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끝에서 내민 얼굴

햇살과 바람이 머무는 발코니

by 할망

푸른 하늘 끝에서 고양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올까, 기다리듯 호기심 어린 눈빛이 하늘에 머물렀다. 그 아래로는 바다를 향한 작은 테라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고양이들의 창은 언제나 세상 쪽으로 열려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그곳은 오롯이 고양이들만의 놀이터였다. 서로를 베개 삼아 잠들다 깨어나면 장난을 치며 뛰어놀았고, 겨울이면 작은 집이 놓여 그 곁에 사료와 물그릇이 고요히 자리했다.

파도 소리 곁에서 잠든, 고양이들의 여름 오후


담벼락 위에는 젖소 무늬 암컷 ‘짤꼬’의 자손과 손주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닮은 듯 다른 얼굴들이 이어져, 작은 가계도를 펼쳐놓은 듯한 풍경이 되었다.

닮은 듯 다른 얼굴들, 세대를 잇는 작은 가족의 자리


햇살과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벽에 기대어 잠든 고양이가 있었다. 자세는 전날 술자리를 마치고 곤히 잠든 아저씨를 떠올리게 할 만큼 태연했다. 육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그 모습에, 길 위의 고양이들도 언젠가 근심을 내려놓고 이렇게 쉬기를 바라는 마음이 번져왔다.


그러나 무늬가 삼색임을 알아보는 순간, 이 아이가 암컷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배의 털이 밀려 드러난 분홍빛 살결, 잘린 왼쪽 귀. 중성화 수술을 막 끝낸 흔적이 선명했다.

짧은 웃음처럼 스쳐간 첫인상은 이내, 고양이의 삶을 증언하는 표식으로 남았다.

근심을 내려놓은 순간, 작은 표식이 드러나던 삼색 고양이


한동안 바다를 굽어보며 평화롭게 지내던 고양이들의 모습은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마을 어촌계 소유의 건물 앞, 마당 같은 테라스에는 더 이상 집도 밥그릇도 놓일 수 없었다. 바로 앞 낮은 건물은 물질을 마친 해녀 어르신들이 머무는 작업장이었고,

그들의 눈길은 오래도록 고양이들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급식소와 집은 계단을 올라, 카페 정문 앞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공간으로 옮겨졌다. 그 무렵부터 고양이들은 건물 2층 발코니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당을 떠나, 발코니 위에서 세상을 굽어보다.


계단을 오르는 길목, 벽에는 턱시도 고양이 그림 옆으로 ‘고양이 조심’이라는 작은 문구가 고요히 매달려 있었다. 문 앞에는 또 다른 푯말이 걸려, ‘길고양이 급식소’라 적힌 글씨가 이곳의 주인을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 흩어지기도 하고, 벽 틈을 타 숲으로 몸을 날리기도 했다. 늘 조금 열려 있는 미닫이문 앞에서는 숨을 고르듯 서성이며 차례를 기다리는 작은 그림자들이 보였다.


예전에는 넓은 테라스에 머물러 사람과 가까워질 기회가 드물었다. 그러나 급식소가 카페 앞에 놓이면서 풍경은 달라졌다. 오랜 시간을 지켜온 작가님은 문 앞의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내밀었고, 때때로 들르는 손님들 또한 자연스레 손길을 보탰다.

그렇게 쌓인 작은 순간들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고양이들의 발걸음은 문 앞에, 때로는 안쪽으로까지 닿았다.

문턱 앞에서 시작된 작은 경험들이 고양이와 사람을 이어주었다.


짤꼬는 첫 출산에서 낳은 아기들을 하나둘 데리고 와 계단 앞에 세워두곤 했다.

“이 아이들이 내 새끼들이에요.”

그렇게 소개를 마치면 아기들을 두고 홀가분히 마실을 나가기도 했다.

그때 인사를 하러 왔던 새끼 가운데 한 마리가 ‘짜장’이었다. 코 옆 인중 가까이에 나란히 찍힌 점은 짜장 소스를 닮아 있었고, 왼쪽의 큰 점은 하트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작은 하트가 얼굴을 더욱 사랑스럽게 밝혀주었다.


시간이 흐르며 짜장은 마을 수컷 고양이들에게 인기 많은 암컷이 되었고, 여러 차례 새끼를 낳았다. 새끼를 데리고 계단 앞에 세워두는 모습은, 어미에게서 물려받은 습관처럼 이어졌다.

“여기 와서 인사해야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냥.”

세대를 잇는 무대가 된 계단 위에서, 용기 있는 아이들은 문턱을 넘어 엄마의 발걸음을 따라나서곤 했다.

인사와 배움, 용기의 발자국이 머물던 계단


이 건물은 고양이들에게 캣타워가 따로 필요 없는 집과도 같았다. 높은 발코니에 앉아 바다를 굽어보고, 숲으로 몸을 던져 놀다가 다시 돌아와 잠드는 하루. 뛰고 쉬고, 다시 바람을 맞으며 깨어나는 그 풍경이 고양이들의 삶을 이뤄냈다.

바람과 햇살을 품은 발코니, 고양이들의 세상은 그 자체로 충분했다.


카페의 사장님과, 이곳에서 매니저로 지냈던 일러스트 작가님은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머무는 공존의 풍경을 그려갔다. 계단을 오르면 마주하는 벽화, 문 앞에 걸린 작은 푯말, 손님 고양이들을 담아낸 그림엽서까지 모두 일랑 작가님의 손끝에서 태어난 것들이었다. 세월이 흐를 때마다 엽서 속 고양이들은 새로운 얼굴로 다시 그려져, 이곳의 시간을 이어주었다.

문 앞을 지키던 고양이들의 모습은 작가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 가운데 삼월이는 늘 배가 불러, 사람들로부터 365일 내내 임신한 것 같다는 오해를 받곤 했다. 카페 안에서는 언제나 고정석을 차지하며, 마치 안방 마님처럼 자리를 지켰다. 그 자리의 위안에도 불구하고, 구내염에 시달리며 고단한 날들을 오래 견뎌야 했다. 긴 치료와 보살핌 끝에 마침내 집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가족을 만나 예쁜 공주님으로 불리며 아늑한 품 안에서 지낸다.


짜장의 새끼 씨저와 자민이도 어느 날부터는 계단 앞을 서성이던 고양이가 아니라, 작가님의 집에 머무는 아이들이 되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두 아이 역시 가족의 자리를 얻었다.

무무는 다른 길에서 다가온 인연이었다. 같은 동네에서 밥을 얻어먹던 고양이였으나, 허리에 올무가 감겨 힘겹게 구조되었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긴 시간이 이어졌고, 구조자와 작가님이 함께 돌보는 지난한 날들이 겹겹이 쌓였다. 털빛이 제 모습을 되찾아갈 즈음, 무무는 작가님의 품으로 들어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카페의 풍경에 녹아 있던 삼월이, 지금은 가족의 품에서 새로운 하루를 살아간다


시간은 흘러 카페 요요무문의 문은 닫혔다. 공백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고양이들은 저마다의 영역을 찾아 흩어졌다. 지금은 작가님의 작업실이 되었으나, 오래 머물던 숨결은 여전히 계단과 창가, 발코니에 고요히 배어 있다. 오랜 친구를 떠나보낼 때처럼 그 앞을 지날 때면 그리움이 살며시 깃든다.

오래된 인연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에, 언젠가 다시 고양이들의 발걸음이 문 앞을 스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순간, 나 또한 그리운 얼굴과 눈을 맞추게 될지 모른다.

사라지지 않은 따스한 기억처럼, 고양이의 발길은 오늘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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