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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끌려다니는 인생은 거부합니다

오로지 '나'로 살아가는 시간, 단 10년.

이렇게 나가있는 날엔, 좀 더 내게 집중하게 된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또는 며느리가 아닌 그냥 나. 오로지 '나'를 둘러싼 관계와 사건, 과거와 현재 미래의 대화에 빠져있다. 내가 이렇게 존재했었고 그래서 지금도 여기에 있구나, 싶다.


보통 스무살에 성인이 되어 서른살 쯤 가정을 이뤄 아이를 갖는다는 가정 하엔, 오로지 나 자신으로 사는 게 인생엔 단 10년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K님의 말에 고개를 미친듯이 끄덕였다. 너무나 공감한다. 미성년일 땐 부모의 개입과 보살핌 속에 살고, 아이가 생기면 그때부터 평생 나는 혼자가 아니다. 지금의 나도 그렇고, 우리 부모님도 그렇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 노인이 되어도 더 늙은 부모에겐 늘 어린아이 같다. 엄마에게 내가 그렇고 작년에 별이 되신 할머니에겐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가 그랬다. 늘 걱정되고 신경 쓰이고 아끼는 존재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노파심'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아직도 우리가족이 1박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날엔 꼭 잘 다녀왔는지 확인을 하고야 주무신다. 떨어져 살아도 마음은 늘 자식 곁에 있다.


그날의 먹거리


순수히 나에게 집중하던 시간이 너무 짧다. 그럼 어째야 할까. 수많은 얽힘이 있는 지금의 삶에서도 방법은 있다. 내 '생각'에 집중하는 것. 내 '기분'을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 순간 순간의 선택과 갈림길 앞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 그렇다면 현재 상태에서도 버림 없이 아쉬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칫하면 자아를 잃어버리기 쉬운 인생이다. 누구와 잘 지내기 위해서, 불화가 없길 원해서, 미움받기 싫어서, 적당히 잘하고 싶고 튀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선택도 결과도 나의 몫이지, 정답은 없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잘잘못이란 것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잃고 싶지 않다면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해 보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없다면 다행이다. 그냥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어쩌면 이미 충분히 탄탄한 자아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각자의 물음표가 떠오를 날은 분명 오겠지만 모를 일이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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