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속의 섬, 가파도엔 고양이 식당이 몇 개일까요?
가파도에 고양이 식당이 무려 열일곱 곳이나 생기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섬의 고양이들은 굶주림과 외면 속에서 하루를 애처롭게 견디고 있었다. 관광객이 던져주는 음식 부스러기와 몇몇 주민의 온정에 기대어 겨우 숨을 이어가던 아이들. 그런 고양이들에게 ‘급식소’가 생겼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도 기적처럼 들렸다. 이듬해에는 급식소를 돌보는 공공근로 어르신까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따뜻한 풍경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꼭 한 번,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파도 프로젝트를 이끈 개인 활동가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고양이 급식소와, 그곳에 사료를 나르는 어르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가파도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나는 가장 먼저 어르신이 계신다는 스낵바로 향했다. 그곳은 병원 치료를 받고 돌아온 고양이 ‘엠에스’가 주로 머무는 장소이기도 하다. 얼마 전, 활동가들이 엠에스를 구조해 배를 타고 치료하러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작은 마음을 보탰다. 건강해진 엠에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참 기쁠 것 같았다. 숨숨집 박스와 간식, 장난감도 한가득 챙겨 왔다. 작은 상자 안에는 내 마음도 함께 담겨 있었다.
스낵바 앞에 도착하자, “나는 이곳의 마스코트, 엠에스라옹!”하고 외치듯 입구에 떡 하니 서 있는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사진으로 이미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마주하니 더 귀엽고 사랑스러워 절로 웃음이 났다. 흰 털 위에 고르게 퍼진 치즈색 무늬, 이마를 덮은 풍성한 노란 숱이 인상적이었다. 두 눈은 살짝 모였고, 길게 뻗은 콧등 아래 오른쪽 인중에 박힌 까만 점 하나가 엠에스만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어딘가 원숭이를 닮은 듯한 장난기 어린 외모랄까. 한층 더 웃음이 났던 건, 어르신이 엠에스의 얼굴에 손수 눈썹과 왕점을 그려주셨던 사진을 봤기 때문이다. 그 익살맞은 모습이 머릿속에서 자꾸 겹쳐 보였다. 대부분의 고양이라면 그런 장난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엠에스는 어르신의 애정을 유쾌히 받아주는 성격 좋은 고양이였다.
“엠에스야, 건강해져서 정말 다행이야. 손님들 반갑게 맞아줘서 고맙고, 어르신 은혜도 꼭 갚으라냥”
“걱정은 붙들어매라냥! 우리 할망은 내가 알아서 잘 모신다옹. 손님이나 매출 팍팍 올려주고 가라냥!”
엠에스와 좀 더 놀고 싶었지만, 어르신께 먼저 인사를 드려야 했다. “잠깐만 기다려, 언니가 까까 사 왔다옹-”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엠에스의 요청에 따라 뿔소라 버터구이와 청보리어묵, 시원한 음료를 주문했다. 어르신이 음식을 내어주시기에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고양이들 밥 주시는 어르신 맞으시죠? 가파도에 봉사하러 오는 지은 님께 말씀 듣고 찾아왔어요.”
“아 지은 씨! 맞아요. 내가 하루에 두 번 챙겨줘. 아침에도 주고 왔지. 내가 가면 고양이들이 줄줄 따라온다니까. 밥 달라고.”
“엠에스는 이제 건강하죠?”
“사람들 덕분에 치료도 잘 받고, 이제는 아주 건강해요.”
“저도 엠에스 소식 듣고 작은 마음 보탰어요. 이건 엠에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었어요.”
“아이고, 착한 언니구나! 고마워요.”
지은님은 가파도프로젝트를 위해 끝까지 애써준 분이다. 바자회 수익금으로 사료를 기부하기 위해 연락드리면서, 이 섬의 소식을 종종 나누곤 했다. 어르신은 환하게 웃으며 가게 안쪽을 향해 정겹게 외치셨다.
