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이 지켜낸 자리

찬란한 바다와 햇살 속에 피어난 공존의 풍경

by 할망

삼색이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날이면, 나는 요정 건물을 지나 바닷바람을 따라 몇 분쯤 걸었다. 그 길 위에는 또 다른 고양이들의 터전이 있었다.


� 삼색이와의 지난 이야기들

눈보라 속 15km 걸어온 고양이

고양이들이 만든 무대, 삼색이가 머문 자리


삼색이가 머무는 폐기물 적하장과는 달리, 이곳은 파라다이스에 가까웠다. 바다를 배경 삼아 고양이들이 늘어지게 잠든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어졌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안내문이었다. ‘CAT’이라는 굵은 글씨 아래에는 고양이 가족이 이곳에 살고 있으며, 사람을 경계하기에 거리를 두고 바라봐 달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소박한 안내문이었지만, 고양이와 사람이 모두 불편하지 않도록 서로의 거리를 존중해 달라는 다정한 언어처럼 다가왔다. 그 몇 줄 속에는 이 공간을 오랫동안 지켜온 배려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CAT’ 안내문, 이곳이 고양이와 공존하는 공간임을 알린다.


안내문 앞에는 고양이들이 자주 머물렀다. 처음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고양이가 앉아 있던 돌 틈은 데크 아래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몸을 숨기고 쉬다가, 다시 나와 바다 앞 공간을 오르내렸다. 안내문은 몇 마디 글에 그치지 않고, 고양이들의 삶이 스며 있는 자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표식 같았다. 그 문장은 이곳을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언어였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공간임을,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발길을 돌릴 수도 있음을. 나는 그 언어가 곧 이 풍경과 삶을 지켜내는 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데크 아래, 엄마 품에서 태어난 곳, 엄마는 영역을 물려주고 없지만 아이들은 이곳에서 잠들고 쉰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면, 주황빛 전등이 따뜻하게 비추는 사진 액자가 눈길을 끌었다. 낯선 듯 익숙한 풍경,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는 낡은 사다리였다. 처음엔 단순한 구조물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고양이가 집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는 길이었다. 창문에서 시작해 나무를 스치고 지붕까지 이어지는 그 사다리는 고양이를 위한 또 하나의 출입문이었다.


스위스의 집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양이 사다리 풍경이 떠올랐다. 삶의 울타리를 넘어들 수 있도록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만든 길이었다. 예전 책 속에서 보았던 장면이기도 했다.


이곳과 가까운 건축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도 그 책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액자 속 사진으로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액자 속 풍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고양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쌓아온 주인의 마음이, 사다리의 길 위로 겹쳐 스며들었다.


안쪽 벽에는 구불구불한 길 위로 동전이 흘러내리는 기부 액자가 걸려 있었다. 고양이와 사람, 서로 다른 존재들을 향한 마음이 그 안에서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작은 액자들 속에 담긴 것은 결국, 살아가는 존재를 향한 다정함이었다.


창밖을 기웃거리며 기다리던 끝에, 고양이가 나타났다. 간판 안쪽 그늘에 몸을 웅크린 채, 조용히 사료 그릇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잠시 뒤 치즈 무늬가 더 짙은 또 다른 아이가 다가와 물을 마셨다. 그곳에도 입구와 마찬가지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곳이 고양이 가족의 삶의 터전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다정한 징표였다.

사료와 물, 그리고 안전하다는 믿음이 만든 평온한 풍경


곧 흰 바탕에 치즈빛을 두른 고양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세 아이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자, 바닷가 풍경은 한층 더 충만해졌다. 주인의 허락을 받아 트릿을 내밀었다. 그러자 멀찍이 거리를 두던 아이들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트릿만 받아먹을 뿐, 여전히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고양이들이었다.

