자가 정말 놀라면서 두 손을 입에 가져가며 눈물을 글썽이고, 남자의 반지를 받으며 결혼해 주겠냐는 말에 Yes를 외치는데. 난 어쩌지, 현실은 너무 다르잖아. 분위기 좋은 BGM도 없고 이 공연은 심지어 개그 공연이었단 말이야. 신나게 웃고, 지금 엔딩 무대에서도 신나는 음악이 흐르고 있는데. 설마 내 남친이 저기에서 나오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인생 29년 차 여자의 예감은 슬프게도 딱 맞아떨어졌고, 무대에선 배우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웃으며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쑥스럽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람처럼 나는 담담히 무대로 나아갔고, 배우들의 리드에 따라 곧 그가 등장해 무릎을 꿇고 나에게 반지를 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어디서 많이 본 장면들처럼 감정을 좀 잡아보고자 애쓰기도 했지만 날 바라보는 그 수많은 눈앞에서 그건 좀 많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민망하게 평소 하지 않는 자세를 하고 손까지 치켜들고 있는 그를 빨리 일으켜주기 위해 후다닥 반지를 받고 환하게 웃었다. 매일 만나는 와중 나 모르게 혼자 이렇게 준비하고, 데리고 오기까지 그가 얼마나 더 설레었을지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번졌다.

변명 같겠지만 여기서 '슬프게도'라고 한 건 그 프러포즈가 싫었다는 게 아니다. 내가 눈치를 챈 것이 슬펐다는 거다. 왜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가지고. 인생에 한 번뿐인 그 순간을 놀라지 않고 눈물 없이 후다닥 끝내고 말았는지 두고두고 아쉽다. 

분명 그는 그 어떤 단서도 미리 주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여자의 촉이란.


다시 할 수도 없고.
내 인생에 이제 연애는 끝인데 말이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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