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둘을 키우며 처음엔 참 많은 시선과 참견에 시달렸다.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스토리도 많이 당해봤다. 길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조차 딸 하나 더 낳으라 질 않나, 딸 둘이면 금메달이고 아들 둘이면 목메달이라나. 정말 공감할 수 없고 끄덕이기도 싫은 말도 제법 들어봤다. 그만큼 아들이 두 명 있다는 것은 많은 확률로 '걱정거리'라는 것이 보다 많은 이들의 공통된 생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처음엔 나도 동조했다. 정말 나 큰일 났다고, 걱정해 주는 말을 들을 때면 맞장구치느라 바빴다. 재미도 있었고 진짜 그렇기도 했다. 확실히 딸과 아들은 에너지부터 달랐다. 가끔 예외적으로 조용한 아들과 와일드한 딸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지극히 평범했다. 예외에 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애정도 커져갔다. 더는 그런 말들에 동조하기 싫어졌다. 아들 둘이라는 게 죄라도 되는 양 어디 가서 굽신대기도 싫었다. 아이들은 가끔 둘이 붙으면 시너지가 발생해서 더 시끄럽기도 했지만 우리 애들은 몸으로 치고받고 싸우거나 레슬링을 하며 놀지는 않았다. 큰 아이는 엉덩이가 무거웠고 작은 아이는 가벼웠다. 가벼운 둘째는 책 좋아하고 누워서 뒹굴거리기 좋아하는 형아를 따라 집에서는 그리 시끄럽게 놀지 않았다. 뛰어놀지도 않았고 가끔 블럭 같은 장난감을 쏟거나 이동할 때 콩콩 거리며 빠르게 걷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주 평범한 그냥 아이들이었다.
결혼을 하고 여러 번 이사를 했다. 벌써 4번째 집이다. 어떤 아들 엄마들은, 아니 딸이든 아들이든 그냥 '아이'를 둔 부모들은 이사를 다닐 때마다 아랫집에 뭔가를 '바치고' 시작한다고도 한다. 혹시 모를 층간소음에 대비해 처음부터 바짝 엎드리는 것이다. 내 지인은 그렇게 아랫집에 과일 바구니를 싸들고 내려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한 일화도 있다. 미리 선물 받고 층간소음 참아줄 생각 없다고, 이런 거 안 받으니 조용히 그냥 살라고 했다고 한다.
내 생각도 비슷하다. 처음엔 그 얘기를 듣고 뭐 그런 집이 다 있냐, 너무 야박하다 어떻게 문도 안 열어주냐고 생각했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우선 나는 한 번도 먼저 아랫집에 인사를 가지는 않았다. 내가 이웃과 척을 지고 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MBTI에서도 늘 조금 더 높은 퍼센트로 E형으로 나오는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들과 제법 인사를 잘 나누고 잘 웃는 편이다. 조금 친해지면 먹을 것도 나누어 먹고, 언니 동생 하며 차도 한잔씩 하며 지내왔다. 그렇게 자연스레 친해지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전처럼 이사하면 떡을 돌리고 하는 것도 아닌 분위기에, (물론 아직도 아주 가끔 그런 경우도 있지만,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아니 오히려 그런 걸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 굳이 먼저 찾아가서 층간소음을 예고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만큼 살면서는 아이들이 소음을 내지 않도록 무던히 조심하곤 했다. 늘 조심하며 살다 보니 아랫집의 항의나 불만도 없었다.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사 올 때 분명히 임대인 분들은 그랬다. 아랫집이 누군지도 잘 모른다고. 만날 일도 없었다고 했다. 순진하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하지만 이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집 대문엔 포스트잇이 한 장 붙었고, '아파트가 노후되어 층간소음이 잘 발생하니 각별히 조심해 달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깜짝 놀라 너무 미안한 마음에 나도 쪽지를 써서 무조건 일단 사과드리고, 시댁에서 직접 기른 고구마를 정성껏 담아 문고리에 걸어두고 올라왔다. 잘 받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생각했으니 그러려니 했다.
얼마 후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먼저 다시 직접 사과를 했고, 상냥하게 사근사근 우호적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처음엔 별로 말이 없던 그분은 내가 저자세로 나가자 점점 말 수를 늘려 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그건 그렇고 최근에 물이 좀 새는지 벽지가 젖는다고, 내 전화번호를 알아가고 말았다. 나도 뭐, 이웃이니 자연스레 알려줬고 집주인 분을 통해 인테리어 업자를 불러 약속을 잡는 것도 내가 솔선해서 업체에 문자하고 아랫집 일정 물어봐서 잡기까지 했다. 아주 적극적으로. 그렇게 물이 좀 새는 것 같다는 것을 일단 처리하고, 그렇게 넘어간다고 생각했다.