“엠에스! 이리 와봐. 언니가 선물도 가져왔네. 엠에스는 좋겠다~”
문 앞을 서성이던 엠에스는 어느새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포근한 노란 담요 위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손님 셋을 영업했으니, 오늘 밥값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 걸까. 그 옆에는 엠에스를 꼭 닮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어르신께서 “엄마 에리카야”라며 슬며시 웃으며 소개해주셨다. 엠에스의 독특한 앞머리는 그쪽 계보에서 물려받은 유산이었던 셈이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엠에스가 벌떡 일어나 가게 밖으로 따라 나왔다. 간식 선물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봉투에 코를 킁킁 대며 “어서 꺼내보라냥! 야옹!” 하고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간식을 꺼내주자, 바로 먹고는 만족한 듯 봉투 곁에 얌전히 앉아 꼬리를 감았다.
자연스레 이어진 대화 속에서 어르신은 고양이들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한때는 참 안타까운 아이들이었다며, 굶주리고 병든 채 떠도는 고양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고양이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고, 배고프지 않게 밥을 줄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기쁘다고 하셨다.
“이제는 배고프면 언제든 먹으러 갈 급식소가 있고, 어르신께서 늘 챙겨주시니 걱정 없겠어요. 어르신도 늘 건강하시고, 아이들 계속 잘 부탁드려요.”
“응. 내가 고양이들을 정말 좋아해.”
그 말과 함께 어르신의 고양이 자랑이 이어졌다.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며, 아이들의 성격이며 식성까지 줄줄이 설명해 주셨다. 고양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이라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고, 이런 분이 공공근로를 맡고 계시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고양이 이야기는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을 듯했지만, 나는 당일치기 방문이었다. 더 머물다가는 급식소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배를 타야 할 것 같아 조심스레 인사를 드렸다.
“그럼 저는 고양이들 급식소 좀 둘러보고 올게요.”
어르신은 급식소가 있는 곳들을 친절하고 자랑스럽게 알려주셨다. 근무 중이셔서 직접 사료를 주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어르신이 사료를 배달하는 모습 뒤로 고양이들이 뒤를 줄줄 따라가는 정겨운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나는 그 따뜻한 상상을 품고, 천천히 급식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오니, 부드러운 햇살이 길 위에 내려앉고, 작은 바람이 살랑살랑 발끝을 간질였다. 지은님이 보내준 열일곱 곳의 고양이 급식소 위치를 살펴보니, 대부분 섬을 가로지르는 중앙길을 따라 자리하고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니, 고양이 벽화가 그려진 기념품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 마당에는 햇살 한가운데 급식소 하나가 살포시 모습을 드러냈다. 옆에는 치즈 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인형처럼 얌전히 앉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오가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꼭 벽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풍경이었다.
“손님! 기념품도 구경하고, 가방 속 간식도 내놓고 가라옹!” 장난기 어린 표정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급식소 덕분에 배는 든든하겠지만,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간식 한두 개쯤은 너끈히 받아낸 듯한 표정이었다. 갈 길이 바빠 마따따비 하나를 슬그머니 놓아두고는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이곳에 다시 들러, 상점도 둘러보고, 고양이 식당에 드나드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간식도 정성껏 내어주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넓게 펼쳐진 청보리밭을 지나 조금 더 걷자, ‘전교생이 세 명뿐’이라는 가파초등학교가 나타났다. 그 너머, 보건소 앞에는 또 다른 급식소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엔 정해진 당번이라도 있는 걸까. 치즈 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급식소 옆에 몸을 기대고 앉아, 마치 사료를 지키는 듯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누가 훔쳐갈까 봐 경계라도 하는 듯, 작지만 든든한 경비원 같은 모습이었다.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밭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 푸른 물결은 말없이 속삭이는 음악처럼, 조용히 마음을 감싸 안았다.
상동에서 하동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갈수록 식당과 공방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초입에 자리한 모자 상점 안으로는 손님들 사이를 익숙하게 헤치고 들어가는 고양이 손님이 눈에 띄었다. 목에 작은 목걸이를 두른 걸 보니, 이곳에 살림을 차린 고양이이거나, 상점의 ‘영업부장’쯤 되는 모양이었다.
