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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떠는 남자에게서 배운 점

화요일 아침, 아이들을 보내고 분주히 집을 정리했다. 매일 태양은 뜨고 지고 하루 스물네 시간은 반복되는데, 월화수목금 아이들 챙겨 보내고 시작하는 일상은 다를 게 없는데 나의 컨디션은 매일 달라진다.

어떤 날은 가라앉고 어떤 날은 솟아오르고 매일 이렇게 변화무쌍한데, 이걸 누르고 씩씩하게 하루를 시작할 방법은 루틴,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것뿐이다. 오늘도 그랬다.


침대에 한 번이라도 걸터앉기라도 하면 그대로 벌러덩 누워버릴 것 같았다. 하염없이 날 부르는 베개를 모른 척하며 설거지를 하고, 로봇 청소기를 돌리고 씻고 옷을 입었다. 이 한 몸 나가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린다. 어린아이들처럼 눈곱만 떼고 나가도 싱그럽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을까. 믿기진 않지만 사진 속에는 남아있다. 그래서 사진을 남기는 건가.. 기억이 잘 나지 않으니까.


이런 잡생각을 계속하며 대충 준비하고 현관을 나섰다. 집에도 얼마 전 일할 자리를 싹 치우고 정돈해 뒀는데 나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무더위 속 카페는 시원하다. 전기 요금 따위 걱정하지 말자고. 그래봤자 한 철 여름인데 뭘- 하며 쿨하게 에어컨을 틀어대다가 전기요금만 37만 원을 때려 맞고 나니 정신이 든다. 1,000 kWh를 넘게 사용한 집들만 경비 아저씨가 직접 방문하셨다. 놀라실까 봐 미리 전기요금을 고지해 드린다고. 어제 뉴스에서는 이달 전기 요금이 30만 원 이상 청구될(1,000 kWh 초과 사용) 가정이 전국에 19만 가구라고 했다. 퍼센티지로는 0.7%라고 하는데, 다른 것으론 1% 안에 드는 게 없는데 이런 걸로 극상위권에 드는구나 싶었다. 땀이 많아 조금만 더워도 잠을 못 자고 온몸을 긁어대는 초예민 아토피 아이 때문인가 싶지만 그건 또 아니다. 나도 더위를 못 참는다.


또 다른 이유는 집중이 잘 되어서다. 단 나만의 방식이 있다. 카페 스피커에서도 음악이 나오지만 내 귀에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들어야 한다. 집에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을 수가 없다. 가족들이 있으면 있는 대로 날 언제 부를지 모르기 때문이고 없으면 또 누가 혹시나(거의 없지만)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카페는 다르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혹여나 지인이 나를 발견해도 가까이 와서 인사를 하지 멀리서 소리쳐 부를 일은 없다. 전화기는 진동으로 내 시야 내에 올려두면 된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았다. 확률상 10시 전에만 오면 대부분은 이 자리가 비어있다. 나에겐 너무나 만족스러운 자리지만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은가 보다. 오히려 좋다. 내 테이블의 왼쪽엔 기둥이 있다. 내가 이 자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 기둥이다. 여기에 기대거나 하진 않지만 이 녀석은 내게 뭔가 묘한 안정감을 준다. 너무 구석 자리나 사람들을 등지고 는 것도 싫다. 그럴 거면 집에 있지 여기 나올 이유가 없다. 사람들 속에 있되 간격이 널찍하고 앞이 시원하게 트이면서 초록초록 가로수들이 보이면 된다. 창가에 딱 붙어 창 밖을 보는 자리도 별로다. 그럴 거면 내 집 컴퓨터 책상에 앉으면 된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보여야 좋다. 그래야 적당한 긴장감이 돌고 활력이 생긴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하나 있다. 지금 나는 기둥 뒤에 숨어서 글을 쓴다. 숨었다기 보단 기둥을 활용해 왼쪽 대각선 방향의 무언가가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차단하고 있다. 그 무언가는 어떤 사람이다. 너무 싫다기 보단 조금, 약간, 점점 많이 신경이 쓰인다. 그는 스무디 한잔을 마시며 게임을 하고 있다. 풍겨오는 전반적인 이미지는 남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타입으로 보인다. 양 팔꿈치를 탁자에 대고 커다란 태블릿을 든 자세다. 다른 사람들이 그가 하는 게임을 시원하게 관전할 수 있다. 난 저렇게 들고 하면 팔도 아플뿐더러 화면이 흔들려서 멀미도 나는데, 그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매우 즐거워 보인다. 지속적으로 오른쪽 다리를 떨고 있다. 잘게 떨지 않는다. 움직임이 크고 리듬감이 있다. 너무 오른쪽 다리만 떨어서 자세 불균형이 걱정되던 찰나 왼쪽도 떤다. 하지만 90%는 오른쪽 다리다. 잠시 멈췄다. 내 멀미도 줄어드나 싶었는데 5초 뒤 다시 시작이다. 잠시 휴식시간이었나 보다. 오, 이번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양쪽 다리를 함께 움직인다. 동시에는 아니고 번갈아가며. 그러니까 제자리 달리기 하듯.


누가 보면 내가 그를 계속 똑바로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난 계속 모니터를 바라보고 한 번씩 창밖을 쳐다볼 뿐이다. 난 다른 사람을 그리 열심히 관찰하는 타입이 아니다. 종일 만나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어울린 친구와 헤어지고 나면 그 친구가 무슨 옷을 입었더라, 할 때가 많다. 남을 뜯어보고 훑어보지 않는 편이다. 오늘 같은 경우는, 그냥.. 보지 않아도 보인다. 그러면서 약간의 멀미가 동반되기에, 기둥 뒤로 자꾸 숨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렇지 않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은근히 예민한가 보다. 오늘 그걸 인정하고 깊이 생각하고 간다. 하려던 일은 이 글을 쓰려는 게 아니었는데, 예민함 덕분에 글 한편 쓰게 됐다. 그에게 고맙다. 글도 쓰게 해 주고,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사람. 나는 소심함이 넘쳐 넓은 카페에서도 누가 내 모니터를 우연히라도 볼까 봐 전전긍긍할 때가 많은데(특히 글 쓸 때) 저렇게 시원시원한 성격이라니. 다리도 떨고 싶은 만큼 실컷 움직이는 화끈함이라니. 나도 그를 조오오금은 닮고 싶다. 한.. 개미 오줌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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