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고양이들이 자라난 곳에서 사장님이 준비한 다음 계절
같은 마당, 같은 계절.
이곳에서 고양이 모녀는 새 생명을 품었고, 사람들은 조용히 곁을 지켰습니다.
[이전 편 읽기: 백만 불짜리 고양이 산후조리원]
엄마 품에서 젖을 빨며 치맛자락을 타고 놀던 고양이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마주했던 작은 존재들이 짧은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땐, 말끔한 청소년의 얼굴로 베란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정문으로 들어서면, 거실을 가로지른 베란다가 길게 펼쳐진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그 공간은 고양이들의 놀이터이자, 낮잠을 즐기는 온실이다. 아이들은 낮은 턱 위에 느긋이 누워 햇살을 만끽하고, 맞은편 지붕으로 가볍게 몸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은 담장 너머로 세상을 내려다보곤 했다. 멀리서 바람이 불어오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바다 내음을 삼키는 듯한 표정으로.
그러던 어느 날, 그 베란다에 낯선 풍경이 등장해 있었다.
단단한 주황색 플라스틱 테왁. 마치 해녀들이 바다 위에 띄우는 부표 같았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부표가 아니었다. 누군가 둥근 테왁을 자르고, 안쪽에 초록빛 그물망을 팽팽하게 꿰어 넣어, 고양이 한 마리가 넉넉히 누울 수 있는 해먹을 만들어 놓았다.
해먹을 살피고 있을 무렵, 사장님이 베란다로 나와 말을 건네셨다.
“그거요, 제가 만들었어요. 애들이 자꾸 높은 데 올라가서 위험하잖아요. 뭐라도 해줘야겠다 싶더라고요.”
그 말투는 담담했지만, 말끝에는 어딘가 들뜨고 기쁜 기운이 감돌았다. 그 구조물에 대해 설명하는 사장님의 목소리는 자랑스러움으로 빛났고, 덕분에 나는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디서 재료를 구했는지, 어떻게 꿰맸는지, 손은 안 다쳤는지. 설명은 계속 이어졌고, 이야기를 듣는 내내 따뜻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 구조물은 단단한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고양이들은 그 해먹 위에 조심스레 올라가 몸을 말고 잠들었다. 어떤 아이는 앞발을 베개처럼 턱 밑에 대고, 또 어떤 아이는 가장자리에 머리를 걸친 채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해먹은 살짝살짝 흔들렸고, 그 미세한 진동은 마치 파도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고양이들은 사람의 세상이 남겨놓은 단단한 가장자리 대신, 오롯이 자신들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 위에 누워 햇살을 받는다. 언젠가 치마 자락에서 놀던 아이들이, 지금은 사장님의 손으로 만들어진 ‘테왁 해먹’ 위에서 꿈을 꾼다. 그렇게 베란다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자라난다.
그것은 발명이자 기억이고,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 놓인 가장 다정한 구조물이었다.
내가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해먹은 어느새 고양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마리는 해먹에 매달린 끈을 물고 장난치듯 몸을 흔들었고, 또 다른 두 아이는 해먹 위에 나란히 누운 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치맛자락과 슬리퍼 위에서 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해먹 위에 앉아 세상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잠시 후, 사장님이 손에 낚싯대 장난감을 들고 베란다로 나왔다.
“이거, 작가님이 준 거잖아요.”
말과 함께 장난감 끝을 흔들기 시작하자, 구경하던 고양이들이 하나둘씩 달려들었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타이밍을 재던 아이들은, 줄이 휙 소리를 내며 움직이자 동시에 점프! 핑크 젤리를 활짝 펼친 앞발이 허공을 가르며 솟구쳤고, 사장님은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장난감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해먹 위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던 아이들까지 모두 뛰어들어, 마치 유치원 놀이시간처럼 왁자지껄한 풍경이 베란다에 펼쳐졌다.
그 순간, 이 베란다는 서로를 이어주는 작은 무대가 되었고,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자라나고 있었다.
식당 정문 앞에서는 고양이들이 손님을 맞이하곤 했다. 나무 테이블 위에 누워 손님을 구경하거나, 신발장 아래 몸을 숨긴 채 지나가는 발소리를 살폈다. 사장님은 마당고양이들이지만 모두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한 마리 한 마리 직접 뜨개질한 목걸이를 걸어주셨다.
간식을 받아먹는 솜씨도 제법 능숙해져, 어떤 아이는 무릎 위에 앞발을 올린 채 맛을 보기도 했다. 그 풍경은 마치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가족처럼 정겨웠다.
아이들은 햇살을 마시며 뛰놀았고, 테왁 위에서는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마당은 아이들이 자라는 놀이터이자, 다정한 눈빛과 손길이 오가는 쉼터였다.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고, 사장님은 그 아이들을 위해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계셨다.
※ 이 이야기는 제주 **‘판포미인’**을 배경으로 쓰였습니다.
고양이들과 마당을 나누는 이 식당의 따뜻한 일상은 인스타그램 @panpomiin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