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숲에 펼쳐진 시의 식탁으로의 초대

고영숙 시집 『꿈을 나눠 먹어요』

by 좋은생각

서평


은유의 숲에 펼쳐진 시의 식탁으로의 초대

- 고영숙 시집 『꿈을 나눠 먹어요』 (여우난골,2025)

김휼


고영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꿈을 나눠 먹어요』가 시인수첩시인선 099번으로 출간됐다. 2020년 《리토피아》로 등단하여 첫 시집 『나를 낳아주세요』를 낸 지 4년 만에 출간한 이번 작품 『꿈을 나눠 먹어요』는 말 그대로 시의 식탁으로의 초대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희망과 절망이 섞인 질문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고자 한 시인의 섬세한 손끝이 은유와 상징의 이미지로 깊이 있는 내면을 버물려 놓은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색다른 풍미를 선사한다.


성경에는 왕의 식탁으로의 초대가 나온다. 천국에 대한 혼인 잔치의 비유다. 거기에서 왕은 거대한 잔치를 베풀고 왕의 식탁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왕이 베푸는 잔치는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초대를 한바탕 먹고 마시는 일회성 행사로 오해하여 바쁘다는 핑계로 응하지 않는다. 장가를 들어서, 소를 사서, 밭에 가야 해서, 등등 그렇다고 해서 왕은 잔치를 엎지 않는다. 네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아 다시 잔치를 이어간다.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식어서 맛이 간 음식을 대접한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풍성한 최고의 코스 요리를 차려놓는다.


어느 문학 모임에서 잠깐 만난 고영숙 시인에게서 시집을 받았었다. 시집을 받고, 시간이 나면 읽으려니 하고 있었는데 마음이 식어 갈 즈음 한 통의 전화로 다시 시인의 식탁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어쭙잖게 나서는 꼴이 될까 봐 망설이다 초대에 응하게 된 나는 시인의 말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한 편 한 편 곱씹어 읽다 보니 특별한 코스로 나오는 별미를 맛보게 한 시인의 초대에 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만들어 놓은 은유의 숲에는 아픈 상처들을 반짝이는 별로 만들어 주고 싶은 꿈이 서려 있었다. 시인은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그 꿈을 길어 올린다. 그 꿈은 누군가를 앞질러 이루는 성공의 꿈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따듯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손 내미는 꿈이다. 꿈을 만들어 나누기 위한 과정에서 눈물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리라. 애피타이저처럼 ‘티슈’라는 시를 맨 앞에 놓아둔 것도 ‘물비린내가 묻어나는 날것의 생, 한번 마음껏 울’고 시작하자는 시인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읽어졌다.

티슈


깃털처럼 얇은 사람들이 포개져 있다

송곳으로 그은 가파른 심장을 가지고 놀다 뼈를 깎듯 바스러진다 그깟 사랑들 그깟 이별들은 한 끗 차이라고 우리에게 들이미는

흰 비늘의 꽃

-티슈 전문


인간은 쉽게 찢어지기 쉬운 가벼운 존재들이다. 그런 존재들이 포개져 살면서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겹쳐 있어 가깝게 보이나 무심하게 때론 날카롭게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없으면 죽을 것처럼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지만 그 사랑의 무게 또한 실은 티슈처럼 가볍고 연약하다는 사실. ‘티슈’는 이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함께 간직한 꽃처럼 생의 아이러니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고통이 유익이 될 수 있는 길은 예술적으로 승화될 때이다. 예술적으로 승화된 고통은 비로소 삶의 원동력이 된다. 시인이 지나온 골짜기에는 뼈를 깎는 고통의 구간이 많았었을까, 짐작해 보건대 고통의 구간을 지나오면서도 시를 놓지 않고 살아온 시인에게 그것은 시의 질료가 되었고 맷집을 키우는 스파링의 상대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시가 시인을 살게 하였던 것이다.


스파링

여전히 글의 스파링 상대가 되지 못한다

가시를 세우는 법도 스스로 날개를 펼치는 법도 없는 어눌해진 갈비뼈를 진통제로 다독이지만

제 몸에 상처 하나씩은 지닌 두루마리 서사가 흘러내리고

책장을 펼치면 물불 가리지 않아 너덜해진 글자들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대학병원 63병동

그가 방향을 더듬으며 눈물샘의 수평을 맞추고

사랑, 그 뻔한 레퍼토리를 물고

눈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 위빙, 그리고

훅, 훅,

구겨지는 백지의 세계, 흰색은 항복의 레토릭


날렵한 활자들이 잽싸게 주먹을 날린다 난 난독(難讀),

소리 내어 세상을 읽지 못하는 병증(病症)

