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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생각 Mar 05. 2024

서평 『생명과 문학』김휼 2004봄호

인간 본연의 가치를 노래한 조성국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해낙낙』

 인간 본연의 가치를 노래한 조성국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해낙낙  / 김휼

        

  인간 본연의 가치를 노래하고 있는 『해낙낙』은 조성국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조선대학교 재학 당시 학내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실형까지 살았던 시인은 1990년 수배 당시의 이야기를 「수배 일기」라는 연작시로 써서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그 후 18년 만에 첫 시집 『슬그머니』와 함께 『둥근 진동』, 『나만 멀쩡해서 미안해』, 『구멍 집』, 『귀 기울여 들어줘서 고맙다』를 내었고 이번에 다섯 번째 시집 『해낙낙』을 (시인의 일요일) 출간하였다. 우직한 성정을 가진 시인은 전편에서 차분하고 진솔한 목소리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오월이 오는 것을 월력이 아닌 피부로 느낀다는 시인에게 오월은 몸에 새겨진 印과 같은 계절이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희석된다지만 좀처럼 옅어지지 않는 상흔을 몸 안쪽에 지니고 살았을 아픔의 시간들, 오월의 정신과 오월의 그늘이 인생 전반에 짙게 자리한 까닭에 쉽사리 그늘 밖으로 나서지 못하던 시인은 그늘 안쪽에 자리한 시를 지렛대 삼아 폐허의 시간을 건너왔으리. 아물지 않은 내상의 깊이를 가지고 살아온 그에게 있어 시는 그리고 가족은 빛으로 가는 통로였고 어둠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악몽으로 곧잘 지금도 가위눌린다는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지나온 세월의 무상함과 집,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딸애가 넹택없이 바라는 걸 일거에
 무찔러 버렸더니
 밥 안 먹는다고
 땅바닥 나뒹굴며 뒈지게 울며불며 뗑깡을 부린다
 글다가 달게는 사람이 통 없으니까
 이리저리 둘러보며 아무도 없어 보이니까
 바른 손등과 손바닥을 번갈아서 눈두덩 쓱 문질러 닦고는
 흙 묻은 옷자락 탈탈 털며
 지 혼자 밥 먹는 것을 넌지시 훔쳐보며
 해낙낙하니 웃었다     

- 『해낙낙하니 웃었다』 전문


 무모한 땡강을 받아 줄 이 없음을 알고 혼자 일어서 숟가락을 든 아이를 훔쳐보며 해낙낙 웃어보는 마음은 좌표 없는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하는 우리들 이면의 삶으로도 읽힌다. 황폐한 세상사에 있어 시인에게 마지막 보루는 다름 아닌 가족이었으리. 요양원 가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와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일생 반듯하게 누워 자는 아버지, 그리고 천형 같은 간질을 앓는 형과 암에 걸려서 각종 보험을 타게 되니 빚을 털게 되었다며 오히려 좋아하는 누나, 이처럼 쓰리고 아픈 피붙이들을 향해 고향의 본래적 말로 에둘러 고백하는 서툰 사랑이 읽는 이로 하여금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이러한 그의 시를 보고 해설을 쓴 고재종 시인은 “고유의 말을 찾아내 자기만의 독자성을 얻어내려는 시도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요새의 부박한 문화주의에 근거한 많은 도회시들이 마치 대중 예술의 트렌드처럼 반짝 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시대에 조성국이 존재의 근본과 근원인 집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우리 시단에서 흔치 않아 관심을 가질 만하기에 충분하다”라고 말한다.     


