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평화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흰 문장 > 과 *책가도와 비교
2025. 4.3평화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흰 문장 /김휼
흰 문장을 읽는다
묵음의 무게가 심장보다 무거워 주저앉은,
매번 다른 말로 읽히는 줄거리의 결말은 열려있다
어느 날 돌아보면 주어가 바뀌고 서술어에 서술어가 붙어 안긴문장은 목적어를 내게 물어온다
기록과 기억 사이
지워야 완성이 되는 이 문장의 방식은 믿음을 요하는 신앙에 가깝다
아버지가 생략된 나에게 봄은 언제나 바깥이었다
술잔을 돌리는 손목 끝에서 그려지는 동그라미는 떠난 자의 영혼, 어떤 부재는 너무 구체적이어서 보면 젖기도 했다
무명천으로 동여맨 얼굴을 더듬듯, 백비를 읽는다 울음에서 시작된 짐작들로 채워진 이 침묵의 경전은 나비가 되기 전에 읽어야 할 생의 목록일진대,
환부를 감싼 흰빛 위에 빽빽이 채워진 말
교열이 어긋난 이 비문을 누가 해독해줄까
등 돌린 괄호에 질문이 잠기고
부재속 당신은 익명의 빈칸을 서성이고 있다
-2025. 4.3평화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
[당선 소감] 사람 목숨의 무게가 다르지 않은 세상이 펼쳐지길 소망해 봅니다
사유하고 쓰는 일은 존재하는 인간에게 있어 귀하고 가치로운 일일 것입니다. 그 일을 행하고 사는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사람의 내면과 내면을 이어주는 일을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말로도 규정할 수 없는 말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기도 합니다.
여행자에게 더없이 아름답던 섬으로만 생각했던 제주는 4·3을 깊이 알고 난 후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붉은 쓰라림의 이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은 죄도 없이 무고하게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 앞에서, 억울한 죽음에도 속울음 삼키며 침묵 가운데 살아야 했던 사람들 앞에서,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이별이 되지 않는 죽음 앞에서 언어마저 무력해지고 마는 순간을 맞곤 했습니다.
누워있는 백비에는 그러한 이들이 써 내려간 흰 문장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한참을 머물며 교열이 어긋난 행간을 더듬어 읽다 보면 뿌옇게 흐려지는 습기에 발목이 젖기도 했지요.
어제와 오늘이 맞물려 역사는 흘러가는 것처럼 죽은 자의 어제는 산자의 오늘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지요. 야만이 만연된 시대 시대마다 그래서 누군가는 옳다고 여기는 일에 곡기를 끊으며 그름에 대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피를 흘리기도 합니다. 부디, 이 바람의 땅에 뿌려진 피 값이 헛되지 않아서 사람 목숨의 무게가 다르지 않은 세상이 펼쳐지길 소망해 봅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의미 있고 귀한 상을 제정하신 제주특별자치도와 4.3 평화재단에 그리고 부족한 사람의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선생님이 되어주시고 친구가 되어주신 많은 시인들과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며 내 작은 신음에 늘 귀를 기울이시는 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심사평]
제13회 제4.3평화문학상 시 부문에 응모한 사람은 총 139명에 작품 수 1,390편이었다. 이 중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 8명의 80편을 통해서 같은 거대한 역사 주제에 대응하는 시인의 시적 태도는 어떠한가를 여실하게 엿볼 수 있었다.
먼저 4.3 당시 희생자들에게 빙의되어 그 목불인견의 현장성을 살려내느라 혼신을 쏟아 붓는 시들이다. 물론 이런 시들은 당시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희생자 유족들의 증언을 취재했거나 신문 기사 등 그동안 조사되었던 관련 자료를 참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현장성을 살려낸다고 해도 소재 혹은 이미지의 사유화를 통한 시적 형상화에 미흡할 때 시는 결코 공감을 얻지 못한다.
다음으로 학계에서 어느 정도 정리된 4.3에 대한 거대 담론에 단순히 지적 이미지를 대입시키는 기계적인 시들이다. 시의 기능 가운데 인식적 충격이나 성찰의 진정성 등이 있다. 한데 이런 기계적인 시들이 특히 예술에서 요구되는 클리셰를 일거에 전복시키는 참신한 시각을 확보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시는 결코 당위적인 관념이 아니고 사실적 감각과 이에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구되는 예술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불운이나 당위에 매몰되기보다는 쩨와 현장을 투명하고 겸손하게 바라보며 그걸 오늘의 시작, 나아가 미래를 담보해낼 ‘오늘 너머의 시각’까지를 확보하여 대상에 대한 시적, 감각적 해석을 탁월하게 해내는 경우이다. 천근만근 같은 쩨의 무거움을 ‘잘 빚은 항아리(엘리어트)’로 승화시켜내는 일은 고도의 정신력 없이는 불가능할 터 심사위원들은 여기에 부합하는 두 분의 시를 찾아냈다.
