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이와 코마니, 그리고 월정리 고양이들의 이야기
돌담 위로 작은 고개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금세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얼굴은 세상에 첫인사를 건네는 듯 조심스러웠다. 그중 고등어 무늬의 작은 고양이는 훗날 끝내 살아남아 ‘데칼이’라 불리게 될 아이였다. 바람에 흔들리고, 사람의 기척에 움찔하면서도 결국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내밀곤 했다. 작은 생명들이 처음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그 순간, 곁에서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일은 늘 벅찬 경험이었다.
그때, 아기들의 곁을 고요히 지키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어미 데칼이였다. 아이들이 다 먹고 난 뒤에야 조심스럽게 밥그릇에 얼굴을 들이밀던, 인내심 깊은 어미였다.
나는 방파제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월정리 고양이들과도 삶을 나누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 때로는 한 달씩 제주에 머무는 동안, 아이들과는 서서히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데칼이와 코마니는 유독 애틋하게 다가오는 존재였다.
데칼이의 첫 출산에서 어미 곁에 남은 건 단 한 마리였다. 작은 체구였지만 살아남으려는 의지는 누구보다 강했다. 밥그릇에 앞발을 꼭 담근 천진한 모습은 치열하게 살아남겠다는 약속 같았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코마니’라 불렀다. 털색과 무늬까지 어미 데칼이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었기에, 책다방의 선영 씨가 붙여준 이름이었다.
꼬마 시절, 책다방의 낮은 담장 아래에서 얼굴을 내밀던 코마니는 호기심 많은 눈빛으로 다가와 내 마음을 흔들곤 했다. 때로는 보이지 않아 애태우게 했고, 또 어떤 날은 뜻밖에 마주쳐 반가움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오가는 시간 속에서 코마니는 내게 특별한 친구가 되었다.
데칼이는 책다방과 언니옷장 뒷마당,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돌담 그늘에 새끼들을 데리고 와 몸을 의지하곤 했다. 몇 번의 출산 끝에 몸은 점점 고단해졌지만, 젖을 물리고 아이들을 지켜내려는 눈빛만은 꺼지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그 눈빛에서 삶을 잇는 힘을 읽었다.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내 안에서는 언제나 나란히 있었다.
시간이 흘러 데칼이는 코마니에게 영역을 물려주듯 자취를 감추었다. 그사이 책다방과 언니옷장의 언니들은 젖이 불러 있는 모습을 보고 두 번째 출산을 짐작했지만, 아기들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제주에 내려간 어느 날, 데칼이와 코마니를 찾으러 마을 길을 걷던 중, 어디선가 들려온 가느다란 야옹 소리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노부부의 마당을 내려다본 순간, 돌담 사이를 드나드는 작은 몸짓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데칼이가 있었다. 곁에는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아기들이 어설프게 뛰놀고 있었다. 한 아이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풀대를 입에 물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볼 땐 파 줄기인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지만, 가까이 보니 그저 말라버린 풀대였다. 작은 이빨로 뜯어낸 흔적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무엇이든 물어보고 맛보며 세상을 배워가는 시기, 아기들에게 세상은 온통 놀이터이자 교과서 같았다.
마침 그때, 집 안에서 어르신이 손주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육지에서 놀러온 듯한 아이들은 튜브를 팔에 낀 채 마당에 있던 아기 고양이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이 물놀이를 나설 참인지 집 안팎이 분주했지만, 돌담 아래 아기들은 아랑곳없이 웅크려 있었다. 풀잎을 굴리다 멈추면, 이내 다른 아이가 달려들어 입에 물곤 했다. 서툴지만 단단하게 세상을 익혀 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잠시 머뭇이다가 용기를 내어 어르신께 다가갔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드리고는 조심스레 여쭈었다.
“아기들 먹을 것 좀 줘도 될까요?”
어르신은 잠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돌리며 급히 그릇에 먹을 것을 담아 내밀었다. 아기들의 시선은 금세 먹을 것에 쏠렸고, 조금 전까지 입에 물고 있던 줄기는 발치에 힘없이 나뒹굴었다. 풀대의 정체를 놓아버리자, 아이들은 금세 먹을 것에만 몰두했다.