수수깡으로 외를 엮고

그 위에 볏짚 섞은 황토 발라 벽을 친 초가에서

귀가 빠지고 자랐다 검정 고무신만큼이나

발등 새까맣던

외딴 읍내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가서

대나무로 외를 얽고 회칠한 일본인 관사에서 곁방을 살았고

청년 시절에는 시멘트 불록 쌓고

양회 칠한 개량 주택에서 하숙 자취하며 살았다, 또

카키색 복장 차려입고 내무반 침상에 줄지어 잠도 들었었고

이적단체 고무하고 찬양하다,

얼마간 한속 추위가 이는 흰 벽 하얀 방에 갇혀 살던

이력이 붙었으나

장가들어 솔가해선 붉은 벽돌의 이층 단독주택, 빛 보증서 말아먹고

유산받듯 철근에다 콘크리트 입힌 고층 골조아파트에

스위치 하나 눌러

방 덥히고 물과 불과 바람을 끌어올려

여태껏 깃들어 살며

야들야들하리만치 길들여진 내가

점점 견고한 곳으로 옮겨 사는 꼴이었으나 내가 생각하기로는

당성냥 긋듯 군불 때며

옹색하게 삼대의 열두 식구와 함께 지긋지긋 지내며

고봉은 아니어도 그들먹한 사기그릇의 밥을 든든하니 먹었어도

금방 재가 꺼지는 단칸방 윗목

대나무 발로 엮은 고구마 뒤주와 푸른 누룩이 피는 

나어린 집이 가장 슬거웠다     

                                                             - 『집』 전문     


  기억의 심연에 가라앉은 어두운 그림자를 털어버리려 숨차게 달려온 시인은 지친 몸과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먼 길을 돌아 옛집에 든다.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검정 고무신만큼이나 발등 새까맣게 뛰놀던 유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을 때, 시대로 인해 훼손되고 황폐해진 자신의 삶을 되돌려놓고 싶은 마음이 클 때, 사는 일이 힘들 때 아무런 이념이나 사상이 자리 잡지 않은 本來의 나로 돌아가려는 무의식이 그를 본가로 이끌었으리라. 단칸방에서 옹색하게 살았지만 시인은 그때가 인생 전반에서 가장 슬거운 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집은 온갖 세상의 것들로 비루해진 우리의 바깥이 가장 편안한 숨을 쉴 수 있는 우리의 안이다. 스위치 하나 눌러 방 덥히고 물과 불과 바람을 끌어올리는 아파트에서 몸 편안하게 살고 있지만 시인에게 어쩌면 그의 본가는 가장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너덜거리는 나를 내려놓고 아무런 눈치 보지 않고 가장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요 안식처이다. 본가의 집이 시인에게 있어서 마음의 고요함과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라면 시 속에 등장하는 솔밑재의 소나무 한그루는 시인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벼락을 빌려 제 가지를 내리치던

내리쳤으나

부러지기는커녕 벼락마저 삼켜 버린 노거수가 있지

차마 못 볼 꼴 보며 산 죄가 너무 많다는 듯

사지 뒤틀린 소나무 한 그루

누운 듯 서 있지

광주 풍암동 금당산 가면 

제 나뭇가지에 밧줄 올가미를 걸어 목맸다가

내려앉을 땅이 업어

한 줌 재로 뿌려진 장사의 흔적을 파묻기라도 하듯 퍼붓는 잣눈

고스란히 버팅겨 인 채

이윽고 생가지 찢으며 내지르던 비명도 간혹 들려오지

초고속 문자메시지로

정리해고 통보받은 중년의 가장 같은 건 힘써 볼 엄두도 못 내는 그런

그런 세상이

수통스레 치밀어 올 때면 반드시 다녀오는,

혼자서 울며

그저 종주먹이나 어서석대며 머리통 서너 번 쿵쿵 짓찧더라도

혼자 통곡하기 좋은

오솔한 길에 붉은 소나무 한 그루 있지

우중충한 숲속인데 그곳에만 빛 들어

끄떡하면 스스로 부끄러운 내 열패의 대소사를 관장하듯

달래고 얼러 주는 청솔 한그루 서 있지     

                                                         - 솔밑재 전문     


  죄책감은 죄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죄를 느낄 줄 아는 마음의 크기이듯 집이라는 것도 외형의 크기가 아닌 몸과 영혼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서 유무가 우리의 마음을 누이게 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림자처럼 달라붙는 어떤 죄의식을 떨쳐보려고 낮술에 의지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이 맘대로 되지 않아 성소를 찾듯 본가를 찾아가 무거운 그림자들을 내려놓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얼룩이란 게 쉬이 지워질 수 없는 것이라서 누군가에게는 내 안의 괴로움을 쏟아야 살아갈 수 있었던 시인은 스스로 그 대상을 만든다. 그 존재가 바로 벼락을 맞아서 사지가 뒤틀린 뒷산의 소나무 한 그루였다.     


