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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Sep 06. 2023

나의 이름은

       


 “이름을 잊지 않도록 해.”


영화 ‘센과 치히로’에서 하쿠가 신의 세계에 잘 못 들어온 치히로에게 당부하며 종이에 적은 이름을 잘 간직하라고 한다. 신들의 세계에서 금지된 음식을 먹고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마녀가 운영하는 온천탕으로 들어가게 된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을 빼앗긴다. 센(숫자 천)이란 이름으로 개명되어 일을 하게 된 치히로는 하쿠의 도움으로 부모님과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마녀는 치히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고, 하쿠는 이름을 꼭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이름은 정체성을 나타내고, 이름이 없어진다는 것은 자아가 없어지고 노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물에는 쓰임에 걸맞은 이름이 있고, 자연에도 제각기 이름이 있다. 사람도 매일 ‘나답게’ 불리어져야 ‘나답게’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순자~~”

 “순자? 예빈이라고 해야지!”

 얼마 전 이름을 바꾼 친구를 습관처럼 예전 이름으로 부르다가 혼이 나고 말았다. 옛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따끈따끈 식지 않은 새 이름이다. 요즘 어린아이는 쉽게 이름을 바꾸고 나이가 들어서도 어렵지 않게 새 이름을 갖는다. 예명으로 쓰기도 하지만 서류까지 새롭게 태어나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이거나, 놀림감이 되기 쉬운 이름 등, 불편하고 개인적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이름을 바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예전에는 복잡한 재판 절차를 거쳐야 했던 개명이 요즘은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신청이 가능하다.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의지 또한 강해졌다. 필명하나라도 짓고자 하면 결정 장애가 와서 이리저리 고민 만하게 되는 나와는 사뭇 다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의 이름을 잘 불러주었다. 어린 나이에도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명을 한 친구의 이름도 나름 잘 불러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어색함이 처음에는 잘 가시지 않았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 귀엽거나 예쁘게 바꾼 이름은 입에 잘 붙지 않고 온몸이 오글거리게도 했다.     


90년대 직장생활을 할 때는 ‘미스’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누군가 이름을 불러 주면 내 이름이 조금 촌스럽더라도 그렇게 다정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 엄마들과 만날 때도 누구 엄마라든지 아이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거슬렸다. 그런데 내 이름을 소개할 때는 언제나 자신이 없었다. 성이 '박'씨인 데다 자음이 연결되는 이름에 'ㅂ'이 하나 더 들어가니 발음이 부드럽지 못해 사람들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ㅇ'이 많이 들어간 이름을 보면 부러웠다. 사인을 할 때도 'ㅇ'이라는 글자는 아름다워 보였다. 이름을 말한다는 것이 불편해서 괜히 애칭을 만들어 부르자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개명이 한창 유행하기 시작할 때 이름을 멋들어지게 바꿔 보려고 생각은 했는데 남편이 그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다가 삼순이도 유명해지고 내 이름도 나름 귀여우니까 그냥 살자 하니 굳이 바꾸지 않기로 했고 잘 살아가고 있다.  사실 딱히 이렇다 할 찰떡같이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지 못한 것도 한 가지 이유다.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교회에서 만난 목사님이 기도하던 중 받았다는 내 이름에 대한 해석이 귀하게 느껴져 버리지를 못하고 있다.


"보배롭고 순결하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결한 해석인가! 내 이름은 절에서 지어진 이름인데 교회에서 다시 태어났다.     


처음에 친구들이 이름을 바꿨다고 하면 정겨운 이름들을 버리는 것이 그렇게 서운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른 이름으로 살고자 변화를 시도한 친구들의 용기를 응원하며 열심히 의식적으로 잊지 말고 자주 불러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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