그때, 마당에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이 찾아왔다. 굵은 몸집에 세월의 흔적이 남은 수컷 고양이가 느긋하게 걸어오자, 데칼이는 주저 없이 다가가 고개를 맞댔다. 소란스럽던 마당 한가운데, 잠시나마 고요가 내려앉았다. 흩어진 생활도구와 삐걱이는 선풍기 사이에서 어미와 아버지, 그리고 어린 새끼들의 발걸음이 겹쳐지며, 오래된 가족사진 같은 정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날 오후, 데칼이는 아기들을 하나씩 입에 물고 옷장 뒷마당 돌담으로 옮겨왔다. 낯선 마당에서 시작된 보금자리가 마침내 옷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안도와 설렘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언니들에게 알렸다. “데칼이가 아기들을 데리고 왔어.”
언니들은 옷장에서 손님 맞이 준비를 하다 말고 곧장 밖으로 뛰어나왔다. 모두가 돌담 아래를 향해 시선을 모았다.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숨기는 아기들의 모습에, 우리는 연신 숨을 죽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두더지놀이 같기도 한 그 장면은, 긴장과 안도, 기쁨이 한꺼번에 뒤섞인 풍경이었다
그것은 장난이 아니라 바람과 낯선 기척을 견디며 살아남기 위한 연습이었다. 아기들은 여전히 돌담 위를 경계했지만, 세상과 처음 눈을 맞대는 순간의 떨림은 숨길 수 없었다. 귀 끝이 바람에 파르르 떨리고, 동그란 눈동자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언니들과 나는 숨소리조차 줄이며 그 풍경을 지켜보았다. 작은 돌담은 그날, 어린 생명들이 세상과 첫인사를 나누는 무대가 되었다.
잠시 뒤, 데칼이는 밥그릇 앞에 서더니 입안 가득 사료를 물고 돌담 너머 아기들 곁으로 향했다. 젖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작은 사료 알갱이가 아이들에게 밥상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기들은 좀처럼 돌담을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급히 비닐장갑에 사료를 담아 묶어 건넸고, 그것마저 물고 가 아기들에게 전해주었다. 이어 닭고기를 찢어 내밀자, 또다시 그대로 물고 갔다. 그렇게 몇 차례나 오가며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른 뒤에야, 허겁지겁 자기 몫을 삼켰다.
그 자리에는 코마니도 있었다. 첫 출산에서 어미 곁에 남은 아이, 이제는 동생들을 멀찍이 바라보며 마당 한켠에 앉아 있었다. 엄마와는 따로 지내다가도 이렇게 마주하곤 했던 터라,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동생들이 돌담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어미가 사료를 나르며 분주히 오갈 때, 코마니는 조용히 그 곁에 머물렀다. 마치 자신도 그 가족의 일부라는 듯,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었다.
한때 밥그릇에 앞발을 푹 담그던 아기 고양이는 이제 없었다. 그 대신,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성묘의 기운이 코마니의 몸에 서려 있었다. 그 곁에는 언제나 짝꿍 수컷 고양이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젖소 무늬 고양이와 함께였고, 청년기에는 거칠고 나이 든 대장 고양이와 어울렸다. 중년에 접어든 뒤 구내염으로 힘겨워할 때는, 젊은 고양이 한 마리가 곁에 머물렀다. 곁을 지켜준 이는 달라졌어도, 누군가와 나란히 있는 모습만은 늘 같았다.
그러나 코마니의 몸은 점차 야위어 갔고, 구내염의 호전과 악화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한때는 똘망한 눈빛으로 책다방과 언니옷장을 구경하듯 오가던 코마니였지만, 이제는 그 기운이 한결 잦아들어 조심스레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오랜 벗으로서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다.
데칼이가 세 번째 출산에서 낳은 두 아기는 끝내 봄을 맞지 못했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뒤, 모성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지만,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며 제 삶을 담담히 이어갔다.
옷장 앞 데크는 고양이들의 작은 무대였다. 쇼윈도 옆 좁은 나무 바닥을 따라 걷는 모습은, 마치 모델이 런웨이를 오가는 듯했다. 해가 기울면 데크 위로 고양이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고, 그 속에는 언제나 코마니의 발걸음이 있었다. 한때 돌담 속에 숨어들던 아이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을 스스럼없이 받아내며 당당히 데크 위를 거닐었다. 특히 남자친구와 함께일 때면 두 마리의 보폭은 묘하게 나란히 맞아 떨어졌다.
