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사는 섬, 함께 살아가요.
제주 남쪽 바다 끝자락, 마치 가오리 한 마리가 바다 위에 몸을 눕힌 듯한 작은 섬이 있다. 나지막한 평지로 이루어진 이 섬에서는 바다 건너 제주 본섬과 마라도, 멀리 한라산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봄이면 푸르른 청보리가 섬을 가득 메우고, 바람결 따라 출렁이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섬을 ‘청보리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섬의 이름은 가파도다.
요즘 가파도는 ‘고양이섬’이라는 별칭이 더 익숙할 만큼 풍경이 달라졌다. 섬에 사는 사람보다 고양이가 많고, 사람 손님을 맞는 식당보다 고양이 손님이 들르는 급식소, 이른바 ‘고양이 식당’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가뭄 끝에 내린 단비처럼 생겨난 고양이 식당은 고양이들에게 쉼터가 되어주었고, 섬은 점점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터전으로 변모해갔다.
섬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양이 식당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고양이들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담벼락 너머, 풀숲 사이, 나무 아래에서 조심스레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낯선 이를 바라본다.
마치 “어서 오세요. 여기는 고양이 섬 가파도라옹!” 하고 조용히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의 평화로운 공존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한때 가파도의 고양이들은 마을 사람들의 눈에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밭을 헤집고 다니며 작물을 망치거나, 발정기 울음소리와 영역 다툼으로 밤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굶주림에 지쳐 사람만 보면 울며 따라붙는 모습은,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길 위의 고양이들이 겪는 고단한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았던 이 섬에서는 그 풍경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을 뿐이다.
나는 2017년부터 제주 곳곳의 동네고양이를 사진으로 담고, 그림으로 그리고, ‘공존’을 주제로 전시와 SNS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묘한 집사’님을 통해 가파도의 고양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 섬에는 아픈 고양이가 많았고, 중성화 수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개체 수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생선을 망친다는 이유로 민원도 잦았다. 외면당한 채 구석에 몰린 고양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역 주민의 참여가 필수였지만, 가파도의 사정은 녹록지 않았다. 주민의 절반 이상은 장사를 위해 본섬에서 아침 배를 타고 들어왔다가 마지막 배로 나갔고, 섬에 남아 있는 이들 대부분은 고령의 어르신들이었다. 고양이에 대한 인식 역시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 상황을 외면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가파도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제주 본섬의 동물 보호 활동가들이 뜻을 모아 ‘가파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매주 배를 타고 섬을 찾은 그들은 고양이 한 마리, 한 마리를 보살피며 사람과 고양이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고양이 밥주지 마라", "다 데리고 나가라"는 말이 이어졌지만, 활동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나갔다. 사료 후원처를 연결하고, 서귀포 시청에 공공급식소 설치를 제안했으며, 섬으로 수의사를 초청해 중성화 수술도 추진했다. 그렇게 작지만 단단한 발걸음들이 하나씩 실현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서귀포시의 지원으로 가파도에 12곳의 공공 고양이 급식소가 설치되었고, 현재는 17곳으로 늘어났다. 고양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주민들의 배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을 어르신과 이장님, 어촌계장님의 협조가 이 아름다운 변화를 가능케 한 든든한 바탕이 되었다.
이 변화는 점점 더 큰 울림이 되어 퍼져나갔다. 사료를 후원하는 기업이 생기고, 매주 섬을 찾아 급식소를 청소하고 사료와 물을 채워주는 봉사단체도 생겨났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뜨지 않으면 고양이들이 다시 굶주리게 되는 문제가 생겼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공근로 사업이 추진되었다. 마침내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직접 고양이 급식소를 관리하게 되었고, 덕분에 고양이들은 꾸준히 사료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수의사들이 섬에 들어와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면서 민원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고양이들은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었고, 마을 길을 여유롭게 산책하며 관광객들을 반기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다니는 길목에 설치된 급식소는 특별히 예쁘게 제작되어, 섬을 찾은 이들에게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섬’이라는 인상을 남겨주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었고, 주민들의 시선도 부드러워졌다.
이렇게 가파도는 고양이와 사람이 공존하는 따뜻한 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 조용한 변화의 중심에는 이름 없이 묵묵히 헌신해온 개인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들의 진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풍경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방송을 통해 이 이야기가 전해졌고, 육지에 있는 나 역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얼마나 많은 갈등과 마음고생이 있었을지, 말없이 버텨낸 날들이 얼마나 길었을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풍경을 꼭 눈으로 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고, 그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응원을 보냈다. 바자회 수익금으로 사료를 보내고, 치료비를 후원하며 마음을 보탰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들도 후원에 동참해주었다. 아주 작고 조용한 손길들이었지만, 그 따뜻한 마음들이 활동가들과 고양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랐다.
나는 믿는다. 이곳에서의 공존이, 다른 지역에도 하나의 모델이 되어줄 것이라고. 그래서 꼭 직접 가파도를 방문해,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고양이들과 주민이 함께 만들어낸 조용한 기적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나는 그 섬으로 향했다.
해녀 어르신이 배달하는 가파도 고양이 식당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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