그중 한 분은 <백야> 등 10편을 응모한 분의 시이다. 이 분은 4.3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세련된 이미지와 시적 전망을 통해 4.3에 대한 미래적 시각까지 담보해내고 있다는 한 심사위원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이미지, 은유화 속에 역사 주제에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사실적 감각이나 주제 의식이 너무 은폐되어버린다는 약점이 나머지 두 심사위원의 확실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시인의 시적 가능성은 누구 못지않게 크다고 말할 수 있는데, 시를 요리하는 솜씨가 너무도 세련됐다는 데 심사위원들은 동의했다.
다음으로 <숨결> 등 10편을 응모한 분은 대상에 대한 시적 장악력이 뛰어났다. 특히 그의 소재에 대한 폐부를 찌르는 감각적 해석력은 무거운 주제를 순식간에 잘 빚은 감동의 항아리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가령 ‘백비’를 노래한 <흰 문장>에서 “아버지가 생략된 봄은 언제나 바깥이다”랄지, <감자꽃>에서 “뭉개진 가슴 속에서 푸른 독을 품은 꽃눈이 돋았다.” 그리고 ‘비설’을 읊은 <숨결>에서 “돌 속에 갇힌 울음”을 받아내는 시인의 어미 같은 마음은 거의 필사적이다. 그 외에도 <폭포>, <빌레못에서> 보여주는 시적 전개의 활달함과 아물러 사실과 은유의 조화로운 매칭, 소재와 주제에 대한 감각적이고 심도 깊은 해석력 등으로 4.3의 진실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을 수렴하는 상의 의의에 충분히 값해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 심사위원 : 강형철, 고재종, 김해자
----------------------------------------------------------------
시 감상
김휼의 시 「흰 문장」에 대한 분석
1. 제목의 의미: '흰 문장'
김휼 시인의 '흰 문장'이라는 제목은 4.3 사건과 관련된 여러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음
- 백비(白碑)와의 연결: '흰 문장'은 제주 4.3 평화공원 기념관 초입에 누워있는,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흰 비석인 백비(白碑)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킴.
이 백비는 4.3 정명이 정립되면 그 위에 글을 새기고 세울 예정이라고 언급되어 있음
'흰 문장'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역사, 혹은 침묵 속에 감춰진 진실을 상징하며, '흰 문장'은 바로 이 비석에 담길, 혹은 담겨야 할 아직 쓰이지 않은 역사의 기록을 의미.
- 침묵과 부재 속의 이야기: 시인은 당선 소감에서 "누워있는 백비에는 그러한 이들이 써 내려간 흰 문장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라고 표현하며,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백비에 무형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
'흰 문장'은 외부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깊은 아픔과 침묵 속에서만 읽어낼 수 있는 내면의 서사를 뜻함.
- 진실과 해독의 필요성: '흰 문장'은 단순히 비어있다는 의미를 넘어, '교열이 어긋난 이 비문을 누가 해독해 줄까'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음 . 이는 4.3 사건의 왜곡되거나 불완전하게 기록된 역사, 혹은 은폐된 진실을 해독하고 밝혀내야 할 과제를 시사.
'흰 문장'은 미완의 진실이자, 우리가 풀어내야 할 숙제로서의 역사를 상징.
2. 주제:
제주 4.3 사건의 진실 규명과 기억, 그리고 평화
- 4.3의 진실과 인권: 시는 4.3 사건의 "천근만근 같은 주제의 무거움"을 다루면서도, "4·3의 진실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인권을 수렴하는 상의 의미에 충분히 값한다"는 평가를 받았음. 이는 시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을 넘어,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음을 보여줌.
- 기억과 애도: "묵음의 무게가 심장보다 무거워 주저앉은"이라는 구절은 억압되고 침묵 속에 묻힌 희생자들의 아픔을 형상화하며,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노력을 강조 . 또한 "아버지가 생략된 나에게 봄은 언제나 바깥이었다"와 "술잔을 돌리는 손목 끝에서 그려지는 동그라미는 떠난 자의 영혼" 같은 표현을 통해 4.3으로 인한 가족 상실의 아픔과 부재한 이들에 대한 깊은 애도를 드러냄.