반쯤 접힌 책날개에 갇혀

울컥,

잽을 날린다

대신 울어주는 녹슨 종소리마다

쉽게 아물지 않는 페이지 마다

상처들

짠 내 나는 것들은 힘이 세진다


비로소 선명한 눈물의 잇자국들

마르고 나면 반짝이는 문장의 알갱이들

-스파링 전문

타인의 질병을 내가 대신 앓을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맞이하는 나의 고통 또한 함께 나눌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서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내 몫의 고통은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하는 것이다. 고통에서 비롯된 ‘눈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 시인은 부단히 스파링의 상대인 시와 씨름을 해왔다. 상처가 아물고 ‘눈물의 잇자국’들이 다 마를 즈음이면 반짝이게 될 문장들로 아름다운 시를 구사하기 위해 훈련을 멈추지 않는다. ‘태양 달 지구 그리고 나의 순서로 일식이 완성되었다. 내일이 눈부시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고 시의 집을 여는 시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우주적 순환이 일어나는 흐름의 일부로 자신을 위치시켜 놓으며 사유를 펼쳐간다. <가족들의 방>에서 <반야>에서 <만다라의 체형에서>, <내가 얼마나 카페인을 사랑하는지도 모르면서>에서 <주문하신 눈사람 나왔습니다>에서 <몸, 개정판>에서 등등 그릇 그릇에 담긴 감정의 서사들은 읽는 독자들의 혀끝을 아리게 한다.

잘못 없는 꿈

오래오래 참으면 나도 눈부셔질까요

잠깐씩 깨어나

베개에 묻은 흙을 털면

나의 바탕색은 남향이었을까요

꽃나무 아래에서 죽은 인형은

차가운 밤이 되고

우린 매일 좋은 꿈을 나눠먹어요

실패한 꿈은 세상에 없는 기원이 되고

반려식물처럼 길어지는 머리카락

아직 꿈에 봉인 된 인형은

나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선몽이에요

아무 잘못 없는 꿈이라고

나에게 말하지만

식어가는 잠은 말수가 적어요

국화꽃을 던지면 말린 꿈은

생생한 잎맥이 돋아나요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면

깊은 잠을 못 잔다고

남은 꿈을 심는 뿌리 없는 사람들

-잘못 없는 꿈 전문

‘오래오래 참으면 나도 눈부셔질까요’ 희망과 불안이 섞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꿈을 계속 피워 올려 함께 나누려는 화자의 두 내면이 교차한다. 실패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물색없이 계속 태어나는 꿈, 꿈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현실에서 오는 슬픔을 안고 살지만 시인은 버려진 것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계속 꿈을 꾸며 좋은 것을 가져오고자 한다. 인생은 해석이라는 말이 있다. 각자가 가진 내면의 잣대를 가지고 해석을 하며 살아간다. 니체는 말했다.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해석일 뿐이다’ 똑같은 사실을 놓고 누구는 만족하고 누구는 불편해한다. 해석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해석자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결과는 달라진다. 해석을 통치할 때 비로소 인생을 통치할 수 있게 된다. 시인은 뿌리가 없으면서도 계속 꿈을 심고자 하는 불안한 존재들과 함께 꿈을 나눠 먹으며 생명을 붙들고자 하는 해석의 통치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도구


내 몸에 걸려 넘어진

어둠을 생각하다가

여분의 빛을 활용하거나

절망의 조각을 세공하여

한 줄의 길몽으로

다시 쓴다

-도구 전문

상처에 걸려 넘어진 자리에서 시인은 힘을 다해 다시 일어서려 한다. 절망의 작은 조각도 버리지 않고 다시 다듬어 의미 있는 질료로 쓰고자 깨진 조각들을 그러모은다. 거기에 여분의 빛을 넣고 실패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함으로써 다시 좋은 상태로 되돌리고자 하는 시인은 우주의 일부가 되어 순환적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그것은 눈부신 내일을 완성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 사람이 꿈마저 꿀 수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한가, 시인이 여분의 빛으로 마련한 꿈의 식탁은 울음이 멎은 자리다.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뜨듯 머잖아 울음의 멎은 은유의 숲에는 와르르 쏟아지는 꿈의 빛들로 그녀의 식탁은 환하게 빛날 것이다.


서평 김휼. 2025 다층 겨울호


#김휼시인#고영숙시인#너의 밤으로갈까#꿈을 나눠먹어요


김휼

2017 열린시학으로 등단. 목포문학상 본상 수상, 제주 4.3 평화 문학상 수상 시집『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 『너의 밤으로 갈까』 사진 시집『말에서 멀어지는 순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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