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우리 반엔 카랑카랑 목소리도 크고 당찬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매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은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다. 그 무렵 초등학생의 발표라고 해야 대단할 건 없었고, 가장 많은 목소리를 내는 때는 일어서서 국어책을 읽는 순간이었다. 한치의 틀림도 없이 또박또박, 그리고 약간의 비음이 섞인 듯 하지만 열린 목을 통해 울리는 맑은 목소리. 그 아이의 말투 중에는 '~의'를 발음할 때 '~으'라고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아마도 부모님의 사투리 영향인 듯했다) 나는 그마저도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끼곤 했다. 반장인가 부반장인가도 했었는지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경례!'라고 하는 것도 참 멋졌다.
그런 아이들은 목소리가 참 맑고 또렷하고 힘이 있어서, 그 목소리는 동요를 부를 때도 빛을 발했다. 고음으로 쭉- 뻗는 발성이 정말 너무나도 부러웠다.
반면 나는 어땠을까.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는 그 반대였다. 내가 그들을 부러워했다는 건, 그들이 내가 갖지 못한 모습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걸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아마 쉽게 눈치를 챘을 것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온 나는, 집에 아무도 없을 땐 그 아이를 따라 큰 소리로 책도 읽어보고, 반장 흉내도 내어보곤 했었다. 우리 집은 그때 1층이었는데, 중문도 없던 그 아파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 웃으며 지나갔을지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추억이다.
나는 왜 그렇게 그 아이가 부러웠을까? 앞서 말 한 대로 내가 하지 못하는 걸 그 친구는 잘했으니까. 그리고 하필 그게 내가 잘하고 싶은 거였으니까 부러웠던 거다. 나보다 뭐든 잘하는 사람은 널렸는데, 난 그중 '말을 잘하는 친구'에게 꽂혔던 것이다.
나는 한글도 스스로 깨쳤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책을 줄줄 읽고 1학년 때부터 받아쓰기도 줄곧 100점을 맞던 아이 었다.(당신도 그렇다고 빨리 외쳐라. 아무도 모른다.) 학교에서 발표하고, 앞에 나가는 걸 유난히도 좋아하던 나였는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냉정하게도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책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읽을 자신은 있어도 유창하게 읽을 자신은 없었던 거다. 묘하게 떨리기도 참 떨렸다.
'저요, 저요!' 그렇게 손을 높이 들고, 선거란 선거엔 다 나가보고, '나의 주장 말하기 대회'에도 빠짐없이 출전했다. 하지만 초등 중학년 때까지 본전을 뽑은 적은 많지 않았다. 그러면서 답답하고 아쉬운 마음에 텅 빈 집에서 말 잘하는 친구를 따라 하던 열 살 즈음의 내 모습이란...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잘한 거였다. 말하기에 있어서 가장 좋은 학습법은 말하기니까. 무슨 말이냐고? 계속 말 말 거려서 좀 그렇지만, 말 그대로 '말'을 잘하려면 많이 '말'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나운서 준비생들이 닮고 싶은 선배의 방송을 돌려보며 따라 연습하듯, 그때의 나도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글씨를 잘 쓰는 친구를 보면 글씨를 따라 하고, 말투를 따라 하고. 저절로 그렇게 어느 정도까지는 애써 연습했으나 한 가지 넘지 못하는 산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노하우'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
부드럽게, 틀리지 않고 말은 하겠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목소리가 떨리는 건지 너무나 힘겨웠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조금만 큰 목소리로 발표할라 치면 그 자리엔 내가 아닌 염소 한 마리가 서서 말을 하고 있었다. 가창 시험을 볼 때 역시 곤욕이었고, 리코더 시험을 볼 때는 리코더 소리에 자동으로 바이브레이션이 들어갔다. 진정이 되지 않는 나의 호흡. 도대체 왜 이런 것이고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갔고 나는 법대생이 되었다. 법학과에서는 꼭 한 번씩 거치는 행사가 있다. 바로 '모의재판'이다. 마치 연극을 하듯, 각본부터 연출까지 선후배가 모두 모여 역할을 정하고 여름방학을 불태웠다. 집에서 학교까진 거리도 꽤 멀었는데 그 뜨거운 여름, 동기들과 선배들까지 함께한다는 게 너무 즐거워 연습도 빠지지 않고 나갔던 기억이다.
하지만 대망의 행사 당일, 나는 완전히 망쳐 버렸다. 워낙 작은 배역이라 그리 크게 기억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당시 큰 뉴스였던 어느 화재 사건이주제였던 그 모의재판에서 나의 역할은 '화재 전문가'. 증인으로 등장해 굉장히 당당하게 전문가스러운 느낌으로 대사를 읊어야 했다. 안경도 끼고, 도도한 커리어우먼 느낌으로.
그러나 무대 위에서 나는 완전히 얼어 버렸고, 하도 외워서 대사가 입에서 나오기는 하는데 불 꺼진 관중석은 왜 이리 무섭게 느껴지는지, 다들 나를 노려보는 것 같고, 당연히 내 목소리는 한 마리의 양이 되어 '메에에에-' 소리로 일관하고 있었다. 쿵쾅대는 심장 소리는 왜 내 귀까지 이렇게 크게 울려 퍼지는지. 남들이 듣기 전에 이 염소인지 양인지부터 빨리 잡아 없애고 싶었다. 대체 내 몸속에는 양이 몇 마리가 사는 거야.
결국 대학 생활의 꽃이나 다름없던 모의재판은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비참한 행사로 끝나 버렸고, 자연스레 법조인의 꿈도 점점 작아져 갔다. 나는 일단, 남들 앞에서 말이라도 좀 잘하고 싶었다.
그러던 나도 이제는 말을 잘 한다.
남들 앞에서 말을 해도 목소리가 떨리지 않고, 조용한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할 때에도, 리포터로서 사람이 많은 길거리에서 촬영을 할 때에도, 쇼호스트로서 생방송에서 제품을 소개할 때에도 크고 시원시원하게 목소리가 뻗어 나간다. 불과 대학생 시절 그렇게 숱한 발표와 모의재판까지 망쳤던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앞으로의 글을 통해 나는 그 이야기를 풀어 보려고 한다. 나의 변화와 노하우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면 참 기쁘겠다. 국가대표 선수는 못 되어도 능력있는 코치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