- 치유와 평화의 소망: 시는 4.3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구도적 수행과 절제, 내밀한 사유로 다스려 새로운 치유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시인의 의도를 담고 있음. 시인은 당선소감에서 "사람 목숨의 무게가 다르지 않은 세상이 펼쳐지길 소망해 봅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희생된 영혼들의 아픔이 헛되지 않고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시인의 메시지를 전달.
3. 상징 분석
- 흰 문장/백비: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상징인 '흰 문장'과 '백비'는 글자가 새겨지지 않은 흰 비석을 의미하며, 4.3 사건의 공식적인 기록이나 서사가 부재한 상태를 나타냄.
오랜 시간 동안 진실이 은폐되고 희생자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던 아픈 역사를 대변하며, 동시에 아직 쓰이지 않았거나 해독되어야 할 진실의 기록을 상징
- 묵음의 무게: "묵음의 무게가 심장보다 무거워 주저앉은"은 말해지지 않은 역사, 침묵 속에 갇힌 진실의 무게를 암시. 이는 4.3 사건의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과 그들의 목소리가 억압되었던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줌
- 열린 결말과 변화하는 주어: "매번 다른 말로 읽히는 줄거리의 결말은 열려있다", "어느 날 돌아보면 주어가 바뀌고 서술어에 서술어가 붙어 안긴문장은 목적어를 내게 물어온다"는 구절은 역사적 서사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새로운 관점에서 질문될 수 있음을 나타냄 . 이는 4.3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과 재평가의 필요성을 시사.
- 무명천으로 동여맨 얼굴: '무명천'은 시신을 감싸거나 상처를 싸맬 때 사용되는 천으로, 4.3 사건 당시 희생자들이 겪었을 고통과 죽음을 연상시킴. '동여맨 얼굴'은 희생자들의 개별적인 얼굴과 사연이 가려져 있음을 의미하며, 이름 없이 사라졌거나 이야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현실을 반영
- 침묵의 경전: "울음에서 시작된 짐작들로 채워진 이 침묵의 경전"이라는 구절에서 백비는 글자는 없지만 4.3 사건의 모든 비극적 서사를 담고 있는 존재로 묘사됨 .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보다 더 깊고 본질적인 진실을 내포하며, 공감과 짐작을 통해 희생자들의 아픔과 역사의 깊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의미.
- 부재: "아버지가 생략된 나에게 봄은 언제나 바깥이었다"나 "술잔을 돌리는 손목 끝에서 그려지는 동그라미는 떠난 자의 영혼, 어떤 부재는 너무 구체적이어서 더듬다 보면 젖기도 했다"와 같은 표현들은 4.3으로 인한 가족의 상실과 떠난 자들에 대한 깊은 애도, 그리고 그들의 부재가 현실 속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느껴지는지를 보여줌.
- 환부와 비문: "환부를 감싼 흰빛 위에 빽빽이 채워진 말 / 교열이 어긋난 이 비문을 누가 해독해 줄까"라는 구절은 백비에 새겨지지 않은 이야기, 즉 4.3 사건의 침묵 속에 감춰진 진실을 누가 밝혀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짐 . '환부'는 아픔의 근원을, '비문'은 해독해야 할 어려운 기록을 상징.
- 등 돌린 괄호와 익명의 빈칸: "등 돌린 괄호에 질문이 잠기고 / 부재 속 당신은 익명의 빈칸을 서성이고 있다"는 표현은 아직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희생자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이 필요함을 시사. 괄호와 빈칸은 미해결된 문제와 채워지지 않은 공백을 상징.
4.문장 단위 분석
"흰 문장을 읽는다"
시의 행위 주체가 '흰 문장'을 읽는다는 선언으로, 이는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을 넘어 백비와 같은 미완의 역사 혹은 '침묵 속에 감춰진 진실'을 탐구하겠다는 시인의 의지를 나타냄.
"묵음의 무게가 심장보다 무거워 주저앉은,"
말해지지 못한 진실, 즉 4.3 사건의 억압된 역사가 주는 침묵의 무게가 개인의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무겁다는 것을 형상화. 희생자들의 한과 고통을 상징.
- "매번 다른 말로 읽히는 줄거리의 결말은 열려있다"
역사의 해석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수 있음을 시사하며, 4.3 사건의 진실이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재해석될 여지가 있음을 의미 .