  세상일이 수통스레 치밀어 올 때, 그로 인해 어깨를 짓눌러 오는 가장의 무게가 힘겨울 때, 혼자 통곡하기 좋은 오솔한 길에 붉은 소나무 한 그루를 찾아간다. 그 말 없는 존재는 본가의 어머니처럼 시인의 마음을 달래주고 얼러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수많은 말(言) 속에서 상처를 받고 살아가는 인간은 말(言) 없는 존재로부터 위로를 얻는다. 벼락을 맞아서 사지가 뒤틀린, 아주 보잘것없는 청솔 한그루가 그의 위로자가 되고 슈퍼바이저가 되기도 하여 그는 부끄러운 열패의 대소사를 시시콜콜 다 아뢰고 새 길을 찾아 다시 인생길을 걸어가곤 했을 것이다. 

    

가까이 갔다 싶으면 달음박질치고,

멀리서 뒤돌아보면

그냥 잡힐 것같이 다가오고, 가만 놔두면 금방 좀 슬고,

시척지근해져, 내다 버릴 수밖에 없는,

간혹 헛물만 켜져

조석으로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 차리는,

두드리면 두드린 대로 강해지고,

촘촘하게 깎으면

깎인 대로 빛나고, 쪼면 쫄수록 엄정하고,

닦으면 닦은 대로

광채 발하는,

머리칼 잔뜩 세고, 뼛속에 바람 드는 나이에야 어렴풋이 짐작되다가,

언젠가 아픈 내 몸이 어쩌다 안 아픈 한순간,

딴 세상이 보이던, 그런

그런 날, 흐리마리하게나마 보이다가, 이내 긴가민가한 물음이

생기고, 또 생기는, 그저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다가 무릎을 딱! 치며 아하, 하고 그랬다가

또다시 모르겠는,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의, 이건 도대체 뭘까, 묻기에,

엉겁결 대답해 버린,

그것이 정답인지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으나,

지랄같이 이런 걸 이어받고, 또 이어 주는지, 인생이,

가물가물해지며, 참 아득해지는

                                                                  - 『스무고개 전문』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한낱 미물에게서 위로를 받고 사는 것처럼 알다가도 모르겠는 인생을 시인은 스무고개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옮기는 일이 정치인들만의 것이 아닌 세상에서 살붙이처럼 지내던 이들이 마음을 옮겨 갈 때 그마저도 훌훌 털어버린다. 산불이 지나간 곳, 날개 아래 새끼를 품고 소신불이 된 까투리를 보며 적어도 품이라면 이쯤은 되어야지, 입엣말을 하며 가는 시인의 뒷모습이 흐리게나마 보이는 인생의 뒷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스무고개를 넘으며 시인은 결심한다. 일부러 갖지 않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켜켜이 포개어 가지게 된 것들마저 하나 둘 비워내어 가벼워지기로, 그것이 가파른 오부능선을 넘어온 그의 결론이다. 내 의지로 세상에 온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가 엉겁결에 이어받게 된 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예외 없이 누군가에게 또 건네주고 가야 하는 인생에 정답은 없다. 단지 건네받은 그것을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내 방식대로 잘 사용하다 전해주면 될 뿐,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의 그것, 그래서 혹자는 말하지 않은가,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답다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노래하며 고개를 넘는 시인처럼 우리도 묵묵히 가다 보면 해낙낙하니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팔부능선 어디 쯤에 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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