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찌개에 밥 비벼주는 할머니

콩 한 쪽도 나누면 사랑이라옹. 고양이들도 그 마음 안다냥!

by 할망

여름의 어느 날, 나는 푸르른 녹차밭 정원에 발을 내디뎠다. 자연의 품속에 아늑히 안긴 그곳은 향긋한 차 한 잔을 음미하려는 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함께 온 래오 엄마는 이 정원이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곳이라고 했다. 녹차밭 어딘가에서 고양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정원에 도착하자, 저 멀리 한라산을 배경 삼아 사방으로 펼쳐진 녹음 속에 한 채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로 솟은 나무 길을 따라 오르면 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 거야."라는 래오 엄마의 말에, 당장이라도 뛰어오르고 싶어졌다.

녹차밭 어딘가, 고양이들이 숨어 있다.


건물 앞에 다다르자, 입구에서는 차를 마시고 나오는 손님들과 들어가는 이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그 사이로 뒤편에서 꼬마 아이와 아기 고양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이 보였다. 고양이와 함께 있는 아이들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진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기 고양이들이 프라이팬에 머리를 들이밀고 킁킁거리고 있었다. '아, 아가들 밥 먹는 시간이구나!' 생각하며 들여다보니, 사료 대신 찌개 양념과 고추 두 조각이 남아 있었다. 당황한 나는 본능적으로 “아가야, 안 돼!”라고 외치며 프라이팬을 밀어두고, 가방에서 사료통을 꺼내 고양이들에게 냄새부터 맡게 했다.

생선찌개에 비벼주신 밥그릇찌개 국물 자취만 남은 빈 프라이팬, 아깽이들에겐 여전히 밥그릇이었다.


휴대용 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자, 고양이들은 허겁지겁 달려들어 먹기 시작했다. 세 마리가 작은 그릇에 머리를 파묻을 때마다 사료가 튀어나왔고, 마치 오늘의 첫 끼를 먹는 듯 정신없이 먹는 모습에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그때, 어미로 보이는 성묘 한 마리가 조심스레 다가와 사료 냄새만 맡고는 뒤에서 아기들을 지켜보았다. 꼬리를 보니 암컷이었다. 맛있는 건 새끼부터 먹이려는 엄마의 마음은 사람이나 고양이나 다르지 않았다.

밥그릇 하나에 머리 싸움이 벌어졌다.
사료를 나누는 아기들 곁에, 마음을 나누는 어미의 시선이 머문다.


잠시 후, 꼬마 아이가 휴대전화를 들고 돌아와 고양이들이 먹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조심스레 다가가 집게손가락으로 아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에서, 동물을 대하는 예쁜 마음씨가 느껴졌다.

조심스레 내민 손끝에서, 고양이와 아이의 마음이 닿았다.


고등어와 치즈 고양이가 배를 채우고 물러나자, 머리싸움에서 밀렸던 흰 고양이가 그릇을 차지하고 먹기 시작했다. 어미 고양이는 여전히 뒤에서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작은 그릇에 앞발까지 담고 허겁지겁 먹는 아기를 보며, 어미는 아마 '오늘은 젖을 안 먹여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발을 그릇에 담근 서열 막내, 허기를 견디며 조용히 밥을 삼킨다.


차 안에서 휴대용 그릇 하나를 더 가져와 사료를 담아주자, 그제야 어미 고양이도 다가와 조심스레 식사를 시작했다.

배불리 먹는 아기들 곁에서, 비로소 마음 놓고 밥을 먹는 어미 고양이


고양이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차를 주문하러 갔던 래오 엄마가 다가와 말했다. “이제 차 한잔 하시지요!” “고양이들 더 보고 싶은데, 테이크아웃 안 되나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지금 안 들어가면 한 소리 들을 것 같았다.

“먹고 나와서 또 보면 되지!”라며 웃는 래오 엄마는 예전 직장에서 만난 3살 위 언니다. 래오는 내가 입양 보낸 고양이로, 래오 엄마가 제주집을 비울 때면 내가 입양 A/S 차원에서 래오를 돌보곤 한다. 사실 고양이 핑계 아니어도 언제든 내게 잠자리를 내어주는 고마운 언니다.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차향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큰 창 너머로 보이는 녹차밭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고양이가 없는 곳이었다면 그 풍경 속에서 여유롭게 사색에 잠길 수 있었겠지만, 내 마음은 이미 정원 바깥으로 가 있었다. 내 마음을 아는 듯 래오 엄마가 말했다. “책 보고 있을게. 고양이들이랑 놀다 와.”


