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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우리는 왜 말을 잘하고 싶을까?

앞서 말한 대로, 누구나 한 번쯤은 너무 떨려서 발표를 망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타고나길 대범한 성격이라 남들 앞에 서는 것이 어렵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점차 큰 무대를 접하게 될 때마다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가 평소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자. 대여섯 명의 친한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앉아 있고, 지금은 내가 지난 주말 애인과의 데이트에 대해 혼자서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가?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는가?

아마 전혀 아닐 거다. 우리는 친근한 소수의 지인들과의 사적 자리에서는 혼자서도 그들을 상대로 얼마든지 말을 잘한다. 



그럼 두 상황의 차이는 뭘까? 철저히 1대 다수인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의 차이다.

하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나 홀로 그들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발표해야 하는 상황. 아마 꽤 공식적인 자리일 거고, 그중 최소 몇몇은 나를 평가하려고 자리한 사람들일 것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꽤나 격식을 좀 차려야 해서 미리부터 준비를 많이 했을 거고, 그로 인해 그 수고를 인정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을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좋은 피드백을 받고 무언가를 얻어내야만 할 수도 있다.

다른 상황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호의적인 지인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호응을 해줄 것이고, 나를 평가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액션을 한가득해줄 사람들. 아무 조건 없는 순수한 친목 도모 목적의 그룹. 난 그걸 알기에 이 그룹에서는 전혀 떨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후자의 상황만 만들고 살면 되지 않느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분명 당신은 아직 15세 미만의 어린 학생이거나, 아니면 너무나 부자이고 생활이 여유로운 나머지 세상 모든 일을 취미로 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부자도 일을 열심히 하는 세상이니.. 그런 사람은 없다고 쳐야겠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사내 임원들과 리더급을 대상으로 한 스피치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직종의 특성상 거의 매일 PT를 하고, 토론과 발표가 일상인 부서였다. 얼마나 스트레스 속에 살까 싶었다. 그러면서 거기서 더 잘하고 싶어서 이런 교육을 기획하는구나 싶어, 이미 잘 된 자들이 더 열심히 사는 모습에 때 아닌 감동을 받기도 했다.

사내 교육 담당자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요즘 회사 임직원들이 스피치에 엄청 관심이 많다고. 다들 자신의 아이디어를 대충 내보이기만 하는 게 아닌, 제대로 된 말로 전달하고 표현하는 것까지 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맡았던 강의 제목은 <스피치 역량 강화 교육>이었다. 좀 딱딱해 보이기도 하고, 너무 추상적이라 대체 그놈의 '역량'을 어떤 범위 내에서 얼마나 키워야 하는지 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너무 뜬 구름 잡는 제목이라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강의를 준비했다. 만나보니 완전히 감이 잡혔다. 한 달 동안, 그들 안의 알맹이를 밖으로 예쁘게 꺼내는 걸 도와줬다.



'스피치'의 사전적 뜻을 살펴보면, '모여있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주장이나 의견 등을 말하는 일'을 뜻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학교나 직장에서도 끊임없이 스피치를 한다. 특히 회사 생활은 회의와 보고, 발표의 연속이다. 가정에서 부부 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늘 대화와 설득, 허락의 스피치가 오가는 데 직장에선 오죽할까. 우리는 그 순간순간마다 나를 경계하거나 아무 애정 없는 이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하고, 심지어 '잘' 해야 한다. 그러니 스피치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스피치에 관심이 많다는 건 말을 잘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발표 자료를 애써 준비해도 새빨간 홍당무가 되어 목소리를 달달 떨며 거친 숨을 내뱉으며 축축해진 손으로 마이크를 겨우 부여잡고 동공을  흔들어댄다면 그 누가 내 발표에 집중을 할 수 있을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좀 더 깊이 뿌리내리고 다음 판으로 점프하고 싶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보길 바란다. 단순히 말만 유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더 멋지게 끄집어 내 표현할 줄 아는 것. 나아가 내가 아는 것들을 오류 없이 명확하게, 시간 낭비 없이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 까지도 이젠 나의 능력이 되는 시대이다.

내 생각을 어떻게 꺼내 보이느냐에 따라 같은 내용이어도 듣는 사람은 전혀 다르게 들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회사에 다니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것쯤은 이제 다들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1인 미디어가 늘면서 이젠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되어 나를 표현할 수 있다. 사진뿐 아니라 숏폼이 꾸준한 대세다. 짧지만 명확하게 내 의사를 전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 짧은 영상 안에서 가장 전달력 있게 최상의 스피치를 해야 한다. 뭐 꼭 그러지 않아도 되겠지만 잘 해내고 싶다면 말이다.


우리가 말하기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 바로 현대인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하나의 말로 설명이 가능하겠다. 우리는 요즘 사람이기에, 스피치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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