간식을 받아먹을 만큼은 다가왔지만, 여전히 자기만의 거리를 지키는 고양이들


배를 채운 고양이들은 바다를 배경 삼아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누웠다. 연파랑 하늘과 진파랑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위로, 하얀 바닥과 미색의 건물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그 위를 거닐고, 눕고, 햇살에 몸을 맡긴 고양이들의 모습은 바다와 하늘이 선물한 가장 온화한 장면이었다. 찬란함에 눈이 부셔 잠시 숨조차 멎을 듯했는데, 그 고요와 평화는 한동안 풍경 속에 번져 있었다. 이곳의 빛은 또 다른 방식으로 충만했다. 햇살과 바다의 찬란함 속에 아이들을 안아주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행복한 고양이의 얼굴’이란 바로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일 것 같았다.

산토리니를 닮은 풍경, 바다를 배경으로 햇살에 기대어 잠든 고양이들


그러나 이 아름다움에도 그늘은 드리워져 있었다. 사장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고양이 가족의 또 다른 삶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삼색 고양이 ‘소리’와 치즈 무늬 고양이 ‘보리’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에서 다섯 아이가 태어났다. 엄마는 데크 아래에서 젖을 물리며 새끼들을 지켜냈지만, 두 아이는 도로 위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고, 한 아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상을 아직 배워보지도 못한 작은 생명들이었다.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꺾여버린 생명, 그 짧은 이야기는 쉽게 잊히지 않는 안타까움이었다.

결국 암컷 두 아이만이 살아남았다. 엄마는 그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하고 먹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영역을 물려주고 발길을 거두었다. 떠난 듯 보였지만, 부재만은 아니었다. 바람처럼 다시 나타나 밥을 먹고 물을 마신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지금은 아빠 보리와 두 딸이 이곳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바닷가 풍경 속에 스며든 고양이들의 삶과 다정한 배려


맑은 날엔 햇살 아래서 느긋하게 잠들던 아이들이었지만, 비가 내리자 풍경은 달라졌다. 사장님은 “아마 데크 아래에서 쉬고 있을 것”이라 일러주었다. 실제로 엄마 품에서 태어난 그 자리는 지금도 아이들의 잠자리가 되어 있었다. 빗방울을 피해 옮겨놓은 밥그릇은 카페 유리문 앞에 놓였고,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밥을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파도와 빗소리 사이로 작은 씹는 소리가 은은히 스며들었다. 특별할 것 없는 장면이었지만, 그 고요는 빗속의 풍경을 한층 더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빗줄기와 파도 소리를 배경 삼아, 고양이들의 식탁이 옮겨졌다.


비가 그치자 사장님은 내가 선물한 장난감을 꺼내 고양이들과 놀아주었다. 낯선 이에게는 경계심을 보이던 아이들이었지만, 주인장 앞에서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얼굴로 바뀌었다.

고양이들의 얼굴이 가장 편안해지는 순간, 주인장과 함께하는 시간


또 한 번은 늦은 저녁, 유리문 앞에 앉아 있던 아빠 보리와 딸이 나를 보자 동시에 울었다.

“간식 나올 시간이야옹, 사장님께 전해주라냥!”

마감이 가까워 분주한 틈에도 아이들은 당당히 제 몫을 요구했다. 그 모습이 애틋하고도 우스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날은 사장님을 대신해 내가 직접 간식을 건넸다. 매일 이어져온 작은 의식 속에 잠시 끼어든 순간이었지만, 그 정겨운 풍경은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매일 저녁 7시, 고양이들과 주인장이 나누는 신뢰의 시간


그리고 하루의 끝, 나는 다시 입구로 향했다. 안내문 곁, 돌 틈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양이들이 배웅하듯 서 있었다. 이곳은 그들의 집이자 세상과의 문턱이었다. 낮에는 인사를 건네며 맞이하고, 밤에는 배웅하며 떠나보내는 자리. 발걸음을 옮기고도, 그 눈빛은 끝내 잊히지 않았다.

고양이 안내문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때면 그곳에서 배웅해주기도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