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문장들
김휼
붉은 말을 가진 자목련의 결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템포에 맞춰
텅 빈 마음으로 하늘을 세우는 대나무의 자세를 배우러 갑니다
가며, 아버지 기울어진 오른쪽 어깨를 떠올립니다
멈춰있는 바퀴의 참을성이 궁금해 한참을 멈추었어요
어둠 속을 뻗어가는 눈 밝은 뿌리는 절망에서 멀고
탱자나무 가시 사이로 피는 꽃의 질서는 나를 말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종일 하늘을 품다 저무는 호수는 일기장에 무엇을 쓸까요
굳어지면서 생기는 저 고요의 층위
바위의 밀린 숨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봄의 입구에서
열리지 않는 문의 안쪽을 생각하다
애매할 때면 침묵을 앞세우는 말의 처지를 헤아려 봅니다
. 2023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