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위 오아시스

간판 없는 고양이 맛집

by 할망

고양이 손님만을 위한 특별한 식당이 있다. 하지만 그 식당은, 아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는 않다.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고,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숨어 있다. 사람 식당에 닿기 전, 그보다 먼저 만나는 고양이 식당은 늘 낯선 기척에 귀를 세우고, 도망칠 길을 염두에 두는 고양이들에게 마음속 두려움을 이겨낸 용기의 증표가 된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고양이들은 그 계단을 올라 마침내 갈증을 달래고 배를 채웠다.

고양이는 오늘도 계단을 오른다. 망설임 끝에 내딛은 한 걸음이, 그곳으로 향하는 용기가 된다.


제주를 여행하며 동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곳을 찾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고양이를 돌보는 현지 분들과의 인연도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알게 된 분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나 찻집엔 어김없이 고양이들이 머물고 있었고, 그분들의 SNS를 통해 본 공간들은 ‘다음 여행에 꼭 들를 곳’이라며 하나둘 내 리스트에 저장되었다. 이 식당도, 그렇게 마음에 저장된 장소 중 하나였다.


코로나 시기, 전국의 자영업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제주는 유독 더 깊은 고요에 잠겨 있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고 외출마저 조심스러웠던 시절. 사람들로 북적이던 카페와 식당은 텅 비었고, 고양이에게 밥을 챙기던 공간들도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고양이 식당이야말로 잘 버텨야 할 곳인데, 조용히 응원하는 마음뿐이었다. 그 무렵,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접근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고양이 부적 그림을 그렸다. 부적을 선물 받은 매장의 사진을 SNS에 공유하자, 이를 본 사람들이 하나둘 연락을 주었다. “혹시 저도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

내 그림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있을까. 작은 이벤트를 열었고, 이 식당도 신청자 중 하나였다. 비행기를 탈 수 없던 시절. 부적을 여러 장 그리고, 손그림 파우치에 담아 마음을 실어 보냈다. 정성도 사심도 가득 담아서.

작은 부적에 담긴 진심이, 고양이 식당을 향한 조용한 응원이 되었다.


마음만이라도 먼저 닿기를 바라며 보낸 부적에, 사장님은 “부적, 딱 붙여놓고 이 행복을 손님들과 함께 나눌게요”라며 따뜻한 인사를 전해주셨다. 그러고는 “다음에 제주에 오시면 꼭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어요”라고 덧붙이셨다. 나는 웃으며 “고양이 출몰 시간 알려주신다면, 그게 제게는 더 큰 선물이에요”라고 답했다.

잠시 후, 사장님은 한 장의 사진을 보내주셨다. 검정, 갈색, 흰색이 정교하게 배인 털은 마치 명품 옷을 걸친 듯 고급스럽고 우아했다. 단정한 눈빛에는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고, 주변의 공기마저 다잡는 듯한 기품에, 나는 단번에 ‘이곳의 여왕’이라 느꼈다. 이름은 ‘오스칼’이었다.

명품 옷을 걸친 듯한 기품, 단번에 느껴졌다. 이곳의 여왕, 오스칼


오스칼은 “매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 가장 먼저 출근해요. 그 시간대에 다섯 마리 정도가 찾아와요.” 사장님은 조심스럽게 덧붙이셨다. “오스칼이 출산한 지 두 달 반쯤 되었는데, 수술 시기일까요?”

“아기 고양이들이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면, 지금이 수술을 서둘러야 할 때예요.”

그러자 사장님은 “아가들은 아직 할 때는 아니죠?”라고 되물으셨다. 출산 시기를 기억하고, 돌봄을 고민하는 그 따뜻한 책임감이 뭉클하게 전해졌다.


그해 가을, 유기동물 비영리단체 ‘프랜들리핸즈’에서 고양이 급식소를 무료로 나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방파제 고양이들을 위해 신청했고, 제주 곳곳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분들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안내문이 부착된 정식 급식소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고양이를 돌보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높이고,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에도 따뜻한 공감을 불러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 식당에도 고양이 식당이 차려졌다.

이 식당에도 마침내 고양이 식당이 차려졌다.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나도 고양이들을 만나러 제주로 향했다. 평대리에 있는 그 식당을 찾아가는 길은 조용한 시골 마을을 산책하듯 평화롭고 정겨웠다. 돌담 너머 감귤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엔 햇살과 흙냄새가 스며 있었고, 나뭇잎들은 바람을 따라 부드럽게 속삭였다.

언덕 위, 초록 기와지붕을 인 아담한 건물이 숲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평범한 풍경 속에 작은 마법 하나가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테라스에 앉아 햇살을 받던 고양이를 보는 순간, 그곳은 고양이들이 오르내리는 작은 성처럼 보였다.

초록 기와 위에 고양이들의 시간이 내려앉은 집


계단 아래에 다다르자, 건물 옆에서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살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깜짝 놀란 듯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 고양이는, 곧 담장 너머로 몸을 숨겼다. 사진으로만 보던 여왕님, 오스칼이었다. 중성화 수술을 잘 마치고도 특유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지닌 채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이 반가웠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조용히 말을 걸었다.

“오스칼, 안녕. 너는 날 모르겠지만, 나는 널 알고 있다옹. 식당에 가면 맛있는 간식 줄게, 같이 가볼래?”

풀잎 너머로 마주한 눈빛, 그 낯선 순간에 익숙한 마음이 스쳤다.


