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하지만 근사한 나의 행복
요즘 같은 으슬으슬한 날씨에 뜨거운 물에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들리는 우리 애들 영문모를 웃음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바디로션을 찹찹 발라주고 옷을 입고 극세사 이불속으로 쏙 들어갈 때 그 포근함이 최근의 행복이다.
그렇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편안함이다. 그중에서도 마음의 안정이 동반된 몸의 편안함이랄까? 다이어트 명언에도 있다. ‘먹어봤자 아는 맛?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내 집 내 시간 내 공간에서 불안함 없이 누리는 안정이다. 사무실에도 편안한 내의자가 있지만 집에 있는 내 오래된 소파가 최고다. 그렇지만 외부 회의나 출장으로 잘 꾸며진 사무실에 앉아있을 땐 내 사무실의 나의 의자가 백배 낫다. 익숙함이 주는 행복은 안일함이 아니라 나를 챙기는 것이다.
또 하나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며 '와. 잘 잤다.'를 느껴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이전에는 잘 잔 것이 행복인 줄 몰랐다. 잘 자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오히려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하는 잠자는 시간을 어떻게든 덜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잠을 잘 잘 수 있다면 살이 쪄도 상관없겠다. 이제는 잘 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달콤한 잠을 잃어보고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쩌다 푹 잘잔날의 아침의 푸석한 얼굴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잠을 잘자지 못한 날엔 컨디션도 엉망에다 소화도 되지 않아 죄책감마저 들었었다. 이것이 어느 날부터 나에게 강박에 가까워져 나를 괴롭게 한다는 걸 느낀 후부터 잘 못 자는 날엔 나를 위로해주고 잘 자고 일어난 날엔 행복해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하루씩 잘 자고 일어난 날들이 늘어간다. 일주일 중에 하루만 푹 자고 일어나도 내가 너무 대견하다. 그날의 아침나절 진짜 행복감을 느낀다.
“잘 잤구나. 건강한 하루가 되겠구나. 오늘의 기분은 쉽게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겠구나. 밝은 기운인 내가 사랑스럽다.”
이전의 행복은 이벤트였다.
20살 처음으로 시즌권을 끊어 스키를 배우러 간 것.
22살 친구들과 근사한 펜션에서 기막힌 1박 2일 생일 파티를 즐긴 것.
24살 일본으로 내 생의 최초 해외여행을 떠난 것.
25살 첫 직장에 들어가 명함을 갖게 된 것. 같은 것..
마치 어느 시점을 타격하는 사건들이 행복인 것 같았다. 지금은 그런 것들은 오히려 행복한 순간들의 결과물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시점들만을 행복의 순간이라 하기엔 행복이 너무 짧은 듯하다.
내 행복은 그 순간들보다 조금 더 깊고 스펙트럼이 넓어진 느낌이다.
말하자면 바디 프로필을 찍고자 하는 사람이 디데이를 정하고 만족스러운 사진을 남긴 것에서 이전의 나리면 멋진 사진으로 남은 그날을 행복이라 부를 테지만 지금의 나는 그 결심부터 그를 위한 식사에 대한 애정, 운동을 위한 시간 투자와 그 순간순간들의 진심들이 모두 행복의 순간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글을 적어 내려 가는 침대 위의 이 순간도 꽤 진실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