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를 간택한 고양이 부녀

어느 날, 이웃집에서 살던 부녀가 돌담집으로 이사 왔다.

by 할망

옛 제주의 돌담집, 바람과 고양이가 함께 머무는 집이었다. 낮은 지붕 너머로 바다가 펼쳐지고, 마당에는 초록 잔디와 낮은 야자수가 드리워져 있었다. 홀로 떠난 첫 제주 여행에서, 나는 이 집을 예약했다. 단지 하룻밤 묵을 숙소가 아니라,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도착한 날, 툇마루에는 턱시도와 올블랙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낯선 발자국에도 자리를 내어주던 아이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먼저 도착했다.

고무신을 벗고 툇마루에 앉자, 발끝 아래로 검정 고무신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시골 할머니 댁에 온 듯, 정겨운 풍경이었다. 내가 신던 고무신도 그 옆에 살며시 줄을 세우자, 몸집이 작은 고양이가 다가왔다.

신발 위에 살포시 올라서더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민망함도 잠시, 그 장면은 그 고양이만의 손님 맞이 의식처럼 느껴졌다. 작은 코끝이 건넨 인사는, 이 집이 고양이와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임을 조용히 일러주고 있었다.

툇마루와 마당을 오가며, 고양이들이 완성해 준 돌담집의 하루.


계단을 따라 옥상에 오르면, 색색의 지붕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빨랫줄처럼 이어졌고, 그 너머로 푸른 바다가 잔잔히 펼쳐져 있었다. 제주의 바람과 빛, 그리고 고양이들. 이곳에서 겹쳐지는 것들은 모두, 하루라는 시간 안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하루 여정을 마치고 밖거리 한켠에 앉아, 고양이들과 간식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게스트들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그 공간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돼지와 루카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동네 고양이였나요?”

주인장은 웃으며 답해주었다.

“어느 날부터 마당에 드나들던 아이들이었어요. 발길이 잦아지더니, 툇마루에서 밤을 보내기 시작했죠. 원래는 마을 할머님 댁에서 지내던 아이들이라던데, 그곳에도 고양이들이 여럿 있었대요. 이 집을 한참 탐문하던 끝에, 밥과 물을 내어주자 스스럼없이 눌러앉더라고요. 결국은 제가 간택당한 셈이죠.”


처음에는 그저 다정한 친구 사이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님께서 “부녀 사이”라 일러주신 뒤로, 늘 아빠 곁을 맴도는 그 아이의 발자국에도, 애틋한 무언가가 깃들어 있는 듯 보였다고 했다.

그렇게 함께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며, 고양이들은 점차 이 집의 주인이 되어갔다.

툇마루와 마당에 쌓인 발자국,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만든 시간


아빠 고양이는 든든한 몸집에 조용하고 젊잖은 눈빛을 지닌 아이였다. 그런데 이름이 ‘돼지’라니. 제주 흑돼지를 떠오르게 하는 검은 털빛 때문일까, 엉뚱한 이름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이름에는 묘한 애정이 배어 있었다. 주인장 앞에서 뒹굴며 배를 보이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 아빠 고양이도 여전히 귀여운 존재임을 말해주었다.

딸 '루카'는 매끈한 올블랙 털을 지닌, 어딘가 도도하고 품위 있는 분위기의 고양이였다. 하지만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야옹야옹 수다를 거는 모습은, 그야말로 딸의 애정이었다. 사람 곁에 와서 엉덩이를 내밀고 궁디팡팡을 조를 때면, 고급스러움도 잠시 내려놓은 듯 다정했다.

이 부녀는 서로의 기운을 나누듯, 함께 걷고 쉬며, 하루의 리듬을 나란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 시절, 사장님은 알레르기가 심해 아이들을 실내로 들이지 못하고 마당에서만 밥과 물을 챙겨주었다. 그 유리창에는 ‘고양이 출입금지’라는 종이까지 붙어 있었다. 그러나 겨울이 되자, 창밖에서 난로 불빛을 바라보던 돼지와 루카의 눈빛과 마주쳤다. 그날 이후 문은 조금씩 열렸고, 함께 사는 일이 시작되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며 알레르기 증상도 사라졌다. 고양이와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바꾸어 갔다.

닫힌 문 너머를 바라보던 눈빛은, 끝내 문을 열고 서로를 바꾸어 갔다.


돌집은 어느새 고양이들의 영역이 되었다. 뒷집에서 지내던 주인장의 반려견 한동이는 덩치는 훨씬 컸지만, 루카가 앞을 막고 하악질을 하면 슬며시 물러났다. 작은 존재에게 길을 내어주는 순한 마음은, 함께 사는 법을 이미 터득한 듯 보였다.

조금씩 서로의 온도에 물들어가던, 어느 여름의 마당


그날 밤, 나는 돌담집 밖거리 한켠에 앉아 있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고요히 퍼졌다. 고양이들은 등을 맞댄 채 느긋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낮에 마당을 거닐던 한동이의 발자국도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


나는 그 곁에서 조용히 선을 그었다. 그림 속에는 돼지와 루카, 그리고 햇살 아래 어우러졌던 한동이의 모습이 담겼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레 어우러졌던 순간. 그날의 기운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하게 반짝인다.

그 그림은 엽서가 되어, 수익금은 아픈 고양이들의 치료비로 쓰였다. 여행의 기억은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길로 이어졌다.

그려진 집은 기억을 넘어, 또 다른 생명을 살린 집이 되었다.


저녁 무렵이 되면 사장님은 마을 고양이들의 밥을 챙기러 나가곤 했다. 게스트하우스의 고양이들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까지 챙기는 모습에서 이곳이 고양이들에게 얼마나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밥을 먹으러 오던 고양이가 올무에 걸려 구조되었다는 소식은, 주인장과 임시 보호를 맡은 작가님의 SNS를 통해 전해졌다. 화면 너머를 오가던 마음들은, 마을 고양이들의 삶을 함께 지켜내고 있었다.


고양이의 구조 소식은 화면 너머에서 마음을 오가게 했고, 그날 이후, 마을의 고양이들에게도 조금씩 연결되어갔다.

숙소에 머무는 동안, 아침이면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걷곤 했다. 그러다 보면 늘 지나치게 되는 카페 앞. 문을 열기 전부터 고양이 손님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는 유독 또렷한 눈빛을 지녔는데, 훗날 내 사진 속에 오래도록 머물렀고, 그 장면은 전시의 한켠에 조용히 놓였다.

영업 전부터 자리를 지키던 아침의 손님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자주 돌담집을 향했다. 숙소에 머물지 않는 날에도, 조카를 보러 가듯 장난감과 간식을 챙겨 들렀다. 툇마루와 마당, 해먹과 옥상. 그 모든 공간에는 고양이와 사람이 나눈 시간이 포근히 내려앉아 있었다.


이 집은 결국 고양이가 고른 집이었다. 사람은 그 선택을 받아들였고, 돌담집은 고양이들이 여행객을 맞이하는 집이 되었다.

한때 지나가던 발걸음이 머물며 정이 되고, 그 정은 이 집에 오래도록 스며들었다. 그 따스한 풍경을 따라, 또 다른 여행자가 이 집을 찾아오기를.

첫정이 스며든 마을, 고양이의 발자국이 풍경을 완성한다.



※ 이 이야기는 제주 한동리의 ‘게으른 소나기’를 배경으로 쓰였습니다. 고양이 부녀와 숙소 주인장의 다정한 동행은 인스타그램 @sonagisong 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