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 발음법
대학생 시절, 복학생 선배가 있었다. 곱게 자라 학교 집만 오가며 자란 나에 비해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참 많은 매력 있는 선배였다. 선배는 특히 IT 쪽에 강했는데, 본인 것은 물론 지인들의 컴퓨터까지 척척 조립을 해주곤 했다. 당시 컴퓨터 조립의 메카였던 용산에서 최적의 부품을 하나하나 구입해 최신 사양으로 만들어 내곤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게다가 다양한 분야에 상식도 뛰어나고 사회생활도 잘해 인간관계도 좋았다. 지리한 학문인 법학을 배우는 곳에서 이렇게 컴퓨터와 전자제품에 빠삭한 선배라니! 컴맹이던 나와 동기들은 전공 교수님 조교였던 그 선배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레포트나 교양 과제 등 컴퓨터 지식은 어디에나 필수였기에. 그러나. 그렇게 멋진 선배도 구멍은 있었다. 어릴 때부터의 습관으로 맞춤법, 표준 발음에 약한 부분이 그것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으랴! 과사무실에서 고장난 컴퓨터를 수리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는 옆에 있던 후배에게 말했다.
“이 코드 좀 저 쪽에 꼽아줘!”
아...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후로도 그는 코드도 꼽고, USB도 꼽고, 그래픽카드도 꼽았다. 절대로 ‘꽂지’ 않았다. 선배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사람. 뭐 내가 완벽하지 않듯 누구나 잘하는 부분과 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어린 마음에 자꾸만 씌어 가던 그 선배를 향한 콩깍지는, 그렇게 벗겨지고 말았다.
생각보다 일상적인 발음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앞서 말한 일화에서의 ‘꼽다’는 “수나 날짜를 세려고 손가락을 하나씩 헤아리다.”라는 뜻이다. (표준국어대사전) 반면 ‘꽂다’는 ‘쓰러지거나 빠지지 아니하게 박아 세우거나 끼우다’라는 뜻으로, [꼳따]라고 발음한다. 앞 장에서 말했지만 된소리까지 총 19개의 자음 중 단 7종류의 자음(ㄱ, ㄴ, ㄷ, ㄹ, ㅁ, ㅂ, ㅇ)만이 음절 종성(받침)으로 소리 날 수 있다. 이는 ‘7종성법’ 이라고도 한다. 국립국어원 표준어규정 표준 발음법 제4장 제8항에도 <받침소리로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ㅇ'의 7개 자음만 발음한다.> 라고 쓰여있다. ‘지읒’받침은 ‘ㄷ’으로 발음해야 하는 것이다.(앞 장의 한글발음표 참고)
그럼 ‘맑다’는 어떻게 읽을까? 이것도 의외로 헷갈리는 발음이다. ‘말따’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막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맞는 발음일까? 이 역시 표준 발음법 제4장 제11항에 자세히 나와있다.(헷갈리면 지식인보다는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찾아보자.)
제 11항 겹받침 'ㄺ, ㄻ, ㄿ'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각각 [ㄱ, ㅁ, ㅂ]으로 발음한다.
받침 ㄺ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ㄱ]으로 발음되므로 ‘맑다’는 [막따]라고 소리내어야 한다. 다만 또 예외가 있으니, ‘ㄱ’ 앞에서는 [ㄹ]로 발음한다고 되어 있어, ‘맑고’의 소리는 [말꼬]라고 발음해야 한다.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는 겹받침 ㄺ에서 앞에 ‘ㄹ’만 남고 ‘ㄱ’은 뒤로 넘어가 연음되어 소리가 난다. 따라서 ‘맑아’는 [말가], ‘맑은’은 [말근]으로 발음해야 하는 것이다.
잠깐 헷갈리는 발음지옥에 함께 다녀왔다. 어떤가, 자세히 보면 이해가 가지만 좀 어렵고 복잡하지 않은가? 난 가끔 이렇게 원리를 이해하고자 할 때는 이런 법칙을 찾아보지만, 평소에는 늘 이렇게 찾고 말할 수 없기에 자주 쓰는 말의 발음은 정확히 외워서 익혀 두려고 하는 편이다. 여기까지 알아본 내용은 ‘이렇게 찾고 이해하는 것이다’ 정도로 기억해 두자. 지금부터는 평소 우리가 말하기에 자주 쓰이고, 또 자주 틀리는 발음 몇 가지만 확실하게 익혀주기로 하자. 쓰는 법은 잘 알 거라 믿고, 대괄호 안에 있는 글자를 반복적으로 읽어 내 입에 착 붙도록 익혀두면 좋겠다.
