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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얼마나 계획적인 사람인가요?

14127일째의 단상

그동안 너무 짧게 봐왔다. 내 삶의 앞 날이든, 아이들의 미래든.

거의 그래 왔던 것 같다. 나는 항상 내 생활의 '현재'에 집중했고, 그 덕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선 나름 엄청난 추진력을 자랑해 왔던 것 같다.


몇 년 전 내가 '캘리그라피'에 푹 빠졌던 그때, 나는 당장 너무 캘리그라피가 좋았다. 바로 배우지 않고는 못 참겠고, 결국 어느 날 밤새워 서치한 끝에 가장 배우고 싶은 스승을 찾았다. 다음 날 전화를 했고 그다음 날 상담을 예약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부터, 멀리 인사동까지 수업을 들으러 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 오랜 기간 캘리그라피에 빠져 근방의 센터에서 몇 달간 수업도 듣고, 독학도 했으니, 준비 단계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얼핏 들으면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에 엄청난 추진력을 갖고 열정적으로 달려가는 사람으로만 보일 것이라는 게 포인트다.


매일같이 붓을 들던 그때


여기서 빠진 것은? 그렇다. 나는 정말 지금 당장, '이 즈음'만 생각하며 달려온 것이다. 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만약 내가 그때 좀 더 멀리 바라보고, 주부인 내가 수묵캘리그라피를 배우는 이유와 목표를 조금만 더 깊이, 멀리 생각해 봤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지금부터 5개월 뒤에는 전문가 과정을 마치면서 자격증을 따고, 1년 뒤에는 협회 내 전시회에 참가하고(계획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전시회엔 참여했다), 2년 내로 크고 작은 대회에 출품해서 입상해야지! 그리고 3년 뒤에는 작지만 내 모든 혼을 갈아 넣은 '수묵캘리그라피 개인 전시회'를 열거야. 그러면 그때는 진짜 작가가 되어 있겠지?"

라는 조금은 긴 공상 같은 계획이라도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길을 찾아다녔다면 어땠을까 말이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이제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고는 하지 않겠다.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캘리그라피 말고도 내 삶에서는 아주 다양한 일들이 있어 왔고, 순간순간 계획의 필요성을 느껴 왔지만 내가 외면했던 것이다. 오늘내일 당장 해야 할, 빨리 하고픈 일들이 많아서 이것 만으로도 내 하루가 벅찼다고 핑계 댈 수도 있겠다. 솔직히 그냥 내키는 대로 즐기고만 싶었고, 어렵게 도전하거나 힘들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현재를 달리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실력은 쌓여갔지만 방향성이 없고 체계적이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한 언니는 엄청 놀라는 모습이었다. 내 주변 지인 중 가장 계획성 있고, 늘 나에게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주는 사람. 언니는 너무도 당연히 매 순간 내일을, 이번 주말을, 다음 방학을, 1년 뒤와 3년 뒤를 생각하고 구상하는 사람이다. 아무렇지 않게 최근 나의 이런 느낀 바들을 털어놓고 있는데 언니의 눈이 점점 커졌다. 

"다들 나처럼 늘 계획하고, 앞날을 생각하면서 사는 줄 알았어."


그렇다. 누군가에겐 정말 사소한 일상 같은 습관들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성찰하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나의 계획 없는 습관에 대해 이 나이에 새삼 반성하고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 건, 나는 아직 창창하고 앞날이 구만리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보다 훨씬 소중한 나의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도 나의 이런 생각과 습관 하나하나가 영향을 미친다 생각하니, 당장 나를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의 이번 주말을, 1년 뒤를, 5년 뒤를 생각하는데 아이들을 제외할 수 있을까? 자연히 아이들에게도 계속 묻게 되겠지.

"이번 주말에 뭐 할 거야?", "겨울방학에 뭐 배우고 싶은 거 없어?", "우리 내년 여름엔 영국에 있는 이모한테 놀러 갈까?"


이렇게 쓰다 보니 또 자괴감이 커져 가서, 내가 너무 별로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또 생각을 한다. 언니가 해준 말. 이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데, 너무 이것만 생각해서 그 많은 장점을 덮어 버리지 말라고. 그래, 지금 내 머릿속을 채운 나에 대한 생각, 욕구, 공상들에 '계획이라는 날개'와 '멀리 볼 수 있는 망원경'을 살포시 달아줘야지. 지금이라도 알고 바뀌어 보려는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


당장 시작해 봐야겠다. 컴퓨터보다는 수첩에, 키보드보다는 펜으로, 사소한 생각의 습관부터 바꿔봐야겠다.

아직 서른아홉이니까, 지금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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