찻집과 붙어 있는 뒷건물은 살림집처럼 보였다. 문을 나서니 아기 고양이들이 문 앞에 놓인 슬리퍼 위에 앉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학생이 치즈 고양이를 조심스레 쓰다듬었고, 고양이는 도망가지 않았다. 사람 손에 익숙한 모습에서 이곳 사장님의 애정 어린 보살핌이 느껴졌다.

두 녀석은 슬리퍼에 열중했지만, 고등어 아기만 멀뚱히 앉아 있어 마따따비를 던져주었다. 고양이는 처음 보는 듯한 표정으로 냄새를 맡고 앞발로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슬리퍼 위에 앉아 햇살을 즐기던 아이들, 낯선 손길에도 마다않고 놀이를 받아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학생이 마따따비를 집어 들고 고등어 고양이에게 장난을 걸었다. 고양이들을 위해 챙겨온 마따따비는 이번에도 합격이었다.

그때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리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신발을 찾고 계셨다. 혹시 고양이들이 슬리퍼를 점령한 걸 보시고 화내시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내 인사는 기우로 끝났다.

“허허, 이 녀석들 신났네! 뭐가 그리 재밌을까?”

웃음을 머금은 할아버님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우리 양이는 어디 갔지? 덩치 큰 흰 고양이 못 봤어요?”

“아뇨, 아직 못 봤어요.”

“우리 양이가 여기 고양이들 다 데려온 거예요.”

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흰 고양이가 가족을 데리고 온 사연에 귀가 쫑긋해졌다. 할아버님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어느 날 흰 고양이 한 마리가 홀연히 찾아와 밥을 주기 시작했고, 며칠 뒤엔 아기 고양이들과 어미 고양이까지 데려왔다고 하셨다. “이 고등어 고양이가 양이 부인인가요?” 하고 묻자, “맞아요! 마을에 다녀오더니 가족을 데려왔어요. 같이 살자고 데려온 거죠. 살게 해야죠!” 하시며 웃으셨다.

할머니께서는 “우리 양이가 얼마나 의젓한지 몰라요. 아마 저기 녹차밭 어디에선가 자고 있을 거예요. 꼭 만나고 가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두 분의 얼굴엔 자식 자랑처럼 다정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아빠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풍경과 따뜻한 마음이 있는 곳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이곳이라면 다정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늘 음식을 챙겨주니, 아이들이 굶지 않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앞에 놓였던 프라이팬엔 생선 가시와 익은 고추, 붉은 양념이 남아 있었다. 아마 오늘 점심엔 생선찌개에 밥을 비벼주셨던 것 같다. 처음엔 사람 음식을 고양이에게 준다는 사실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오래전엔 마당에서 개와 고양이를 키우며, 남은 음식을 나눠 먹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시절을 살아온 어르신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고양이들과 공존하고 계셨다.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 음식을 챙겨주는 그 마음이 따뜻하고 고마웠다.

문 옆에 놓인 고풍스러운 2단 장식장은 신발장으로 쓰이고 있었고, 그 옆의 오래된 갈색 소파 위엔 고등어와 치즈 아기 고양이가 잠들어 있었다. 배부르게 먹고, 마음 놓고 낮잠을 청하는 모습에서 이 집 앞이 얼마나 편안한 공간인지 느껴졌다. 나는 차 안에 보관해둔 종이 숨숨집을 꺼내 문 앞에 놓아주었고, 고양이들은 곧장 들어가 누웠다. 시골 고양이도 종이 상자는 좋아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낮잠이 깃든 마당의 평화, 배부른 고양이들이 꿈꾸는 시간


아쉽게도 아빠 고양이 양이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기 고양이들이 배불리 먹는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서려다, 프라이팬 속 남은 고추와 가시를 치우고 사료를 가득 부어주었다.

“친구들, 잘 지내고 있으라옹. 다음엔 더 맛있는 사료 들고 올게요.”

약속처럼 속삭이며 자리를 떠났다.

뒤돌아보는 고양이들 곁에, 다정한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예전에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 집사』의 타이틀 애니메이션에 그림 작업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 영화 속 청사포 마을 할머니와 고양이들의 공존 장면이 깊이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고양이들을 특별히 돌보진 않았지만, 마당을 내어주고, 가끔 남은 음식을 무심코 던져주는 그 일상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고양이에게 사료를 챙겨주는 것만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고양이가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고,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양이를 향한 깊은 애정이며, 진짜 공존의 방식이 아닐까.

영화 ‘고양이 집사’에 나오는 장면, 마당과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한 진짜 공존의 풍경


오늘 녹차 정원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마음이 바로 그러했다. 이 아름다운 기억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할머니께서 꼭 만나고 가라고 하셨던 아빠 고양이 양이도, 아기 고양이들과의 약속도,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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