상점마다 고양이 영업부장이 하나씩 배치된 듯한 풍경에, 왠지 모르게 이 섬에 자주 오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스쳤다.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상점과 주택가 사이 골목 어딘가에도 급식소가 조용히 숨어 있겠지만, 배 시간이 촉박해 큰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중앙길 끝자락에 이르자, 주황색과 초록색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너머로는 방파제와 바다가 겹치며, 벽화 속 가파도의 모습이 실제 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그 아름다움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는데, 그 풍경 속을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바다, 지붕, 벽화, 그리고 고양이. 모든 것이 고요한 조화를 이루는 순간.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벅참이 잔잔한 물결처럼 밀려와 가슴 깊숙이 번져갔다.
길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고양이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골목 안으로 사라지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따라가 보니, 이곳이야말로 가파도 고양이들의 ‘핫플레이스’였다. 치즈 무늬 다섯 마리, 삼색 고양이 한 마리까지 총 여섯 마리가 모임이라도 있는 듯 도란도란 모여 있었다. 외모도 하나같이 출중했다.
그중에서도 진한 아이라인을 그린 듯한 고양이가 맨 앞에 서서, “간식 가방을 내놓으라옹!” 하듯 야옹야옹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 눈빛에 홀리듯 잠시 넋을 놓았다. 지금껏 만난 고양이들 중 단연 가장 아름다운 아이였다. 어쩐지 그룹 뉴진스의 혜린을 떠올리게 하는, 여왕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 여왕님을 중심으로 다른 고양이들까지 “야옹-야옹-” 하고 합창을 시작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얼른 가방을 열고 간식을 조공하듯 내어놓았다. 마치 고양이 버전의 패션 화보 현장 같달까. 모델 포스를 풍기는 고양이들이 햇살 아래에서 각자의 포즈를 뽐내고 있었다. 가방은 털렸지만, 기분은 이상하리만큼 좋았다. 오늘 남은 시간은 이 아이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길 한쪽에 철퍼덕 주저앉아 여왕님의 자태를 조심스레 카메라에 담았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털, 도도한 자세, 여유로운 눈빛까지 모든 것이 한 장면처럼 완벽했다.
20분쯤 지났을까. 이제 슬슬 배를 타러 갈 시간이었다. 일어나려는 찰나, 바로 옆 나무 아래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급식소가 있었다. 미모에 넋을 잃은 나머지, 급식소가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주택가가 밀집된 구역이라 그런지, 고양이들도 이 근처에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듯했다.
급식소를 둘러보는 내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과 마음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작은 섬에서 마주한 고양이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민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가슴을 오래도록 데워주었다.
다음에는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며, 고요해진 섬의 풍경 속에서 고양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이 사료를 배달하는 모습도 꼭 눈에 담게 되기를, 조용히 바라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관광객이 드나드는 이 작은 섬에서, 고양이들이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더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갔다. 경계심 어린 눈빛을 보내던 고양이들이 많았지만, 마지막 골목에서 마주친 한 아이 앞에서 마음이 슬그머니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마지막 배 시간에 임박해서야 겨우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가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스낵바에 들렀다. 엠에스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어르신은 조용히 마감을 준비하고 계셨다.
“멋진 급식소, 잘 둘러보고 왔어요. 예쁜 고양이들도 많이 만났는데… 아쉽네요. 다음엔 꼭 1박 2일로 올게요.”
“고양이들이 좋아했을 거야. 애들 보러 자주 와요.”
말씀과 함께 어르신은 전화번호를 건네주셨다. 좋은 숙소를 알아봐 주겠다고, 꼭 연락하라고 하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어르신은 본디 바다에서 삶을 일구던 해녀셨단다. 지금도 때때로 물질을 나가신다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르신이 더욱 단단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돌아가는 배 위에서, 나는 가파도의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바다 너머로 점점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던 그 자리에, 이렇게 많은 고양이 급식소가 생기고, 아이들이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닐까.
오늘 만난 고양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아. 친구들, 또 만나자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