혼잣말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오스칼은 내 말을 알아들은 듯 잠시 멈춰 서서 내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몇 걸음 뒤, 뒤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발끝을 들고 살금살금 계단을 오르자, 테라스에 앉아 있던 젖소 무늬 고양이는 경계하듯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또 다른 고양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개를 돌리자, 오스칼도 어느새 계단 위로 올라와 앉아 있었다. 도망가지 않아도 될 사람이라 판단한 듯, 햇살 속에서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햇살 속으로 함께 오른 오스칼


계단을 다 올라서면 정면에 고양이 급식소가 보이고, 그 옆에는 층층이 놓인 나무 선반이 있다. 식당 사장님이 고양이들을 위해 직접 만든 캣타워다. 고양이들이 햇살과 바람을 만끽하며 잠시 눈을 붙이거나, 조용히 세상을 내려다보는 감시탑이자 쉼터가 되어주는 공간. 그 위에 올라앉은 고양이들은 계단 아래를 응시하며, 낯선 발소리와 익숙한 냄새를 구분하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테라스 너머로는 푸른 하늘과 바다, 색색의 지붕과 초록의 나무들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 앉아 있는 고양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낯설고 두려운 세상을 견디고, 다시 이곳까지 올라온 고양이들을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계단은, 용기를 낸 고양이들만이 아니라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도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길목일지 모른다.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은은한 밥 냄새가 퍼지는 주방이 보이고 창 너머마다 자연이 액자처럼 담겨 있다. 바다를 향해 열린 문 밖으로 고양이들이 급식소를 오가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따뜻한 밥을 앞에 두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천천히 음미한다. 바다 뷰 한 번, 논밭 뷰 한 번, 거기에 고양이 뷰까지 더해지면, 마음까지 포근해지는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즐기고 있자니, 문틈 사이로 고양이의 귀가 삐죽 보인다.

“거기, 냄새 좋은 거 뭐 먹고 있는 거냐옹?”

문 틈으로 밥 냄새 따라온 손님, ‘저도 한 상 차려주라옹.


식당도 쉬어갈 시간, 사장님과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이곳에 급식소가 생겼을 땐, 고양이들도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고 한다. 밥 냄새를 맡고도 망설이다가, 주변을 수없이 살핀 끝에 간신히 발을 들였고, 식당 문이 열기 전 또는 닫힌 늦은 시간에 조심스레 오르던 날들도 있었다. 그러다 조금씩, 낯선 이에게도 등을 보이며 앉아 있을 만큼 이곳의 공기와 사장님의 존재를 믿게 된 고양이들이 생겨났다.


왜 하필 이 높은 곳에 고양이 식당을 만든 걸까. 마을 사람들 중에는 고양이를 반기지 않는 분들도 있었고, 그들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고양이들이 안심하고 머무를 수 있는 장소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단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한다.


오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밥자리를 찾아오는 고양이들이 늘 신기했다. 동네 고양이들끼리 소문을 낸 걸까. 마치 간판 없는 맛집을 찾아가듯, 고양이들은 하늘에서 퍼지는 맛있는 냄새를 따라 이 계단을 오른다.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무언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테라스에서 아래 건물 지붕으로 바로 도망갈 수 있다는 것도 고양이들에겐 중요한 이유였다. 실제로 식당을 오가던 고양이들은 어느새 그 루트를 익혔고, 놀라는 일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테라스 난간을 딛고 지붕 위로 미끄러지듯 숨어버렸다.

지붕 위의 루트, 고양이들이 터득한 안전하고 조용한 길


그렇게 매일 같은 시간, 조심스러운 발걸음들이 계단을 오른다. 이곳은 더 이상 낯선 장소가 아니다.

계단을 오르기 전, 나무 문이 닫히면 이곳은 고양이들만의 안전한 요새가 된다. 식당 영업시간이 끝난 뒤엔 사람의 발걸음 대신 고양이들만의 낮은 발소리로 채워진다. 그 시간의 계단은 더 이상 용기를 내야만 오를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맛있는 시간이 기다리는 길, 오아시스를 향해


친구들과 함께 오르락내리락 뛰노는 캣타워가 되고, 하루의 피로를 녹이는 햇살 침대가 된다. 누가 올라올까 걱정하며 식사하던 시간은 지나고, 마음 편히 밥을 먹고 테라스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는 그 순간, 이곳은 그야말로 고양이들만의 천국이 된다.

사람의 발자국이 멈춘 뒤, 고양이들만의 시간이 흐른다.


어떤 이는 말한다. 저 계단 위 식당은 찾아가기 불편한 곳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낯설고 험한 길 끝에 오직 용기 있는 발걸음만이 닿을 수 있는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을 안다. 고양이들이 조심스레 발을 디딘 이곳, 계단 위의 작은 식당은 그렇게 신뢰를 쌓아왔다. 매일 반복되는 식사 시간,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식당지기의 따뜻한 눈 맞춤이 이 장소를 지켜왔다. 오늘도 그 용기 있는 고양이 손님들이, 바람 부는 저녁 계단을 따라 조용히 올라온다. 그들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도록, 이 오아시스는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마다의 용기로, 고양이들은 오늘도 오아시스를 향해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그 계단 위 오아시스에서, 고양이들과의 인연은 천천히 스며들었다.
익숙한 얼굴과 이름들,
그 이름 안에 깃든 이야기들이 마음에 머물기 시작했다.


고양이들과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델이의 이야기는 2부 〈계단 위의 고양이 성, 마델의 자리〉에서 계속됩니다.

https://brunch.co.kr/@halmangcat/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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