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에 앞서, 이 글의 주제를 '안경'으로 잡은 이유부터 말씀드리겠다. 이 브런치북 연재는 '나'라는 존재를 스스럼없이 드러내고자 하는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는데, 안경은 그때 떠오른 여러 가지 주제 중 하나였다. 남들에겐 별 관심 없는 소재일 수 있지만, 그리고 나를 볼 때 잘 느끼지 못했을 수 있지만 내겐 매일 쓰고 벗고 해야 하는 엄청 대단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언제든 편히 안경을 쓰고 다녀도 되는데, 나는 정말 집 앞에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거나 하는 때 아니면 쓰지 않는 편이다. 아, 작년까지 아이들 학교 코 앞에 살 때는 에라 모르겠다 그러고 나가기도 했다. 생각을 해보니 최근의 기억에는 과거에 비해 안경 쓴 장면이 더 많이 떠오른다. (나이를 먹어가며 안경 쓰고 나가는 횟수가 늘었다는 말) 대체 왜 그러냐, 물으신다면 안경 쓴 내 모습이 참 별로이고 적응이 안 되기도 해서다. 그리고 오늘 그 이유를 좀 풀어보려고 한다.
이유 1. 못 생겨 보여서
안경을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학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부터 점점 칠판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고,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면서 힘을 주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눈을 더 나빠지게 하는 좋지 않은 습관이라 들었지만 때는 늦었다. 앉는 자세가 원체 비뚤어진 나는 시력도 짝짝이였다. 오른쪽 눈이 왼쪽에 비해 심각하게 나빴다. (마이너스까진 아니지만.) 차이가 심하다 보니 두통이 생겼고, 곧 안경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초딩 시절 특히 고학년 때의 나는 내 인생 중 가장 못 생겼던 시기였다. 흑역사라고 하면 될까... 까무잡잡한 피부에 사춘기 소녀답게 굳이 나지 않아도 될 여드름도 빼먹지 않고 나 주었다. 왜 그런 건 남들 다한다고 나도 하는 걸까.... (좋은 것만 따라가도 좋겠구만 꼭 안 해도 되는 건 다 해당되고야 만다.) 그렇게 흔하디 흔한, 구리디 구린 외모에 안경까지 쓰게 되었으니. 외모는 별로지만 알 건 다 아는 10대 소녀에게는 참 쓰라린 상항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안경생활은 시작되었다. 처음엔 그냥 쓰고 다녔다. 이제 외모 가지고 뭐라 하면 안... 되는 어른이 되었지만 지금 봐도 참 별로였던 시기. 그걸 느낀 나는 곧 안경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쓰고 다니자니 너무 못 생겨서가 이유였다. 그리고 수업 시간, 필요할 때만 꺼내서 쓰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눈은 점점 나빠졌고, 짝짝이인 시력은 점점 차이가 벌어졌다. 못 생기게 다니기 창피한 나이었다. 민감했나 보다. 안경이 잘 어울리고 싶었다.
요즘엔 고등학생들도 렌즈를 많이 끼지만, 그 당시엔 드물었다. 나 역시 엄마의 많은 단도리(참견)를 받던 여고생이었던 지라, (외모는 안 가꿔주셨다) 고3 졸업 후에야 겨우 소프트렌즈를 맞출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맞긴 하다. 고3이 공부하는데 렌즈를 꼈다면, 아마 눈이 피곤해서 더 많이 잤을 것이다. 안 그래도 독서실에서 쿨쿨 잘 잤는데...(엄마 미안) 하지만 나에게 렌즈가 있었다면, 조금 더 당당한 생활을 할 수는 있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고3 때 도서관에 가면서도 난 안경 낀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굳이 굳이 안경을 벗고 가서 공부할 때만 쓰고 다시 나올 땐 벗고 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벗었다 썼다 더 시력에 안 좋게 사느니, 아예 렌즈가 하나쯤 있었어도 학원 다닐 때 라도 좀 편히 끼고 다닐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거라 생각하겠다.
어른이 되고, 이제 여드름도 없고 젖살도 쪽 빠져 안경이 그때만큼 안 어울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난 특별히 눈이 힘든 날을 제외하곤 렌즈를 낀다. 이 나이에 외모 걱정? 후.. 안 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얼굴을 드러내고 하는 일이니 일하러 갈 때야 당연하다 쳐도 동네 엄마들과의 약속,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아직은 외모를 신경 쓴다. 남자도 화장하는 시대가 아닌가. 언제까지 그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난, 안경을 끼지 않는 내 모습이 좋다.
이유 2. 불편해서
솔직히 이 이유도 매우 크다. 안경을 집에서만 거의 쓰다 보니, 안경을 끼면 무장해제 되는 기분이 있다. 재택근무를 하거나, 외출 후 집에 돌아와서 보통 씻고 난 후 안경을 껴서 그런가. 안경을 쓴다는 건 그냥 쌩얼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화장을 할 때는 거의 렌즈를 끼고, 맨얼굴일 때는 거의 안경을 쓴다. 안경 쓴 모습이 더 구려보일 수밖에 없네. 아... 쓰면서 이제 알았다.