그 친구는 언니옷장 뒤편 캣대디 창고에서 태어나 자란 고양이로,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코마니와 한 쌍이 되었다. 마당 급식소에서 나란히 밥을 먹고, 데크 위에서 어깨를 맞댄 채 쉬는 모습은 지켜보는 시선을 너그러이 감싸주곤 했다. 그 풍경 속에서 코마니는 고단한 삶을 살아온 고양이가 아니라, 바닷바람 거센 마을에서도 마지막까지 사랑과 동행을 누리던 존재였다.
그해 겨울, 옷장 뒤에는 작은 쉼터가 마련되었다. 본래는 고양이들을 위한 급식소였지만, 언니옷장 계정 언니와 선영 씨가 함께 따뜻한 보금자리로 바꾸어주었다. 두툼한 담요와 방풍천으로 감싼 그 안에서 코마니는 긴 겨울을 견뎠다. 곁에는 늘 함께하던 친구가 있었다. 많은 고양이들과의 여정 속에서도 끝내 코마니가 의지한 이는 그 곁을 지켜준 단짝이었다. 구내염으로 수척해진 몸은 안쓰러웠으나, 약을 먹으며 버티는 동안 그 따스한 체온은 무엇보다 큰 위로였을 것이다. 그 작은 쉼터는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코마니에게 사랑과 동행의 자리였다.
봄이 되어 여느 때처럼 옷장 뒷문으로 나가 “코마니, 데칼아—” 하고 이름을 불렀다.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서 두 아이를 찾는 것이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뒷문을 연 언니가 조심스레 말했다.
“코마니 떠났어.”
언니의 그 짧은 말은 단숨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의미를 직감했지만, 나는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육지에 있는 동안, 더 일찍 슬픔을 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끝내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코마니가 묻힌 자리를 바라보며 한없이 울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순간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오랜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 못한 아쉬움이었다. 언니들이 잘 보내주었으리라 믿으면서도, 애도의 시간을 나누지 못한 허전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도 코마니를 떠올리면 눈가가 뜨거워진다. 작고 단단한 생명이 남긴 빈자리는,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코마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바닷가와 골목마다 여전히 다른 고양이들이 제 몫의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월정리 고양이들은 코마니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았다. 바닷바람에 스러지듯 퍼져 있는 허피스와 결막염, 그리고 전염되는 구내염은 이곳 고양이들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털이 뭉치고, 침을 흘리며, 혀를 내민 채 끊임없이 먹을 것을 찾아 나서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그럴 때마다 언니들과 나는 영양제와 항생제를 건네며, 덜 아프고 먹는 순간만큼은 편안하기를 바랐다. 모두를 구조해 끝까지 책임질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살아 있는 동안은 조금 덜 힘들기를, 밥을 삼킬 때 통증이 덜하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고양이들은 스스로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갔다.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몸을 숨기고, 테왁을 장난감 삼아 놀면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어귀마다 밥을 내어놓는 손길들이 늘어, 고양이들은 그 따스함에 기대어 오늘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병마와 바람을 잊은 듯,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 묻어났다.
짬뽕집 앞, 분식집 옆 마당, 카페와 소품점 앞마당… 작은 그릇들이 놓인 자리마다 고양이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하루를 이어갔다. 그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희망처럼 다가왔다.
언니옷장 뒷마당은 아이들에게 작은 놀이터였다. 서핑 보드는 때로는 침대, 때로는 스크래처가 되어 고양이들의 발자국을 품었다. 그 위에 누운 아이들은 금세라도 파도를 타고 나아갈 듯 보였다.
쇼윈도 위에 올라 마을을 굽어보던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이 마을의 주인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듯 당당했다. 호기심 많은 녀석은 가게 문틈으로 들어와 옷 사이를 살피다 후문으로 빠져나가곤 했다. 그 장난스러운 습관은 코마니에게서 시작되어, 이제는 옷장을 지키는 대장고양이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코마니가 남긴 발자국은 옷장 앞에, 그리고 선영 씨의 책다방에도 남아 있었다. 책다방이 문을 닫은 뒤에도 그는 옷장 옆 빈티지 숍에서 고양이들과 시간을 이어갔고, 지금은 시내로 자리를 옮겼다. 그 기억을 담아 내가 만든 엽서들은 사람들의 손에 건네질 때마다 월정리 고양이들의 밥과 돌봄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언니옷장 한켠에는 내 엽서들이 놓여 있으며, 그 작은 카드들은 고양이들의 하루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발자국이 되고 있다. 언니옷장은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깃든 공간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돌담 위 작은 발자국이 오래도록 이어져, 월정리의 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