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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일샵 그녀와의 어떤 대화

- 세상 아름답게만 사는 분들 보면, 전 소름이 돋아요.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그녀가 말했다. 기껏해야 스물다섯에서 서른 사이 즈음으로 보이는 말간 얼굴, 네일샵 직원답게 정갈하게 정돈한 손톱, 숱은 많지 않지만 길게 잘 말려있는 예쁜 속눈썹을 한 여자. 처음 손을 맡겨보는 사람이라 약간의 거리감을 유지한 채로 나는 물었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무 긍정적인 사람들이요?

- 아뇨, 세상이 이렇게 살기 어렵고 각박한데 너무 곱기만 한 분들이요.


다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려 보이는 나이 대비 손놀림이 능숙했다. 적어도 몇 년은 쌓인듯한 솜씨. 하얗고 팽팽한 이마엔 주름 하나 없었는데, 너무 반질한 나머지 마치 AI 로봇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이며 간간히 뱉어내는 문장과 문장 사이엔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오래, 매일 이 일을 하며 사람들을 상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마 주름에 움직임이 없는 것도 감정을 섞지 않고 말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대할 때 나름의 최선을 다해 예의 있게 구는 편인 나는, 그녀의 그런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감정을 포장하고 최대한 둥글게 굴려 말한다. 긍정적인 쪽으로 해석하고, 듣기 좋게 말한다. 보통의 나는, 그런 편이다. 그래서 내가 혹시 그런 사람으로 보인 건가. 순간적으로 방금 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렸다. 나 역시 한 달에 한 번 잠깐씩 들르는 네일샵에서 깊은 속얘기를 하고 싶지 않으니, 겉말만 잔뜩 늘어놓고 있었다. 조금 전에는 샵에 손님이 데려온 강아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너무 예쁘네요. 아 어떡해, 귀여워." 이런 류의 탄성들. 나의 그런 말들을 겨냥해한 말일까 싶어 움찔했다. 답답한 샵 안에서 힘들게 일하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이 손님은 세상 물정 모르고 강아지가 귀엽다, 하늘이 예쁘니 기분이 좋다, 이런 얘기를 늘어놓으니 짜증이 난 걸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억울함이 밀려왔다. 그러면서 억울해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남의 말 한마디에 억울하긴 뭐가 또 억울해.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입에선 다른 말이 나오고 있었다.


- 그죠, 마냥 한가한 얘기만 하고.. 상황에 안 맞게 너무 그래도 좀 그런 느낌이 들죠.


두둔하려던 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척, 나도 나름의 고충이 있고 바쁘게 사는 사람인 척 좀 더 열심히 대화에 응했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말의 의도도 정확하지 않거니와, 내가 예상한 게 맞다고 하더라도 세상을 마냥 아름답게만 보는 게 무슨 죄가 된단 말인가. 누군가는 좀 더 고생스럽게 일상을 보내는 중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한때는 고생을 좀 했지만 지금은 또 편안한 생활을 하는 중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한 번도 힘들어 보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네일샵 그녀에게는 그날 그 순간 또는 그 시기 그런 사람들이 곁에 오는 게 싫었을 수 있고, 또 몇 년 전에는 혹은 몇 년 후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 역시 하루 종일 일과 육아에 치이다가 잠시 들른 네일샵에서는 세상 한가한 여자처럼 기분 좋은 소리만 하고 있을 수도 있는 거고 말이다.


순간순간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맞추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내 생각을 어필하고 정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고 나의 기분도 보호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잘하는 거, 적당한 사회성으로 잘 둘러 싸매면 된다. 너무 모나지 않게, 하지만 당당하게 내 생각을 말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게 좋은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일상도 그렇게 되길 바라본다. 다른 사람의 말투, 표정과 말하는 스타일에 영향받아 본인이 괴로워지지 않길. 삶이 버겁다면 조금 더 헐렁하고 편안해지길. 그래서 그 예쁜 이마에 자연스럽고도 부드러운 웃음주름 하나가 생겨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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