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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Sep 04. 2023

커피를 타는 마음

오늘 에세이



카페의 문이 열리지도 않았을 텐데 아침 8시부터 커피를 사러 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

조바심을 누르고 느린 발걸음으로 집을 나와 회전교차로로 간다. 횡단보도에 교통봉사를 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깃발을 들었다 내렸다 한다. 누군가 지나가다가 빤히 내 얼굴을 본다. 흐릿한 눈에 힘을 주며 초점을 모아 보지만 도저히 누군지 알 수가 없다. 그가 내 눈을 마주쳐서 내가 본 것인지 내가 그의 눈을 또렷이 쳐다보기라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왜 나를 그리 빤히 보는 것일까 따져 물어보려다가 어쩌면 내가 먼저 그를 쳐다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봐도
왠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신해철의 강렬한 재즈풍 음악 '커피 한잔'을 흥얼거리다가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김창완 작사작곡의 '찻잔' 노래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이 노래는 여러 가수들이 다시 불렀는데 류정운이라는 가수의 독특한 음색의 노래도 매력적이다.



특히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이 부분도 심금을 울린다.

오늘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기다려 주는 그 온기가, 그 정이 나에게로 흐르는 듯하다.


이렇게 아침을 열어 주는 한 잔의 커피를 예전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마시거나 누군가가 오고 나서야 마셨다면  요즘은 자주 혼자 마신다. 커피와 내가 앉아있다. 커피를 타 준 이와 내가 소리 없이 소통한다.


아담한 동네카페에 들어서면 책꽂이의 내 책이 홀로 날개를 퍼덕이며 누군가 봐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오늘도 손을 흔들어 그래 잘 있지 인사를 하고는 커피를 기다린다. 오늘 커피에서는 눈물이 난다. 커피를 내린 이의 마음을 내가 영혼으로 느낀 줄 착각했다. 그러다 아니지 힘든 어제의 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 삶을 담는다. 정성껏 우유의 거품을 내고 그려낸 하트 안에 오늘의 기분이 들어 있다. 삶의 묵직함과 때로는 서툼이, 우울이, 긴장이 담긴다. 미칠 듯 따뜻하고 감동적인 커피 한 잔으로 어제의 고단함은 잊고 오늘 새 힘을 얻는다.


가끔은 커피를 사들고 아파트 정자에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정자와 의자 사이로 개천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를 잠시 잊게 한다. 선풍기 바람처럼 끝없이 뒷머리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큭큭 웃음이 난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언제 봐도 한결같은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카트를 타고 멀리서 다가온다. 일찍부터 모닝커피냐고 묻는다.  일찍이니까 모닝커피지요 하고 웃는다. 어린이집 출근하는 언니도 만난다. 나는 그렇게  한 잔의 커피와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가 이제 시작되었는데 "가장 맛있는 부분을 모두 마셔버리고" 말았지만 커피가 주는 힘이 불끈 쏟아 올라 오늘도 발걸음이 씩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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