안경을 쓰고 있으면 콧등이 불편하다. 안경 코받침이 자꾸만 코를 누른다. 콧대가 높은 편인 나는 더 그렇다. 1분만 안경을 썼다가 벗어도 콧등에 진하게 자국이 남는다. 너무 싫다. 그래서 선글라스도 잘 쓰지 않는 편이다. 안경과 달리 선글라스는 잘 어울리는 편인데, (이 역시 화장을 하고 렌즈를 낀 상태라 그런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코에 자국이 심하게 나서 벗고 나면 참 이상하다. 그리고 쓰고 있는 순간에도 코를 누르는 것이 영 불편하게 느껴진다.
코에 자국만 불편한 게 아니다. 누워서 책을 보거나 아이와 뒹굴거릴 때도 그렇다. 옆으로 누우면 안경이 눌린다. 아이와 레슬링을 할 때도 아이가 먼저 살포시 내 안경을 벗기로 달려들어 뽀뽀를 해준다. 자꾸 얼굴이 안경에게 찔리고 닿아서 아프고 불편하다.
자꾸 더러워지는 것도 불편하다. 안경닦이라고 부르는 천으로 수시로 닦지만 그래도 자꾸만 더러워진다. 사람을 만났을 때 안경이 더러우면 인상도 깔끔하지 않아 보인다. 투명하고 맑아 보이기 위해선 자주 닦아 줘야만 한다.
이유 3. 라면 먹을 때 귀찮아서
이유 2번에 들어가는 부분일 수 있겠지만 굳이 따로 빼 보았다. 안경 끼고 라면을 먹어 보셨는지. 라면은 냄비에 얼굴을 처박고 후루룩후루룩 먹어야 제맛인데, 안경을 끼고 먹으면 면발 한입 호로록하는 순간 눈앞이 흐려진다. 뜨거운 김이 안경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보기에 웃겨지기도 하지만 우선 본인이 앞이 보이지 않아 결국 안경을 벗어 놓고 라면을 먹게 된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눈 나쁜 아저씨 같기도 하고.. 참 귀찮고 별로다. 후루룩을 조금만 세게 하다가 국물이 안경에 튀기라도 하면 더 짜증이 난다.
한 겨울 추운 밖에 있다가 따스한 실내로 들어가도 안경이 뿌예진다. 우리 아빠는 퇴근하고 그렇게 돌아오시면 늘 '아빠 뻐꾸기 같지? 하하'하고 웃으셨었다. 정말 아빠는 뻐꾸기 같았다. 안경이 하얗게 뿌예진 게 왜 뻐꾸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하얘져서 들어왔다가 안경알 한가운데부터 서서히 투명해지는 아빠의 안경과 얼굴을 보면 그냥 뻐꾸기처럼 느껴졌다. 볼 때마다 웃겼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난 안경을 쓰고 있다. 집에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남편이야 잡아둔 물고기여서.. 가 아니고 남편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기에 집에선 정말 편하게 있는다. 안경을 쓰니 눈동자는 편안하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불편하다. 눌리는 콧대, 흘러내리는 안경, 손에 잠깐만 스쳐도 더러워져 뿌옇게 변하는 시야.. 그렇지만 이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아 렌즈를 끼고 예쁜 척할 일도 없고, 무엇보다 렌즈를 끼고는 오래 글을 쓸 수 없다. 얼굴이 불편하냐 눈알이 불편하냐 둘 중 택하는 건데, 당연하게도 난 눈알의 편안함을 택했다.
렌즈를 낀 세월도 벌써 20년이다. 남들처럼 라식이나 라섹도 생각은 해봤지만 무서워서 안 했다. 다시 시력이 꽤 많이 나빠졌다는 후기들도 한몫했다. 가까운 남편도 20대 초반 라식을 했는데 지금은 도로 많이 나빠졌다. 관리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냥 꺼려진다.
이 글과는 반대로 외출 시 렌즈를 주로 끼고 살다 보니 역으로 '렌즈를 껴서 불편한 점'도 많다. 눈이 쉽게 건조해지고, 캠핑을 가거나 여행 다닐 때 불편하다. 눈이 뻑뻑한 건 2주 착용 렌즈로 바꿔서 해결했고, 여행의 불편함은 원데이 렌즈로 해소했다. 나름의 해결법으로 꽤 많이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건 뭐니 뭐니 해도 시력이 좋은 게 아닐까 싶다. 최후의 승자는 시력 좋은 사람.. 참 부럽다. 눈은 타고나는 거라는데, 부부 모두 시력이 그저 그렇다 보니 아이들에게 벌써부터 미안해진다. 미래에는 더 좋은 기술이 생기겠지, 생각하며 미안함을 뭉개보지만, 벌써 한쪽 눈만 나빠지는 첫째를 보니 짝눈마저 유전이구나 싶어 씁쓸함이 더해진다.
어쩔 수 없다 얘들아, 최대한 덜 나빠지게 조심하는 수밖에. 안 그러면 엄마처럼 안경을 썼다 벗었다, 귀찮은 사투를 벌이며 살게 될 테니까 말이야. 오늘도 이렇게, 쓸데없는 잔소리로 마무리해 본다. 안경이나 한 번 더 닦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