- "어느 날 돌아보면 주어가 바뀌고 서술어에 서술어가 붙어 안긴문장은 목적어를 내게 물어온다"
역사적 서술의 주체가 변화하고, 복잡한 문장 구조처럼 진실이 여러 겹으로 얽혀 있으며, 결국 그 진실이 화자에게 질문의 형태로 다가온다는 의미 . 이는 4.3의 진실이 왜곡되거나 은폐된 채로 역사의 주체가 바뀌어왔음을 암시.
- "기록과 기억 사이 / 지워야 완성이 되는 이 문장의 방식은 믿음을 요하는 신앙에 가깝다"
기록과 기억은 다르며, 때로는 아픈 기억을 '지우는' 과정, 즉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진정한 완성을 이룬다는 역설적인 의미를 내포.
이는 4.3의 아픔을 보듬는 것이 신념과 같은 노력을 요구한다는 것을 강조.
- "아버지가 생략된 나에게 봄은 언제나 바깥이었다"
4.3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화자의 상실감과 아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냄. '봄'은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상징하지만, '바깥'이었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봄의 따스함과 평화가 허락되지 않은 고통의 시간을 의미
- "술잔을 돌리는 손목 끝에서 그려지는 동그라미는 떠난 자의 영혼, 어떤 부재는 너무 구체적이어서 더듬다 보면 젖기도 했다"
술잔을 돌리는 행위에서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의식이 느껴지며, 그들의 부재가 너무나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서 마치 만져지는 듯하여 슬픔에 '젖게' 만든다는 것을 표현. 희생자들에 대한 깊은 애도를 나타냄.
- "무명천으로 동여맨 얼굴을 더듬듯 백비를 읽는다"
백비에 새겨지지 않은 이야기, 즉 4.3 희생자들의 감춰진 사연을 감각적으로 더듬어 알아내려는 조심스럽고 간절한 태도를 보여줌.
- "울음에서 시작된 짐작들로 채워진 이 침묵의 경전은 나비가 되기 전에 읽어야 할 생의 목록일진대,"
. '울음'과 '짐작'은 이성적인 해석을 넘어선 감정적 공감을 통해 침묵 속의 진실을 탐색하려는 노력을 의미하며, '침묵의 경전'은 백비가 가진 역사적 의미의 무게를 상징. '나비가 되기 전'은 '나비'가 완전한 치유와 평화, 혹은 해방된 영혼을 의미한다면, '나비가 되기 전'은 그러한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음을 암시하며,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기 전' 이 아픈 역사를 기억해야 할 책임감을 나타냄.
- "환부를 감싼 흰빛 위에 빽빽이 채워진 말 / 교열이 어긋난 이 비문을 누가 해독해 줄까"
'환부'는 4.3의 아픈 상처를, '흰빛'은 백비의 침묵을 상징 . '빽빽이 채워진 말'은 백비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존재했던 수많은 이야기와 진실을 의미하며, '교열이 어긋난 비문'은 왜곡되거나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는 역사를 나타냄.. 누가 이 진실을 밝혀내고 바로잡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짐.해독이 쉽지 않다는 의미도 내포.
- "등 돌린 괄호에 질문이 잠기고 / 부재 속 당신은 익명의 빈칸을 서성이고 있다"
'등 돌린 괄호'는 답변되지 않은 채 외면된 질문들을, '익명의 빈칸'은 이름 없이 사라진 4.3 희생자들을 상징. 희생자들의 존재와 그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미지의 상태로 남아 있으며,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
------------------------------------------------------
흰 문장과 책가도의 시적 구조의 유사성 분석
1. 시적 구조의 유사성: 중심 은유와 변주
이수국의 「책가도」와 김휼의 「흰 문장」은 모두 ‘책가도’ 또는 ‘흰 문장’이라는 강렬하고 상징적인 중심 이미지를 시의 도입부에 제시함으로써 시의 구조를 강하게 규정합니다 . 두 작품 모두 이 핵심 은유를 다양한 시적 변주와 이미지 확장, 상세한 서술을 이어나가며 시적 전개를 점층적으로 심화시킵니다. 예를 들어, 「책가도」는 ‘오크 향 원목 책장’, ‘박물관 유리문 너머 책가도’, ‘가로와 세로의 배열’, ‘천년의 페이지들’ 등 구체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이미지로 그 배경을 확장합니다 . 「흰 문장」 또한 ‘흰 문장을 읽는다’는 출발점에서 시작해 ‘묵음의 무게’, ‘기록과 기억 사이’, ‘지워야 완성되는 문장’ 등 다양한 은유와 심상으로 시의 내용을 변주합니다. 이렇게 중심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변형하여 전체 시의 구조가 단계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구조적으로 매우 흡사합니다.