틀리기 쉬운 발음
맑다 [막따], 맑지 [막찌], 맑고 [말꼬], 맑아서 [말가서]
밟다 [밥따], 밟지 [밥찌], 밟고 [밥꼬], 밟으니 [발브니]
짧아 [짤바] 짧으니 [짤브니] 짧고 [짤꼬] 짧지 [짤찌]
일요일 [이료일], 월요일 [워료일], 10월 [시월], 6월 [유월]
진로 [질로] 난로 [날로]
각막염 [강망념]
맏이 [마지], 굳이 [구지], 같이 [가치], 끝이 [끄치]
끝을 [끄틀], 밭을 [바틀], 솥을 [소틀], 겉을 [거틀]
예외도 많고 규칙도 복잡한 우리말. 그래도 이렇게나 예쁘고 똑똑한 언어가 세상에 또 있을까? 자주 틀리는 발음에 대해 좀 알아봤으니,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기를 좀 다져보자. 먼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진 ‘자음’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위의 그림은, 우리 몸에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조음 기관을 옆에서 본 모습이다. 입술 부근부터 목젖 방향으로 옮겨가며 소리를 알아보겠다.
1) 양순음(입술소리)
입술이 살짝 붙었다가 떨어지며 나는 소리가 있다. ㅁ, ㅂ, ㅃ, ㅍ 가 그것이다. 아기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발음이다.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한다. ‘엄마, 아빠, 맘마’ 이런 소리가 양순음이다.
2) 잇몸소리(치조음)
다음으로 좀 더 안으로 들어가 앞니의 안쪽 부분에 혀 끝이 닿으며 나는 소리가 있다. ㄴ, ㄷ, ㄸ, ㅌ, ㄹ, ㅅ, ㅆ 이다. 이를 ‘치조음’이라 하는데 치조는 앞니와 경구개(단단한 입천장) 사잇부분을 말한다. 혀끝과 치조 부분이 맞닿을 경우에는 ㄴ, ㄷ, ㄸ, ㅌ, ㄹ가 발음되고, 그 사이가 닿지는 않고 거의 닿을 듯 좁혀진 경우에는 ㅅ, ㅆ가 발음된다.
이 치조음을 ‘혀끝소리’라고도 하는데, 어려운 말인 ‘치조음’ 보다는 혀 끝이 움직여 닿으며 나는 소리이니 이 표현이 더 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 중 특히 ‘ㄴ, ㄷ, ㄸ, ㅌ’는 치조음의 기본이라고도 하는 음으로, 혀 끝이 여타 음보다 더 정확히 앞니 뒤 잇몸 부분에 닿으며 소리가 난다. 특히 받침으로 소리날 때 더 정확히 그 위치에 꽂히며 소리가 나야 하는데, 이 발음을 정확히 해줄수록 더 똑부러지는 소리가 나기에 이른바 ‘아나운서들이 잘 하는 발음’이라는 별칭아닌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뒷 부분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겠다.
3) 센입천장소리(경구개음)
혀끝으로 앞니부터 입천장을 거쳐 목젖 부근까지 쭉 한번 훑어보자. 앞니 바로 뒤 입천장 앞부분에 불룩 튀어나온 부분, 느낌이 어떤가? 단단하고 오돌토돌하다. 바로 이 부분이 단단한 입천장, 경구개다. 혓바닥 위 넓은 부분을 입천장 앞쪽 단단한 부분에 붙였다 떼며 내는 소리가 바로 경구개음, ‘ㅈ, ㅉ, ㅊ’다. 혀의 윗부분을 넓게 닿게 했다가 떼어내며 소리를 낸다.
4) 여린입천장소리(연구개음)
혀끝으로 단단한 입천장을 느꼈다면 좀 더 뒤로 가보자. 목젖까지 가기 전, 갑자기 여리고 움푹 패인 살이 나타날 것이다. 그 부분이 바로 여린 입천장, 연구개다. 이번엔 혓바닥 뒷부분이 이 부위에 넓게 닿았다 떨어지면서 소리가 난다. 그, 끄, 크, 응. (ㄱ, ㄲ, ㅋ, ㅇ) 이렇게 난다.
5) 목청소리(후음)
그 다음은 후음이다. 목젖 부분에서 나는 소리. 바로 ‘ㅎ’이다. 혀가 닿지 않는다.
6) 콧소리(비음)
코를 울리며 나는 소리, 바로 ‘ㄴ, ㅁ, ㅇ’ 이다. [느, 므, 응] 이라고 발음해 보자. 콧소리 내듯 코가 울린다. ‘아잉~’ 이라고 할 때 콧소리를 한껏 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아잉’에 들어있는 비음 ‘이응’때문인 것이다.
7) 바람소리(거센소리)
잘 알겠지만 ㄱ, ㄷ, ㅂ, ㅈ를 거세게 바람을 넣어 읽으면 ‘ㅋ, ㅌ, ㅍ, ㅊ 가 된다. 발음할 때 입에서 바람이 나와야 한다. 입 앞에 손을 대고 발음해 보자.
8) 강하게 내는 소리(된소리)
ㄱ, ㄷ, ㅂ, ㅅ, ㅈ를 강하게 읽어보자. [끄, 뜨, 쁘, 쓰, 쯔]소리가 난다. 이게 바로 된소리다. 연구개음인 ㄱ은 혀를 더 연구개에 밀착했다가 강하게 떼어내며 소리를 내고, 치조음인 ㄷ은 혀 끝을 더 강하게 윗니 뒤 잇몸에 댔다가 떼어내며 발음해 보자. 이런 식으로 기본 음이 되는 소리를 좀 더 강하게 발음하면 되는 것이 바로 된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