다시 얼마 뒤, 또 아랫집에서 '문자'가 왔다. 소음 자제 부탁드린다고. 우린 뭘 하지도 않았는데, 시끄럽다고 했다. 일단 예전 집에서처럼 아이들을 어느 정도 편하게 둘 생각을 접었다. 물건 하나 내려놓는 것도 신경 쓰였고 아이들에게 걸음걸이 하나까지 끊임없이 잔소리했다.
또 얼마 후, 아랫집에서 문자도 오고 어떤 날은 찾아도 왔다. 우리 아이들은 뛰어놀지 않는다. 그냥 '살아갈'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발소리가 커질 수 있고 물건을 함부로 내려놓거나 떨어뜨릴 확률이 높다. 그것도 다 조심시켰다.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늘 곤두서게 되었다.
임대인 분은 그제야 이야기했다. 사실 아랫집이 좀 예민하다고. 물 새는 것도 몇 번을 수리해 줬는데 계속 컴플레인이 있어서, 아파트 자체가 재건축을 앞둘 정도로 오래된 터라 조금은 이해해야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여러모로 예민한 분들인 것을 알고 있었다. (이사할 때는 모른다고 했다) 뭐.. 집을 빨리 빼려면 어쩔 수 없는 건가도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그랬을까-)
아랫집 아주머니는 자신들이 예민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시끄러우며, 아파트가 낡아서 층간소음에 취약하니 더 조심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그 집에서 가장 컴플레인을 많이 하는 남자분이 후에 직접 말해주길, 자신이 각별히 예민하다고 했다. 소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낮에도 자주 집에서 굉장히 예민한, 세심한 일을 해서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오히려 그 말을 해주니 마음이 조금 풀렸다. 적어도 본인의 예민함을 인정하고 나에게 양해를 구한 거니까. 아니라고 했던 그 아주머니가 더 미웠다.
문제는 밤이 아닌 아침부터 벌건 대낮에도 수시로 시끄럽다고 했던 건데, 주변 어디에 얘기해도 그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거면 단독주택으로 가지, 아파트라는 것이 본인이 조용히 있으면 위아래 어느 집 화장실에서 쪼르르 볼일 보는 소리까지 들리는 게 당연한데(오래되어 그런가, 여긴 다 그렇다. 때론 두런두런 말소리도 들린다.) 그렇게 조용히 적막 속에 살면서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내는 생활소음도 대낮부터 시끄럽다고 하면, 우리가 나가야 하는가 그들이 이해해야 하는가 어쩌라는 거냐고 했다. 아니면 우리는 숨만 쉬고 살아야 하는가. 참 어렵고 어떤 면에선 화도 나고 힘이 들었다.
우리 집에서도 때론 다른 집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꽤 잘 들리는데, 우리 집은 꼭대기 층인데 대체 어디에서 나는가 의문일 때가 많았다. 옥상은 잠겨있다.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소음은 벽을 타고 아래위 대각선 건너 건너 어디서든 타고 올 수 있다. 인테리어 공사하는 집이 꽤 멀어도 소음이 잘 들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랫집 아주머니는 늘 그러셨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쿵쿵 소리도 위에서 아래로 향할 수밖에 없다'라고.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문자로 싸울 수는 없었다. 그저 속만 터져왔다. 모든 게 우리라 이거지.
