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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이가 없다

나도 어느새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어

작은 수첩을 잡고 뭐 좀 써보려는데 눈이 침침하다. 아직 만 나이로는 39살이지만 한국식으로는 벌써 40대가 되었다. 아직 아닌 것 같은데. 아니긴 뭘. 숫자는 속일 수가 없다.




초등 3학년 때 즈음, 어릴 때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는 부모 자식 관계가 요즘과는 조금 달랐던 시대다. 엄마는 딸 둘의 일거수일투족을 케어하고 돌봤지만 우리에게 엄마는 그저 사랑하는 엄마일 뿐, 개인적인 것들은 모르는 것도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학교 간 뒤 엄마는 뭘 하는지, 좋아하는 음악이나 친구 관계는 어떤지 등엔 좀 무심했었다. 요즘엔 자녀와 친구처럼 지내는 부모가 늘고 있고, 그로 인해 어떤 면에서는 부모의 권위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반대로 친밀도가 높아졌다는 면에서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그날은 한가로운 어느 오후였고, 나는 거실 한편 엄마의 작은 테이블에 놓인 물건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전화번호부와 엄마의 수첩, 노트, 책 등이 놓여 있었다. 엄마의 글씨로 가볍게 갈겨쓴 메모들을 보면서, 어른들의 글씨는 왜 아이들과 다를까를 고민한 적도 있다. 그건 크고 나서 저절로 해결될 고민이었다. 나도 그렇게 되더라. 한 자 한 자 눌러쓰기보다는 힘 빼고 빠르게 휘리릭 꼼꼼히 글씨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는 어른의 삶. 탁자 위의 어느 여성 잡지 틈에는(엄마는 그때 잡지를 구독하셨다) 엽서가 한 장 끼워져 있었다.


"애독자 엽서"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내용 전부가 밖으로 드러나는 종이 엽서. 거기엔 엄마의 이름과 주소, 나이까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최OO, 37세"


아. 우리 엄마가 서른일곱 살이구나. 아홉 살의 나는 그걸 보며 뭔가 묘한 감정을 느꼈다.(지금까지 생생히 기억나는 걸 보니 확실하다) 늘 언니랑 내 나이만 생각하던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도 나이가 있구나, 엄마의 삶도 이렇듯 각별하게 존재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럼 그 후로는 계속 엄마 나이를 세고 있었냐고? 그렇지는 않다.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가 엄마에게 투정 부리고, 엄마는 딸들 위주의 삶을 사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방적인 내리사랑이 이어졌다. 나도 엄마를 사랑했지만 표현과 돌봄에 있어 내리사랑만 하랴. 자식이 부모의 나이를 모른다는 건 당연히 어린 시절에 국한될 뿐이지만, 여러 면에서 그 관계의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 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본인 나이, 생년월일을 정확히 안 지도 얼마 안 되는 아이들이 저희들 엄마가 몇 년도 몇 월 며칠에 태어났는지 몰라도 전혀 서운하지 않다.


부모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내 부모에게 받았던 사랑을 그러모아 내 아이에게 퍼주는 사람. 받은 사랑이 많을수록 아래로도 쉽게 내려줄 수 있고, 혹여 많지 않더라도 내 안에서 스스로 키워낸 사랑을 모아 내어 줄 수 있는 존재.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시간이 흐르긴 하나보다. 마음은 평생 어린 아일지라도 내 생각이 나이가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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