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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Sep 05. 2023

아쿠아로빅 좀 다녀올게.

오늘 에세이


새로운 일들을 만나며 나를 발견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쿠아로빅 : 물속에서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 체조




나이 오십, 지천명.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뜻으로 논어위정 편에 나오는 말이다.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진짜 오십이 넘고 보니 다시 생각하게 다. 공자의 말대로 젊어서 학문에 뜻을 세우고 나이가 들면서 하늘의 뜻을 알고 성인의 경지에 이룰 수 있다면 좋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면서도 뜻하지 않은  일들이 나타나 나를 즐겁게 해 주니 인생 살만하다. 우리 집 앞에 공공 수영장이 생긴 일도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삶 속에서 틈틈이 나를 놀라게 한다.      


요즘 새로 생기는 대단지 아파트에는 호텔처럼 조식 서비스도 있고 전망 좋은 테라스에 카페라든지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우아하게 브런치로 아침을 시작해서 가볍게 운동을 하고 동네 주민들과 테라스에서 멋진 도시풍경을 감상하며 차 한 잔을 마시면 어느덧 하루해가 지는 곳, 그곳이 요즘 유행하는 아파트의 풍경이려나.


나는 20년 가까이 되는 오래된 아파트에 산다. 우리 아파트도 튼튼하고 사는 데 불편함은 없다. 앞뒤로 불어오는 바람, 산책로, 맛있는 커피가게와 시립도서관도 있다. 그런데 번화가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발전이 더뎌서 사는 사람들은 어딘가로 탈출하고 싶어 하거나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아 재테크에는 실패했다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수영을 배우는 곳은 버스로 몇 정거장 가면 스포츠센터가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수영장은 교통이 불편하고 경쟁이 만만치 않아서 새벽에 줄을 서야 겨우 등록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공공수영장이 우리 집 앞에 생겼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나는 요즘 가끔, 햇볕 쨍쨍한 정오, 수영장으로 간다. 나이 오십이 되도록 해보지 않은 것이 많다. 체험해 보고 싶은 것들, 가보고 싶은 곳이 어쩜 이렇게 많나! 세상이 화려해지고 접근성이 쉬워진 것도 있지만 어렸을 때 미쳐, 보지 못한 세계가 하나씩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전부터 삐그덕거리는 무릎이 신경 쓰여 병원에 갔더니 관절 부위의 퇴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무릎 수술을 하거나 아파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수명은 길어지는데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걷는 것이 불편한 삶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이것저것 운동을 찾아보던 중에 관절을 유연하게 하고 튼튼하게 하는 아쿠아로빅을 해보기로 했다. 게다가 집 앞에 수영장이 있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실 수영을 해 보고 싶지만 얼굴이 물속에 잠길 때의 공포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일단 물과 친해지는 아쿠아로빅을 선택했다.

    

첫 시간은 일이 있어 참석을 못 하고 두 번째 시간에 처음으로 수영장으로 갔다. 수강 시간 2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한데 30분 전에 도착했더니 긴 줄이 늘어섰다. 아무것도 모르고 입장 카드를 기계 앞에 대니 반응이 없다. 줄을 선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한 사람이 가르쳐준다. 20분 전이 되어야 보관함 번호를 받아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두 보관함 번호를 받으려고 줄을 서있었던 것이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이제 이런 것에는 ‘죄송하다’는 말과 미소로 넘어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보관함에 옷을 넣고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샤워실로 가서 몸을 씻고 수영복을 입었다. 비누칠해야 수영복이 잘 들어간다고 누군가 설명을 해주며 어르신의 샤워를 도와준다. 비밀통로라도 찾는 탐정처럼 어딘지 보이지 않는 수영장 입구를 찾아 좁은 샤워실을 헤매다가 벽과 마주하고 다시 돌아서 반대편으로 오니 수영장 냄새가 난다.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전 수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는지라 벽에 기대 스트레칭을 해 본다. 정각 12시가 되어 텅 비어 잔잔해진 풀장을 둘러싼 사람들이 호각 소리에 맞추어 준비운동을 한다. 나도 열심히 따라 한다. 준비운동의 모습만은 능숙한 수영선수 같기만 하다. 그리고 물속으로 풍덩, 뒷줄에 서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목까지 차오르는 물 때문에 까치발을 하고 물속에 섰다. 다음에는 물이 조금 얕아 보이는 앞자리로 해야겠다.  트로트 음악에 맞추어 선생님의 동작을 보며 물속에서 팔, 다리를 움직여 본다. 비슷한 동작이 반복되면서 조금 지루하다 싶어 가끔 물속에 감춘 몸으로 다른 장난을 해본다. 우아하게 발레리나를 흉내 내보기도 한다. 거친 동작에서는 제법 숨이 차오른다. 몸을 물 밖으로 던져 점프를 할 때는 하늘을 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춤을 추는 것처럼 물살을 가른다.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뒤로 옆으로 몸을 돌린다.      


물속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몸을 느끼니 기분이 좋아진다. 수영복을 입고 바깥에 서 있을  때는 조금 부끄럽지만, 물속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몸을 꼿꼿이 세우면 나를 감싸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물속에서 팔다리가 다듬어지고 군살이 사라질지도 모를 희망을 품어본다. 운동이 쓰지 않던 근육 이곳저곳을 자극하듯이 이 모든 시간이 나도 알지 못했던 내 마음의 작은 조각들을 깨워 멋진 그림을 완성해 나가길. 끊임없는 호기심과 자유로운 심장에 귀 기울이며 물속을 유영하듯 나아가는 내가 사랑스럽다. 꿈꾸는 내가, 가려진 나를 계속 발견해 가며 꿈꾸기를 계속하는 내 모습이 좋다.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인간은 자신 속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고 니체가 한 말이 모를 것도 같고 알 것도 같으면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혼돈 속에서 태어났고 혼돈 속에서 춤을 추며 자신만의 발걸음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발짝 한 발짝 달에 발을 내딛는 우주인처럼 내 인생의 한 발짝이 아직 늦지 않았다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고, 멈추지 말자고 나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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