그러다 드디어, 옆집이 이사하는 날이었다. 평일 오전, 아이들은 학교에 가있고 나 혼자 조용히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날아든 문자. '소음 자제 부탁드립니다' 후, 순간 화가 치솟았다. 정말 노이로제에 걸린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옆집이 이사하는 소리가 우리 집 소음으로 들렸겠지. 딱 걸렸다 싶었다. 늘 우리 집만 문제 삼던 아랫집이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라고 했었다. 바로 전화해서 상황을 알렸더니 죄송하다고 했다. 처음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두어 달 뒤, 역시나 대낮. 우리 집은 고요한 상태였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 중이었고, 큰 아이는 침대 위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작은 아이는 학습지 선생님이 오셔서 마주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갑자기 띵동- 경비 아저씨가 오셨다. 무슨 일이세요? 아저씨는 멋쩍게 웃으시며 아랫집이 어느 집에서 지금 계속 개가 짖고 아이들이 뛰는데, 어느 집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고 했다. 허허, 그간 경비 아저씨들에게 많이 들어왔다. 아랫집의 예민함을. 아저씨들은 다들 알고 계셨다. 공동주택에서 웬만하면 넘어가고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데 그 집이 유난스럽다고. 내가 오기 전부터 알고들 계셨다. 어쨌든 난 이번에도 황당했고, 우리 집은 지금 이렇게 고요한 상태고, 증인이 되어줄 학습지 선생님도 계시고, 당연히 개는 키우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도 화장실에 조용히 있으면 아래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 소리가 신경 쓰이나 본데 우린 아니다.라고 했고, 아저씨는 네네 미안합니다,라고 하시며 옆집으로 가서 다시 벨을 누르셨다.
이게 밤 10시도 아니고 오후 3시 한낮부터 벌어져야 하는 일인가 싶다. 다들 활기차게 생활하는 시간에, 혼자서 조용히 집을 독서실처럼 활용하고 싶은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물론 이런 층간소음 관련 글들을 보면,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거나 원인 제공을 하고도 조금 뻔뻔한 집들도 있어 보여 왔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요즘 상황에, 나는 그저 나의 입장에서 글을 좀 풀어 본다.
남의 시선을 꽤 신경 쓰고 살아온 나지만, 그래서 정말 적을 만들지 않고, 웬만하면 하하 호호 살갑게 지내는 내가 이런 상태가 되었다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싶기도 하고, 남을 신경 쓰는 것에도 예외는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도 좀 커서, 기어 다니고 다다다 뛰는 유아기도 아닌데 아랫집에서 매트시공 하라는 말을 듣고 살고. 아들 둘인 게 아직 죄는 죄인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그냥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옆집 이사를 기점으로 아랫집에서도 이런 소음의 정체가 우리 집에서만 제공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나에겐 다행이라 해야 할까. 우리 아이들도 작년과는 또 다르게 한층 성숙해져서, 정말 뛰는 일은 전혀 없으니. 이제 2학년 막내가 가끔 빠르게 걷는 것만 주의시키면 되는데도 난 매일 애들을 잡는다.
아.. 그러고 보면 또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닌가 보다. 아랫집에 책잡히지 않기 위해 하루에도 수백 번씩 아랫집 생각을 하며 조심한다. 애들에게 수십 번 잔소리를 하고, 소리를 지르고, 히스테리도 부린다. 이게 뭐 하고 사는 건가 싶지만, 그렇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아랫집이 심하다 생각하면서도 눈치를 본다. 빌미를 주기 싫고, 싫은 소리를 듣기 싫다.
이렇게 노력한다는 걸 아랫집은 알라나 모르겠다. 아이들을 키워보셨을 텐데... 다 잊으셨거나, 당시 아랫집이 너그러웠거나, 1층에만 사셨거나.. 내 글을 보고 누군가 뭐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도 아이들을 재우면서 조용히 하라고, 밤이니까 목소리도 작게 내라고 잔소리하며 재웠다. 쌓인 스트레스 글로나마 풀어본다.
나도 2-30대를 지나왔기에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은 시기도 있었고, 특히 초등학생들 너무 시끄러운 존재라는 생각에 멀리하고픈 아가씨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되고 보니,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게 너무나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게 더 힘들어지지 않길, 이런 소음을 느끼는 분들이 또 아이를 낳기 싫어질까 봐도 걱정이다. 서로 더 교류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윗집 아이가 몇 살이니 한창 소란스러울 때라 조금은 이해해 주고, 아랫집 어른은 건강이 어떠시니 우리가 더 주의해야겠다 느끼며 배려하는 그런 사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같지만, 막상 나도 잘 못하겠지만 그냥 그런 예전이 더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결론은, 내 응큼한 속내는, 사실은 그들과 다 잘 지내고 싶다는 거다. 한 지붕 세 가족 시대가, 응팔 시대가 그립다. 위아래층에 누가 사는지 얼굴도 모르고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시대보다는, 복작대도 서로 알고 부대끼고 얼굴 보고 툴툴대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싶다. 나도 참, 결국은 '남의 시선을 꽤나 의식하고 어울리고 싶은 사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