또한 두 시 모두 시인 자신의 삶과 내면에서 출발한 에피소드(개인적 경험 또는 체험)를 삽입해 시적 핵심에서 보편적 인간 경험으로 의미를 확장하는 점층 구조를 보입니다. 「책가도」에서는 ‘책장 바닥에 그늘 한 권을 괴자 몸이 중심을 잡는다’ 혹은 ‘내 안의 책장을 만지면 나는 가끔 살아 있는 것 같다’와 같은 표현을 통해 타자와 시적 자아, 과거와 현재, 내면과 외부 세계를 연결합니다 . 「흰 문장」 역시 ‘아버지가 생략된 나에게 봄은 언제나 바깥이었다’ 혹은 ‘술잔을 돌리는 손목 끝에서 그려지는 동그라미’ 등 개인적 기억을 구체적으로 삽입하여, 개별적 상실 경험이 역사적 혹은 사회적 부재감과 절묘하게 만나는 구조를 만듭니다.
2. 결구(마무리)의 확장과 열린 마무리
두 시의 결구는 모두 개인적인 층위를 넘어 보편적 정서, 즉 ‘서성임’이나 ‘존재의 확인’으로 의미를 확대하며 마무리됩니다. 「책가도」에서 ‘내 안의 책장을 만지면 나는 가끔 살아 있는 것 같다’는 구절은 자기 존재의 감각, 혹은 존재 확인의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결구로 작용합니다. 반면 「흰 문장」의 결구인 ‘등 돌린 괄호에 질문이 잠기고 / 부재 속 당신은 익명의 빈칸을 서성이고 있다’ 역시 특정 사건이나 개인적 아픔을 넘어선 ‘보편적 상실’과 ‘경계 없는 존재 상태’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두 시 모두 시적 주체가 맺고 있는 내면적 체험과 역사의 공통된 층위를 열린 형태로 확장하며 시를 마무리한다는 구조상의 유사점을 보입니다.
3. 역설의 사용 방식—존재와 부재/죽음과 삶의 긴장
양 시에서 가장 특이한 또 하나의 공통점은 ‘역설(paradox)’을 핵심적 시적 장치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책가도」에서는 ‘나는 살았지만 죽은 사람’,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기대고 있는 책’, ‘나는 죽었지만 살아있는 사람’ 등 생과 사, 존재와 부재의 경계가 맞물리는 역설적 선언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 이는 시적 주체가 시간과 공간, 생명과 기억의 경계선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자기 존재의 불확정성을 통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흰 문장」에서도 ‘지워야 완성이 되는 문장’, ‘묵음의 무게가 심장보다 무거워 주저앉은’과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언어로 완벽히 포착될 수 없는 부재, 침묵, 결핍,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는 삶과 기억의 힘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특히 ‘기록과 기억 사이 지워야 완성이 되는 이 문장의 방식은 믿음을 요하는 신앙에 가깝다’라는 대목은, 부재(지움)야말로 오히려 가장 강렬한 존재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모순적 진실, 즉 역설적 삶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역설의 사용은 두 시 모두에서 ‘생과 사’ ‘부재와 존재’ ‘침묵과 언어’ ‘과거와 현재’ 등 이항적 구조의 대립을 겹치면서, 그 사이 공간을 시적 긴장과 사유의 장으로 확장하는 효과를 냅니다. 즉, 역설적 진술이 단지 언어적 기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적 자아와 타자, 기억과 망각의 경계를 허물고, 독자로 하여금 근원적 존재 질문에 다가서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4. 표 구조 비교
5. 결론적 평가
결론적으로, 「책가도」와 「흰 문장」은 모두 중심 은유에서 출발해 시적 사유의 지평을 점층적으로 확장하고, 개인적 체험을 매개로 보편적 정서를 획득함으로써 긴 여운을 남깁니다. 두 시의 공통점은 구조적으로 관철되는 강력한 은유와 점층법, 그리고 언어와 존재의 관계, 생과 사의 모순적 긴장감(역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 이러한 구조와 기법은 오늘날 시가 어떻게 개별적 삶의 흔적과 집단적 기억, 존재론적 질문을 교차시키는지, 그리고 역설을 통해 인간 경험의 근원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범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전북시조시인협회 카페 –작성자 김수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