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이 있다면 감정에 향기와 떨림까지
따뜻하다고 하기엔 땀이 배어나고 덥다고 하기엔 선선한 초여름이다.
엄마와 함께 수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외곽도로가 지나는 어느 큰 시설에 들어갔다. 불편한 듯 단정한 정장을 차려입고 시간 맞춰 건물에 신분증을 맞기고 안내에 따라 깔끔하고 아늑한 내부로 들어간다. 한 시간가량이 지나고 건물 밖을 빠져나왔다. 들어갈 때에는 긴장으로 몰랐지만 큰 건물을 나오고 보니 주변이 정말 쾌적하다. 걷기 좋은 산책로가 산을 따라 조성되어 있고,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편의시설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여기는 사무실과 함께 있는 고급 리조트인가 싶다.
밖에서 기다리던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산책로를 거닐어본다. 산책로를 따라 무성한 나무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건물을 들어갈 때와 다르게 일을 마치고 나온 나는 편안하게 시간을 즐긴다.
그늘 아래를 지나며 따뜻하고 선선한 향기가 동시에 흉곽 아래까지 들 어치는 느낌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지만 진한 감격을 느낀 것만 같은 기분이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긴장까지 더해져 조금씩 신경 쓰이던 정장의 불편함도 유쾌한 산책의 시간에 금세 무력화되어버렸다. 엄마와 함께 걷는 길도 그렇고 홀가분한 기분도 그렇고 이 기분과 상황을 사진 찍어 담아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나는 이미 그렇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6년 6월의 어느 날 내 첫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간 날의 기억이다. 불현듯 이 날이 이토록 자세히 기억나는 것은 사건이 강력해서가 아니다. 강력한 기억으로 치자면 입사 후 잘못 보낸 채팅으로 한판 붙었던 대리와 싸우던 날이나 업무 중 국가보안시설 요원이 찾아와 무섭게 면담을 요구했던 기억이 더 우세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그저 활자 그대로 ‘사건, 사고의 개요’ 정도만 남아있다.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먹어요. ~~~ 배고플 땐 이 노래를 아침 사과처럼 꺼내 먹어요.” -zion T, 꺼내먹어요 노래 가사이다.
오늘처럼 휴식하기 좋은 일요일 오후에는 꼭 힘들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아도 이처럼 경쾌한 기억을 꺼내먹을 수 있다니 주간에 피로와 긴장으로 딱딱해졌던 어깨가 노곤히 누그러지는 것만 같다. 이런 잔잔한 설렘의 기억이 계절이 바뀌는 시간차 기류에 묻어 간혹 선물처럼 떠오를 때 지난 시간의 기억은 이렇게 쓰이는 거구나 생각하며 이 순간 나를 위한 꽃향기 하나 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